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감사편지'를 못 쓰는 아이

by 정혜영


국어 시간이었다.

마침 수업 차시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편지 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들이야 어린이날만 눈에 들어오겠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버이날을 맞는 자세도 가르쳐야 한다.


며칠 전에 카드를 만들고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으로 예쁘게 표지 장식까지 마쳐 두었다. 오늘의 수업을 위해 남겨둔 내지에 편지를 써서 완성할 계획이었다.

카드에 쓰기 전에 먼저 연습용 편지 쓰기를 하기로 했다. 부모님께 고마웠던 때를 떠올려 써 보라고 했는데 태훈(가명)이가 아무것도 쓰질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런 때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험을 쓰려고 하면 바로 생각해 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부모님이 고마운 때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좀 난감한 일이었다.


태훈이가 글쓰기를 하기 싫어서였을 수도 있었지만 정말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경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이야기하기 전에 다섯 손가락을 펼쳐 두었다가 아이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해 봤으면, "나도 그런 적이 있는데!" 하며 손가락을 꼽기로 했다.


손가락 꼽기는 다른 친구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보다도 손가락을 먼저 꼽고 싶은 아이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눈동자는 태훈이의 손가락에만 가 있을 예정이었다. 태훈이에게 엄마, 아빠가 고마웠던 때를 한 가지 이상 떠올리게 해야 했으니까.


"장난감을 사 주실 때요."


한 아이의 말에 태훈이가 손가락을 꼽지 않았다. 평소에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친구인지라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다.


"태훈아, 엄마나 아빠가 장난감 사 주실 때 있지 않았어?"


태훈이는 없다고 했다. 선물을 받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생일 때 엄마가 선물 안 주셨냐고 물어보니 안 받은 것 같단다. 에효,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아이의 기억 속에 들어가 여태 받았던 선물을 몽땅 빼내 올 수도 없고.


"아빠가 목마 태워주실 때요."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실 때요."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때 엄마 옆에서 자게 해 주실 때요."


친구들이 말하는 '엄마, 아빠가 고마웠던 때'에 대한 경험 이야기에 다른 아이들은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로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태훈이의 손가락은 깁스라도 한 것처럼 굽혀지지 않았다.


"저를 낳아 길러주시고 먹여 주시고 키워주실 때요."


한 친구의 이 말에는 태훈이를 제외한 반 아이들 모두가 손가락을 꼽았다. "나도...!" 하는 목청으로 교실 천정이 뚫릴 기세였다.

태훈이는 손가락을 꼽을지, 말지, 까딱거리고만 있었다. 태훈이에게 다가가서 그런 적 없었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했다. 드디어 태훈이가 동의한 내용이 생겼으니 편지에 쓰려니, 했다. 그랬더니 여전히 내용으로 옮겨 쓰는 데는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이대로 보냈다가는 어버이날 태훈이 어머니는 카드를 못 받아보실 게 뻔했다. 편지를 완성하기 전에는 집에 못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겨우 몇 줄을 써냈다.


태훈이는 왜 이렇게 엄마, 아빠께 몇 마디 감사편지를 쓰는데 인색했던 것이었을까. 평소에 말수도, 자기표현도 적은 아이라 그 속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은 엄마, 아빠라는 존재의 의미가 큰 2학년 아이가 부모님을 떠올리며 마음껏 고마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마음이 뭘지 궁금하다.

다소 엉뚱한 데가 있는 친구라 수업 시간에는 웃고 넘어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 들여다보았어야 할 일인데 너무 쉽게 생각했나, 싶어 진다.


태훈이 어머니께서는 내용이 흡족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도 얼마나 주변인들과 함께 공들여 완성한 것인지는 꿈에도 모르실 것이다. 생각해보니 태훈이 어머니께서 학기 초에 상담 신청을 안 하셔서 태훈이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었구나. 조만간 상담을 통해 태훈이의 속내를 좀 더 들여다보아야겠다.


어버이날이 코 앞이다.

용돈 드리고 전화 한 통으로 최소한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여러 해를 보냈다. 나도 태훈이처럼 부모님께 감사편지를 쓴다면 한참 머뭇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절대 내려오지 말라는 친정 엄마 말을 이번에는 듣지 않고 엄마 모르게 1박 2일 KTX 티켓을 예매했다.

연일 수도권의 확진자수가 많다 보니 찾아뵙는 게 눈치가 보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너무 오래 안 보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친정 엄마만의 것은 아니니까.


정말 오랜만에 홀로 찾아뵙고 엄마와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을 테다.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던 엄마 집 근처 호수 둘렛 길도 함께 산책하고 올라올 계획이다. 엄마가 싫다고 뿌리쳐도 손 꼭 잡고 산책해야지.


감사편지는 아무래도 못 쓰겠다. 태훈이한테 뭐라 할 일도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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