브런치 4개월 차, '100번'째 글을 씁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100번째 글을 쓰는 소회

by 정혜영


100일 하고도 + 2주.

작년 10월 24일 첫 글을 올렸으니 브런치에 입성하고 보낸 시간이다.

'글 근육'을 키우기 위해 1일 1글 쓰기를 하다 3개월이 될 무렵부터는 글의 '양'보다는 '질'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쓰기에 제동을 걸고 고민 중이다. 이곳이 내 개인 일기장이 아니라 엄연히 독자가 있는 공간이다 보니, 언제까지 내 글 근육 시험장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글의 색깔과 방향성이 뚜렷하여 독자들이 폭발적으로 느는 다른 작가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소소한 일상 글에 너무 큰 욕심이다. 지금은 꾸준히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소중한 독자분들과 이 공간에서 맺은 인연들께 감사하다. 어찌 보면 사사로운 내 개인의 일상과 생각을 끝까지 읽고 공감해 준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내 글 중 어느 한 문장이라도 읽는 이에게 닿고, 나를 위해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다.




숫자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는 사람이라 어쩔 때는 내 생일도 잊어먹을 때가 있다. 남편 생일은 말할 것도 없다. 연애할 때도 다른 여자들은 민감하다던 만난 지 며칠, 100일, 300일과 같은 기념일 등은 자동 패스였으니 내 남편은 참 편했겠다.

그런 내가 브런치 100번째 글에는 왠지 마음이 많이 간다. 이제는 그다지 놀랄 것도, 가슴 설렐 것도 없는 중년에, 모처럼 내 안에 오랫동안 잠자던 나를 깨우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글을 쓰다 어린 나를 만날 때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길이 머뭇거리기도,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마음을 헤집던 하루를 풀어내며 내 안에 요동치던 감정들을 다스리던 순간도 있었다. 글을 쓰며 나를 만나고, 쓰다듬고, 토닥이던 시간은 살아온 삶 중 가장 오래, 그리고 깊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이 나이에도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 하나 쉽지 않은데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다니.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은 나를 위해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신호를 받으면 형언할 수 없이 마음이 벅차올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들은 2~3번을 도전해서 되었다느니, 10번도 넘게 도전해 힘겹게 브런치 입성을 했다느니 하는 이들의 글을 만날 때는 내가 잡은 행운이 얼마나 큰 것이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웃 블로거의 글에서 우연히 만나 브런치를 알게 되고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는 메인 글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혹시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신청한 것에 덜컥,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랐다. 그저 내가 글을 써도 된다고 허락받은 특별한(?) 승인에 기뻤을 뿐.


고등학생 때 이후로 일기조차 쓰기를 멈췄던 나는, 쓴다는 행위가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니라고만 여겨왔던 것 같다. 돌아보니 당시에만 심각했던 나름의 이유로 내 마음에 '절필' 선언까지 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그동안 아무것도 안 썼다고 생각해 왔지만, 언제나 싸이월드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공간을 기웃거렸던 나였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았던 사진들과 짧은 글들은 내가 나를 남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인간형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것이 블로그로, 브런치로 이어지고 있으니, 글로 나와 나의 생각을 남기는 행보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100편의 글을 쓰며 만났던 에피소드


첫 번째 에피소드

거의 매일 글을 쓰다 보니 3개월이 조금 지난 현재 100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에피소드도 생겼다. 기분 좋은 에피소드야 글로 남기기도 했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차마 말하지 못했던 2가지 에피소드를 공개해 보자면.


앞서 언급했듯이, 첫 번째 시도한 브런치 작가 신청에 덜컥, 합격 메일을 받고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난감했다.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던 시기였기에 글을 올리고 누군가의 라이킷을 받기만 해도 신기하던 때였다.


글을 쓴 지 3주 째부터 남편과의 이야기를 쓴 글이 간혹 조회수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조회수가 늘어나니 그다음 글들도 연달아 조회수가 올라서 브런치에서 오는 띠리링~ 알림 소리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그때도 왜인지 이유를 잘 모르다가 하루 걸러 두 개의 내 글이 연달아 브런치 '에디터스 픽'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지금도 내 글을 성의껏 읽어주시는 리사 님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일이다).

브런치 작가 합격 때 1차적으로 '글을 써도 될 만하다'라고 자격 부여를 받았다면, 에디터스 픽은 이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내가 '어느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증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두 번째 에디터스 픽을 받았던 글이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과거에 길에서 만났던 어린 강아지, '다롱이'이와의 만남과 가족이 된 인연을 소개한 글이었다. 나중에 결혼과 직장으로 인한 이동으로 믿을만한 사람인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께 차례로 입양을 시켰고 그런 내용을 다룬 글이었다.

