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 든 문장이 부끄러운 이유
어린이의 문장(14)
어린이들의 글에는 직접 겪은 아이들의 생활이 녹아 있기 때문에 생생하다. 아무리 서툰 글일지라도 마음에 닿는 것은 그 속에서 아이들의 순수한 진심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경험을 쓸 때는 주로 '한 일' 위주로 쓰기 마련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단계의 어린이들은 자신이 한 일이 가장 잘 기억나기 때문이다. 경험은 '한 일' 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좀 더 자세하게 쓸 수 있다. 그래서 한 것, 본 것, 들은 것, 느끼거나 생각한 것의 여러 경험이 들어간 예시 문장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생길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다.
2021년 0월 0일
<아기 고양이>
엄마와 함께 슈퍼마켓에 가는 길이었다. 어디선가 "야옹~ 야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몰라서 두리번 두리번거렸다. 길 모퉁이에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불쌍했다.
"엄마, 우리가 데리고 가면 안 돼?"
하고 엄마께 여쭤봤더니 엄마는 안 된다고 하셨다. 날씨도 추운데 새끼 고양이가 걱정이 되었다.
위의 예문을 들은 우리 반 아이 하나가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진짜 겪으신 일이에요?"
아뿔싸,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쓰게 하려는 목적만을 생각하다 '자신이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쓰는 글쓰기의 기본을 놓친 것이다.
실제 어린이들의 글은 아이들이 직접 체험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그 글들을 통해 어린이들의 생생한 삶과 만날 수 있다.
오늘 오락실에 갔다. 오락실에서 인형 뽑기를 10번 정도 뽑았는데, 잡았는데 놓(치)고 또 잡았는데 놨다(놓쳤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났다. 그래도 마리오 게임은 내가 1위였다. 그래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K.O. 만 자꾸 나와서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는 인형 뽑기 잘하는 00 언니를 데리고 와야겠다.
<힝, 하나도 못 잡았어!>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국이(가명)가 인형 뽑기 게임을 하며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예상이 된다.
도대체 인형 뽑기 게임은 인형을 뽑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게임이던가! 결혼 전, 지금의 남편이 인형을 뽑아주겠다며 그 게임에 들인 엄청난 돈을 생각하면 수국이의 억울함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니 인형 뽑기를 잘하는 누군가를 데리고 와서라도 꼭 하나를 뽑고 싶은 것일 테다.
이 어린 마음을 이용해 돈을 버는 어른들의 상술이 얄밉다.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신다. 그래서 나는 신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뭐)냐면 게임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랑 배드민턴, 줄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하고 운동도 되(돼)서 정말 좋다. 멘(맨)날 할아버지랑 놀고 싶다.
제목 없이 쓴 동백(가명)이의 글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는 '진짜' 신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동백이는 엄마(또는 아빠)가 조부모님이 방문하실 때는 평소보다 유연해진다는 사실을 꿰고 있다. 평소에는 엄마, 아빠 눈치 속에 하고 싶어도 참거나 제한적으로만 했을 게임을 마음껏 해도 되는 시간이 어찌 기대되지 않겠는가?
동백이는 부모님의 맞벌이로 평소 학교가 끝난 후 학교 돌봄 교실에서 더 시간을 보내다 가던 아이 었다. 그 점을 고려할 때, 동백이의 가족에 대한 고픈 정을 예상할 수 있겠다. 자주 왕래하지 못한 친지와는 쌓일 정도 없다. 동백이 부모님께서 조부모와의 만남을 위해 들인 정성이 있었기에 동백이와 조부모와의 행복한 관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방과 후 많은 아이들이 여러 학원을 전전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원가족 외에 아이들이 마음 기댈 수 있는 친족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 따뜻해진다.
<이상한 치과>
이상한 치과
물건들이 많이 있는 치과
신기한 치과
신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는 치과
사람이 많은 치과
사람이 많이 오는 치과
무서운 치과
진료받기 싫다.
000님 진료받으러 오세요~
난 망했다.
치과는 어른들에게도 썩 즐거운 장소는 아니니 아이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다래(가명)의 시에서는 치과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 직전까지의 아이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알 수 없는 치료 도구들은 이상하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진료를 위해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동안 다래의 마음속에서 자라났을 두려움의 크기가 그려진다. 그러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다. 두려움의 정점이자, 어찌할 수 없는 포기의 감정을 담아 내뱉은 '망했다'라는 말에 다래의 표정이 읽힌다.
모든 글쓰는 이들의 스승, 이오덕 선생님은 <이오덕의 글쓰기>에서 '그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하고, 거기서 바르고 참되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 주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정직한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셨다.
어린이의 글은 서툴러도 좋으니 자기의 생활을 숨김없이 자기의 말로 쓴 것이 좋은 글이다. 사실과 다르게 지어내어 제시했던 내 예시 문장이 부끄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