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타내는 말에 대해 공부를 마치고 단원 정리를 할 때였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나타내는 많은 말들을 알아보았으니 현재의 마음과 그 까닭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학습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반 전체 학생들이 모두 한 마디씩 마음을 나타내는 말을 하다가 준기(가명) 차례가 되었다.
"학교에 오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준기가 이렇게 말하자, 우리 반 아이들의 눈빛이 나보다 더 당황스러워졌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준기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2학년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데 아직 미숙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아이가 그간 보여준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준기는 학부모 상담 자료를 위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요즘 관심 있는 것 등 모든 항목이 '축구'였던 아이이다. 미래에 되고 싶은 꿈도 당연히 '축구 선수'로, 준기는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축구 마니아'이다. 그런 준기에게 학교라는 곳이 어떤 공간일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정해진 시간 내에 등교해서 1교시 수업 시간 전까지는 독서를 해야 한다. 1~2교시 블럭 수업으로 국어나 수학 수업을 하고 3~4교시는 또 다른 블럭 수업으로 통합 수업이 진행된다. 쉬는 시간이라고는 코로나로 인해 잔뜩 쪼그라들어 중간에 겨우 붙어있는 고작 10분.
선생님이 최대한 10분을 보장해 준다고 해도 교실 바깥공기를 마시러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놀 수 있는 시간은 겨우 5~6분 남짓이다.
아이들과 뛰어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인 데다, 코로나 방역 수칙 중 하나로 너무 숨에 차는 활동은 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준기라고 해도 이런 학교가 재미없겠다. 학교에 오는 게 기분 좋을 리 없겠다. 겉으로 싫은 내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태 매일 학교에 나와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 그 시간들이 2학년 준기에게는 '인고의 시간'이었겠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관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아이들의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살펴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떠할까?
코로나 시대 이전에 아이들의 놀이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간놀이 시간을 10분에서 30분으로 처음으로 늘렸을 때, 대부분의 교사들은 걱정이 앞섰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안전상 문제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결국 중간 놀이 시간이 되면 담임교사들의 임장 지도하에 학년, 학급별로 학교 공간을 나누어 아이들이 정해진 공간 내에서 놀도록 했었다.
심지어 어떤 교장 선생님은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의미 있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주도하에 구체적인 놀이를 정하여 체계적인 놀이가 이루어지도록 요구하셨다. 그러나 이렇게 정해진 놀이를 하고 나면 2학년 아이들은,
"이제 우리 놀이 시간은 언제예요?"
라고 묻곤 했다.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은 어른의 개입 없이, 미리 정해놓은 놀이나 규칙 없이, 오롯이 자신과 또래 친구들이 그때그때 새롭게 만들어 놀아야 '진정한' 놀이 시간인 것이다. 선생님이 개입하여 어떤 놀이를 어떻게 할지 알려주는 놀이는 또 다른 수업에 다름 아니다.
아이들이 정형화된 놀이터보다 *정크 놀이터(junk playgrouds)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얼마나 스스로 만들어 노는 창의적인 존재인지 알려준다.
*정크 놀이터('junk playgrouds', 덴마크 조경사인 카를 테오도르 소렌슨이 사용한 용어. 고장 난 자동차나 낡은 타이어, 목재 등으로 이루어진 놀이 공간)
모든 것을 규격에 맞게, 규칙적으로, 질서 있게, 안전하게, 매뉴얼에 따라... 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사고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아이들도 종이 박스 하나만 가지면 얼마나 초집중하여 기발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지 직접 본다면, 아이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라는 사실에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공교육이라는 시스템, 특히 안전만이 최우선인 우리나라 어른들의 관점 안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진정한 배움의 공간이 참 아쉽다.
언젠가부터 '논다'라는 말은 '건설적인' 일과는 동떨어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라거나 '효용가치가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상태를 지칭하는 말처럼 사용되었다. '놀이'는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한 지 오래여서 어른들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그러나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라면 잘 노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제대로 놀고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 그러려면 무엇을 하고 놀아야 '제대로' 노는 것인지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심리학자이자 최고의 놀이 이론가인 브라이언 써튼 스미스(펜실베니아 대학 교수)는,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놀이의 반대는 우울증이다."라고 했다. 제대로 놀지 못하면 일을 제대로 못할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신나는가? 어떤 것을 하며 놀 때 몰입하는가? 우리 아이들이 어떤 것에 '미치는지', '좋아 죽겠는지', 그것을 먼저 살펴보고 제대로 놀도록 돕는 것. 그것이 준기 같은 아이가 학교에 오고 싶어 지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