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주는 쪽이 이긴다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엄마는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해, 악하다고 생각해?"
중3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오래전,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나 들었던 '성선설'과 '성악설'의 문제를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후 딸아이의 질문으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
그렇게 말려도 유튜브로 세상과 만나는 십 대인 딸에게 세상은 온통 비방과 험담, 사건, 사고로 가득 찬 곳이라 딸은 인간이 선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마음을 주었던 셀럽들의 과거 잘못된 행실에 대한 기사와 이를 물고 뜯는 유튜버들을 보며 오만 정이 다 떨어진 후에야 잠시 유튜브와 결별하기도 한다. 그래 봤자 알고리즘을 타고 이내 전해오는 유튜브 채널은 부러뜨리지도 않은 제비가 물어다 준 흉한 박 씨 모양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꼬맹이 적에 엄마를 따라다니다 천주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는 세례를 받았음을 인증하는 당시 사진 한 장이 아니라면 그런 일은 없는 일이었다고 치부할 정도로'무교'에 가까운 생을 살아온 지 오래다. 딱히 굳게 믿는 종교가 없다는 전제하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이 금했던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죄인의 아들, 딸로 태어난 모든 인간 역시 타고나면서 이미 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원죄설'은 최초에 누가 주창한 것일까? 모든 인간들에게 타고난 죄의식을 심어주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죄인인 것일까?
아이들과 과학의 날 행사로 간단한 과학적 원리를 활용한 만들기 활동을 했다. 양력(揚力)으로 이동하는 비행기의 비행 원리를 알아보는 수업이었다. 2학년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조립하고 원하는 대로 꾸밀 수도 있어서 자기만의 비행기를 만들어보는 흥미로운 수업 재료였다. 만들고 날려보면서 양력에 의한 비행기의 움직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어렵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수업 도구였다.
2학년 아이들이 꾸민 비행기, 이거 보니 여행 가고 싶으네ㅠ by 그루잠아이들은 저마다의 비행기를 꾸미고 날려볼 수 있다는 담임의 안내에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들떠 있었다. 저마다 정성 들여 꾸민 비행기 한 대씩을 손에 들고 운동장으로 나설 때 이미 아이들의 마음은 양력 없이도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을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비행기가 높은 곳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슝- 날아가는 멋진 비행 모습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구령대에서 날려보도록 했다.
"선생님, 제 비행기가 없어졌어요!"
잠시 후, 몇몇 남자아이들이 와서 이렇게 말했을 때, 다른 아이들의 비행기와 섞여서 놓쳤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차양막 위로 올라갔다는 다른 아이들의 말을 듣고서야 사라진 비행기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비행기가 어떻게 높이 위치한 그곳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한 나는, 그때서야 아이들을 차양막에서 떨어진 곳에서 날리도록 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그리고 만드는 솜씨가 빼어난 민기(가명)도 비행기가 차양막에 올라간 아이 중 하나였다. 민기는 정성 들여 만든 비행기가 손이 닿지 않은 높은 곳으로 사라져 버리자 매우 속상했을 터였다.
"미리 말해 주셨어야지요."
민기의 볼멘소리를 듣고 난감해졌다. 비행기가 위로 올라가 차양막으로 날아갈 수도 있음을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는 원망 섞인 말이었다. 아이의 실망스러운 눈빛에 "선생님도 이리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단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때서야 일이 그렇게 된 이유가 짐작되었다. 아이들에게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나의 성급한 마음은, 양력에 의해 위쪽으로 작용하는 힘의 원리를 알아보는 오늘의 수업 주제를 순간 잊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데서 날린 몇몇 아이들의 비행기가 위쪽으로 솟구쳐 차양막 위로 날아가 버린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 두둥실 날아올랐어야 할 비행기가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속상한 마음을 어쩐다? 고민스러운 나를 구원해 준 이들은 다른 아이들이었다.
"자기 비행기 충분히 날린 친구들 중, 비행기가 올라가 버린 친구들에게 빌려줄 수 있는 친구들 있을까?"
물었더니, 너도나도 자기 비행기를 가져와 비행기가 사라진 친구들에게 빌려주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교 전에 한 아이는 자기는 충분히 갖고 놀았다며 비행기를 잃어버린 친구에게 자기 비행기를 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 아이가 그렇게 하니, 자기 것도 주겠다는 아이들이 여럿 생겨났다. 그렇게 2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선한 영향력'으로 우리 모두는 양력이 없이도 충만한 마음의 비행을 할 수 있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다음의 일화를 소개한다.
- 어떤 노인이 손자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내면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두 마리 늑대의 처절한 싸움이다. 하나는 '악'이다. 분노에 차 있고 탐욕스러우며 질투가 심하고 교만하며 비겁하다. 다른 하나는 '선'이다. 평화롭고 타인을 사랑하며 겸손하고 관대하며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다. 너의 내면에서도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잠시 뒤 손자가 "어느 쪽 늑대가 이기나요?"라고 묻자 노인은 미소 지으며 답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지." -
다시 딸의 질문을 상기해본다.
"엄마는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해, 악하다고 생각해?"
엄마는 마음속 선한 늑대에게 먹이를 더 주어보려고 한다. 자발적으로 선한 늑대를 무럭무럭 키워가는 아이들의 선한 행동을 자주 보았으니까. 하나가 보여 준 선한 행동이 어떻게 주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지 아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