그런데 그 글을 보신 독자 한 분이 남긴 '파양'과 '유기'라는 가슴 떨리는 댓글에 마음이 심란해졌던 것이다. 당시 실제 상황과는 맞지 않은 어휘였지만, 내 글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는 그렇게 다가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내 글이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비슷한 주제로 깊이 고민하는 다른 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죄책감에 심히 괴로웠다.


결국 나는 고민하다 에디터스 픽으로 계속 떠있던 상황에서 글을 내려 버렸다. 글을 내리니 마음은 편했다.

그런데 그 뒤로 나의 글이 더 이상 메인에 오른다거나 에디터스 픽을 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에디터스 픽이 뭐라고 그냥 하던 대로 쓰면 될 일인데, 공교롭게 이런 상황과 맞물리다 보니 에디터가 픽한 글을 내림으로써 혹시 내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에디터스 픽을 두 번 당해(?) 보니, 열과 성을 다한 글에는 이번에는 혹시?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리고는 번번이 그런 생각은 빗나갔고, 다른 에디터스 픽 글의 제목만 눈으로 훑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어쩌다 브런치 메인에 오르는 내 글이 간간히 나오기는 했지만, 그런 글들은 대부분 브런치를 통해 알려졌다기보다는 연동하는 다른 sns 채널을 통해 많이 읽힌 덕분에 돌아온 파장의 결과였다.


이제는 어떻냐면... 그냥 내 글을 쓴다. 라이킷이 적어도, 조회수가 많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인정이나 칭찬을 받은 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몇 번 받은 인정(?)에 들썩였던, 여전히 미숙했던 내 어린 마음에 피식, 웃음을 날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달까.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3개월이 지나니 3년을 지낸 것처럼 마음이 커졌나 보다.


두 번째 에피소드

두 번째 에피소드는, 다른 인기 있는 브런치 작가님의 '구독 취소 요청' 건이다.

구독자 수 한 명이 늘면 감사한 마음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구독자 취소 요청이 온 것이다.


문제는 역시 댓글이었다. 창작열에 불타오르셨던 그 작가분은 하루에도 몇 편의 글을 올리셨고, 그분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가던 나는 그분의 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쓰는 속도에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다니 정말 부러운 필력을 자랑하시는 작가분인 것이 분명했다.


읽고 재미와 감동을 꼭 댓글로 남기던 내가 한 번은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부진한 독자도 여기 있다"는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 비록 생면부지인 사이였지만 그동안 주고받은 댓글로 왠지 친밀감이 커졌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나의 댓글이 그분의 타오르던 창작열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구독을 취소해 달라는 요청을 해 오신 것이다. 실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고(작가분의 창작열에 찬물을 부으려 한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작가분이 그런 생각을 한) 결과를 낳았다면 내 잘못이 맞다. 그분께 브런치에 공개된 메일로 정중한 사과 메일을 보냈다. 그래도 안 되겠던지 구독을 취소해 달라고 하셔서 난생처음으로 신청한 작가 구독을 취소했다.


실은 브런치에 입성한 뒤로 내가 구독 신청한 작가가 30명도 안된다. 처음 글이 좋아 몇 분 신청했다가 퇴근 후 없는 시간 쪼개어 내 글을 쓰랴, 구독 신청한 작가분들의 글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읽으랴, 너무 힘들어서 하고 싶어도 더 이상 구독을 신청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많지 않았던 구독 작가분 중 한 분을 떠나보내려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 본래 의도와는 무관한 일이었고 나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작가분이 여전히 재미있는 글로 많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시리라 믿고 응원드린다.


상대가 의도치 않았다 해도 내 글을 내린 이유도 '댓글'이었고, 내가 구독했던 작가분이 구독 취소를 요청한 이유도 '댓글'이었다. 브런치 내에서는 글이 말이고 얼굴이므로, 댓글도 정말 신중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에피소드들이다.



브런치 4개월 차에 4년 후의 나를 그려본다.

브런치라는 공간에 들어와 일기 같은 일상 글을 남기고 있지만, 글들은 어김없이 다복다복 쌓이게 되고 이 글들은 나의 일상의 기록뿐 아니라 사고(思考)의 역사가 되어 가고 있다.

이 짧은 기간에도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글모사>를 통해 맺은 인연으로 일상 글이 책이 되는 경험도 브런치에 오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세상이었다.


망설이지 말고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보잘것없던 검불로 모닥불을 일으키듯 내 소소한 글들이 모여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울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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