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선생님들은 글을 못 쓰십니다

나는 한 번도 체계적인 글쓰기 지도를 받아보지 못한 세대 교사입니다

by 정혜영


학기초부터 우리 반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안내하고 글을 쓰도록 지도해 왔다. 작년엔 등교일이 적어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 반 특색 교육활동, '나도 작가' 프로젝트를 올해는 제대로 해 보리라, 다짐했었다.

3개월 동안, 몇몇 아이들은 눈에 띄게 발전한 아이도 있었지만, 많은 아이들은 내 욕심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여전히 3월의 글쓰기에서 멈추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뭘 잘 못 가르친 것인지 고민스럽다.

2학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좀 더 재미있게, 좀 더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은 따로 있는 걸까.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좀 더 체계적으로 지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지도하려고 보니 내게 글쓰기에 대한 '체계적인' 지도 능력이 없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읽고 쓰기를 즐겨했으니 잘 가르치겠거니, 막연히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것과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 사이에 놓인 간극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선생으로 업을 삼아온지 20년이 넘었으니 아이들의 글을 참 많이 봐왔다. 아이들의 글 들 중 좋은 글을 보는 눈쯤 고품격의 글 안목까지 필요하랴, 싶었다. 더러 오, 좀 쓰는데? 싶은 아이들의 글을 만나면 반갑기도, 기특하기도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의 개인 차가 커진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내돈내산' 온라인 연수를 신청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이들의 생생하고 싱싱한 글쓰기를 위해 제대로 배워보아야겠다는 학구열에 불타올랐다.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의 책은 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다. 글쓰기 지도에 대한 갈증은 전부터 있었나 보다. 이미 강사의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니.

사람마다 학습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더 나은 게 있기 마련인데, 나는 마음이 동해야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읽은 책의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내용이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강사분이 강의 도중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죄송합니다. 선생님들은 글을 못 쓰십니다."


귀를 의심했다. 아니, 체계적인 글쓰기 지도를 익히기 위해서 강의를 신청해 듣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글을 못 쓴다니, 강사분이 너무 나가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살짝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왔다. 잘 쓰진 못해도 못 쓰는 정도까진 아닌데. 뾰로통해진 마음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생 '잘 못한다'는 말을 '잘 못' 들어온 교사들은 뭐든 '잘 못한다'는 말을 '잘 못' 견뎌한다. 이것이 교사들이 가장 고쳐야 할 점이라는 것도 잘 안다. 뾰족해진 마음을 달래준 것은 강사의 다음 말이었다.


"왜냐하면 한 분, 한 분 능력이 없고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 번도 글쓰기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이셨다. 학창 시절, 글쓰기를 해야 할 때면 선생님들은 원고지만 나눠 주셨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쓰신 '불조심', '6.25', '통일', '나라 사랑'... 등의 막막한 글쓰기 주제들은 공중에 둥둥 떠다녔다.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경험과 생각을 어떻게 버무려야 할지, 선생님들이 딱히 가르쳐 주신 기억이 없다.


주제와 원고지만 들여다보며 머리를 쥐어짜 내다 10매 내외 기준을 못 채우고 5매나 6매 정도에서 글이 멈추었을 때의 낭패감이란. 자신에 대한 부족한 글쓰기 능력을 자책하며 심기일전해 다시 도전해 보지만, 6매 정도로 끝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내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미 끝난 이야기를 늘려야 할 때 마주하는 원고지의 한 칸은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인지 더 커 보이는 착시효과만 일으켰다.


돌아보니 내가 글쓰기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부족했긴 했을 거다. 그래도 10매 내외를 채워내지 못한 것이 오롯이 내 책임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글을 지속해 나가려면 머릿속의 '관념'으로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초등학생에게 '6.25'나 '통일' 등은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쌓아 나아가기 어려운, 관념적인 주제들이었다. 슬라이드 몇 장을 본 체험으로는 글을 쌓아갈 동력이 한참 부족했다.


어린이가 글을 쌓아 올리려면 명확한 '관련 경험'이 있어야 한다. 직접 보거나, 듣고 한 것이 있어야 생각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때 그런 주제들을 만날 때마다 막연했던 그 감정을 내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기 싫다.


지금도 내 생각을 짧은 시어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다. 아무래도 시는 동심이 있어야 써지는 글 영역이지, 싶다.

럼에도 아직은 동심이 남아 있었을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때도 난 산문보다 시 쓰기를 싫어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가을'인지, 단풍'인지 기억이 희미한 주제를 주시며 동시를 쓰라고 하셨었다. 생각도 잘 나지 않는데 그것도 짧게 줄여서 써야 하는 시라니. 시를 쓸 때마다 난감해지는 마음은 그때도 똑같았나 보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썼다. 시의 앞부분은 생각나지 않는데 가을이 되어 알록달록 물든 단풍잎에 대해 썼던 것 같다. 가을이면 나뭇잎들이 어떻게 한결같이 빨갛고 노랗게 변하는지 궁금해서 엄마에게 물었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시의 마지막 연만 기억에 남아있다.


엄마에게 물었더니
빨가니까 빨갛고
노라니까 노랗다고.


정말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도저히 실력은 안 따라줘서 대충 시간에 쫓겨 낸 시였다. 더욱이 6학년이 쓴 시라기엔 내용이 너무 유치 찬란하다고 생각해서 수업만 끝나면 어디에 꽁꽁 숨겨버리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담임 선생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셨다. 앞부분은 별로 기억에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마지막 한 연이 선생님의 마음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궁금한 것을 묻는 아이의 질문에 무심하게 툭, 던지는 엄마의 대답이 울퉁불퉁한 인생을 살아내셨을 50대 남자 선생님의 마음에 어떤 심상(心想)이라도 들게 한 것이었을까.


가끔 2학년 아이들이 쓴 시를 읽고 있노라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아이다운 순수한 발상과 심상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마음이 그런 것이었을까.

여전히 산문보다 시 쓰기 지도가 더 어려운 나에게 아이들은 걱정 붙들어 매라는 듯, 마음을 잘 표현해 낸다. 아이들의 시를 보며 감동하는 이유는 '멋 부리지 않은 솔직함' 때문일 것이다.


비록 체계적인 글쓰기 지도를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세대이지만, 나의 아이들에게는 뜬금없는 글쓰기 주제와 맞닥뜨리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 하나, 하나가 가진 체험을 솔직하고 자세히 쓰다 보면 그 과정에서 반드시 생겨나는 '마음'과 마주하도록,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글 멋쟁이'가 되어가도록 하고 싶다.


생각이 일어난 자리에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글을 쓰며 생겨난 마음 들여다보기.

나도, 아이들도 함께 할 우리 반 글쓰기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