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당 학생 수 20명'은 꿈의 숫자가 아니다
꿈은 이루어지게 하자
처음 담임교사를 맡았던 2000년대 초반,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적은 인구 통계치를 보이던 지방 시골 마을의 작은 읍에 위치해 있었다. 전체 학생수가 7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우리 반 학생이 12명이었으니 전체 여섯 개 학급에서 학급당 학생수가 꽤 많은(?) 편에 속했었다.
그 조용했던 시골 마을 학교는 과거 학생수 1,000명이 넘었던 시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한 기억을 간직한 채 흥망성쇠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듯, 운동장의 크기는 망연자실하게 넓었다.
열정이 넘치던 20대에 맡은 학급이다 보니 나는 더 열과 성을 다했을 터였지만, 아이들이 차지하는 1인당 평균 면적이 넓은 교실과 학교 건물 내에서 "뛰지 마라"는 말은 그다지 필요한 말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걸음걸음을 견뎌낸 목재 복도와 교실 바닥은 우당탕 뛰는 세기에 따라 삐걱임의 반동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기도 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도시의 아이들처럼 들고 나는 일이 별로 없던 까닭에 1학년 때 함께 입학한 친구들이 졸업할 때까지 줄곧 한 반 친구여서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은 서로가 지키기로 약속한 규칙에 대해서는 교사의 잔소리 없이도 서로를 독려하며 잘 지켜나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는 것. 나를 알아주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은 12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부모의 이혼이나 부재로 시골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던 이 아이들에게 분명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도시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니기도, 별나고 비싼 장난감도 갖기 어려웠지만, 수업 시간에는 하나같이 진지했고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함께 놀았다.
담임교사인 내가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전부였던 아이들. 그 아이들과 열심히 준비해 지역 '초등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1등 상을 받았을 때 아이들과 함께 기뻐했던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2명의 아이들 중에서도 더 총명한 아이가 있었고, 이해력이 늦은 아이도 있었지만 학원 수업과 보충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 없는 오늘날에도 한 반에 1~2명은 있기 마련인 '기초학력 부진학생'은 없었다. 수업 시간에 이해가 안 되는 학생에게는 다시 설명해 주었고, 그래도 안 되면 수업 시간 내에 개별 보충 지도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뒤 남아서 보충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복잡한 마음이 움틀 겨를이 없었다.
주어진 수업 시간 내에 교사의 충분한 관심과 개별 지도를 받고 방과 후엔 남아서 공부하는 친구 없이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충분히 노는 것, 이것이 당시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행복한 웃음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설립된 지 8년 째인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2학년 학급 담임을 맡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처음 설립된 지 3~4년 차까지는 총 학급수 24 학급 미만, 학급당 25명이 안 되는 중급 규모의 학교였다. 당시는 설립된 지 오래된 학교들이 하나, 둘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정부의 지원으로 너도나도 혁신 프로그램을 일구어 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 학교는 '혁신학교'라는 타이틀 없이도 인근 학부모들 사이에 혁신 학교보다 더 낫다는 입소문을 타고 학생들의 유입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를 더하며 주변에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더니 학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49개 학급에 전체 학생수 1,400여 명이 넘는 큰 규모의 학교가 되었다.
학생수가 늘면서 2년 전 학교 건물을 1층 더 증축해 학급을 증설했지만, 애초 24 학급 규모로 허가 난 학교라 증설된 학급수에 비례한 특별 유휴 공간이 부족하다. 운동장은 1,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유하기엔 크기가 너무 작고, 3학년 이상 학년의 체육 수업 우선 순위에 밀려 왕성한 신체 활동을 지원받아야 할 저학년 아이들에게 시설 좋은 실내 강당은 그림의 떡인지 오래다.
현재 학교에 전입한 지 5년 차인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우리 반 학생수는 26명이었다. 5년 동안 같은 학년을 맡고 있지만 매년 학급 학생수가 한 명, 두 명 늘기 시작하더니 올 해는 31명이 되었다. 동학년 다른 반은 32명도 있으니 조만간 전입생이 오면 우리 반도 32명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26명이든, 32명이든 나와 만남을 맺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품어 안는 일이야 담임교사에겐 당연한 책무이다. 그렇지만 같은 에너지로 더 많은 아이들을 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항상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남는다.
매년 저출산과 줄어드는 학령 아동수에 대한 뉴스는 이제 너무 흔해서 뉴스도 아니다. 이런 뉴스는 학생들이 점차 줄어드는 학교에서 교사가 '잉여' 인간인 것만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전국 초, 중, 고 433개교가 학급당 학생수 31명 이상이고, 21~30명인 학교도 6,558개에 달한다(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실 보도 자료, 2020. 9. 23.).
지난 5월 26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미래를 위한 학급당 학생수와 교원 정원'을 주제로 열린 '2021년 교육현안 국회연속 토론회 제2차 토론회'의 발제 자료를 살펴보면 경기도 지역의 학교 현실은 더 심각하다.
"2019 교육통계를 반영하여 최근 5년간 학급당 학생수를 살펴보면, 경기도의 경우 2019년 학급당 학생수는 평균 25.7명이다. 2020 학년 현재 경기도 중학교 급의 45.6%인 5,771 학급이 학생수 31명 이상이다. 31명 이상인 학급이 많은 곳은 화성 81.7%, 오산 78.2%, 김포 73.1%, 용인 66.1%, 수원 66.0%, 파주 63.7%로 신도시 입주와 부동산 시장 불안에 따른 이주 증가, 학교 용지 확보 없는 난개발 등이 원인이다. 신도시 입주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도 지역은 앞으로도 학급당 학생수가 많은 과밀학급 문제가 지속될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 실장, 노시구 발제 자료
같은 날, 교육부 장관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영상회의를 통해 9월 전면 등교를 제안했다.
경기도 교육청 소속 교사이자, 자료에 언급된 지역 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의 학부모로서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지속적인 과밀학급 문제 속에 전면 등교를 맞는다고 생각하니 환영만 하기엔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게 될 미래에 사람 간 거리두기는 생활의 기본 수칙이다. 한 교실 내에 30명이 넘는 학생들을 모아 두고 아이들에게 거리두기만을 강요한다는 것은 교육 현장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아이들이 모두 출석해도 자연스러운 거리두기가 가능한 최소한의 공간 확보.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고민할 때이다.
이에 6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 전개되고 있는 '학급당 학생수 20명(유아 14명) 상한 법제화 10만 입법 청원'에 깊이 공감하며, 우리 아이들이 질 높은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응해 주셨으면 좋겠다.
20여 년 교직에 있어보니 역량 있고 열정적인 대한민국의 교사들을 참 많이 만나본다. 그럴 때마다 부족한 스스로를 반성한다. 교사들은 코로나 19라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 반에 10명이든, 30명이든,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그럼에도 교사 한 명이 보다 더 깊게 반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수 감축'은 필수 요건임을 절감한다. 1/n로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을 나누어 갖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분모 지수를 줄여주는 일은 우리 어른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일 것이다.
20여 년 전, 12명의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온전한 눈맞춤이 가능한 때였다. 그때를 완전히 복원하기는 힘들겠지만, 우리 아이들과 더 많은 눈길로 소통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날이 남아있는 교직의 시간 내에 어서 왔으면 좋겠다.
내일은 좀 덜 가르치더라도 31명 모두의 이름을 꼭 한 번씩 다 불러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