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배. 사. 2학년 아이들의 3월
어린이의 문장(15)
학교에서 일 년의 시작인 3월. 해가 바뀐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새 출발을 할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뭐든 삼세판은 해봐야 판도가 가늠되는 법. '시작'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이들도 나도 부단히 노력 중이다.
펜데믹과 함께 한지 2년이 넘었지만, 다른 이름으로 바뀔 때마다 더 크게 달려드는 바이러스의 기세에 2022년 3월, 신학기도 만만치가 않다.
신학기 첫날, 웬만해서는 내 반 아이들 중 만나지 못하는 아이가 생길 거라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 어려운 걸, 오미크론은 해낸다. 정상적으로 만난다 해도 일주일은 걸려야 이름과 얼굴이 매칭 되기 시작할 텐데, 학생 본인이나 가족의 확진 등으로 첫날부터 못 만나는 아이들이 생겼다. 그렇게 첫날부터 아이들의 자리는 듬성듬성 비더니 들고 나는 아이들이 연일 달라지며 주인 없이 혼자 수업을 듣고 있는 책, 걸상이 여러 개다.
연일 7명 전후 학생들의 자리가 빈다. 수업 시작 전, 결석한 아이들의 인원과 사유를 파악하고 일주일마다 바뀌는 '코로나19 상황별 등교 여부'를 확인해 학부모께 전달한다. 연일 확진자 수가 최고점을 갱신하고 백신을 맞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확진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2022년의 3월 학교는 펜데믹을 통과하던 작년과는 다른 모습으로 긴박하다. 숙주를 살려야 살 수 있는 바이러스의 생리 덕에 전파 속도에 비해 치명률이 낮다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오늘 아침 내 줄은 00 이와 나밖에 없었다. 너무 쓸쓸하다.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3월 교실의 시계는 재깍재깍 흐트러짐 없이 흘러간다. 3월 매일 한 줄 쓰기를 시작한 아이들의 문장은 역시 처해 있는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코로나 시대 교실 좌석 배치는 방역 수칙상 한 줄에 5~6명씩 일렬종대식이다. 한정된 공간이라 앞뒤 간격은 많이 못 벌리고 줄과 줄 사이만 간격을 두다 보니 짝이나 모둠 활동의 즐거움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은 미뤄두더라도 친구들이라도 많이 나오기를 소망하는 아이의 마음이 짠하다.
학교에 들어왔다. 많이 자리가 비었다. 다음에는 친구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드문드문 비어있는 아이들의 자리를 보는 내 마음과 아이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어제는 7명이 비었었는데 오늘은 한 명 더 늘었다. 그래도 첫날부터 못 나오던 주목(가명)이가 처음으로 등교해서 반갑다. 요즘 내가 수업 시작 전 아이들에게 하는 당부말은 이러하다.
"얘들아, 내일 우리 중 누가 또 못 나오게 될지 몰라. 그러니 오늘 만난 친구들에게 더 반갑게 웃어주고 더 신나게 공부하자."
엄마가 '코로나19 백신 주사'라는 주사를 맞으러 갔다. 엄마가 코로나 안 걸렸으면 좋겠다. 또 엄마가 걱정된다.
아이의 엄마가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가신 모양이다. 3차까지 백신을 맞았지만 돌파 감염이 많아서 안심할 수 없다. 자가 격리가 어려운 어린 자녀가 확진되면 일주일 사이에 십중팔구 모든 가족이 감염되고 있다. 확진자가 천만이 넘었다니, 5명 중 한 명 꼴인 확진율 속에서 나는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제는 누가 걸려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다수의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들은 여전히 '확진'이 두렵다. 나로 인해 다른 학생들과 그 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지난주에 거실에 있는 몬스테라 화분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왔다. 그런데 오늘 보니 잎이 활짝 폈다.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다.
설렘이나 기대로 가득 찬 여느 3월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이 와중에도 봄은 왔다. 식물을 잘 못 기르는 곰손이라 베란다에 푸른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을 보면 놀랍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유일한 식물인 떡갈나무에도 새 잎이 돋았던데, 자연의 시계는 정직해서 고맙다. 아이네 화분에서 새로 나온 몬스테라 잎이 건강하게 잘 갈라지기를.
오늘 공부를 했다. 근데 조금 힘들었다.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3월의 2학년 어린이들은 아직은 1학년 티를 다 벗지 못했다. 그래도 천둥벌거숭이들을 꼬마 신사, 숙녀들로 변모시켜 놓았으니 1년 간의 학교 생활을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개중 한 둘은 아직 그 상태이긴 하지만).
2학년 교육과정은 1학년의 그것보다는 좀 더 촘촘하게 아이들을 쪼여올 것이고 친구들의 놀라운 발전을 보면 승부욕도 불끈, 생길 것이다. 1학년까지는 적응기라고 여겼던 부모들도 2학년부터는 뭘 좀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녀들에게 이것저것을 새로 시도해본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어도 바쁘다. 하교 후 학원 차에 늦지 않기 위해 바람처럼 쌩, 빠져나가는 아이들과 여유로운 하루 일과를 마무리는 날은 언제나 올까.
행. 배. 사. 2학년 0반.
우리 반 이름 짓기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지은 이름이다. '우리 반이 이런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 각각의 생각을 모아보니 '행복, 배려, 사랑'의 요소들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2022년 우리 반의 이름은 '행복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2학년 0반'이 되었다.
3월, 순탄치만은 않은 출발이지만, 모두가 함께 희망하는 방향을 찾았으니 그 길만 잘 따라가면 되겠다.
행배사 2학년 우리 반! 올 한 해 잘 부탁해~!
행배사 2학년 우리 반! 올 한 해 잘 부탁해~^^ ⓒ 그루잠
p.s. 이것도 핑계지만 3월은 글쓰기에 잔인한 달이네요..ㅜ 일주일에 한, 두 편은 꼭 글을 발행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요즘 퇴근 후 계속 물리치료를 받는 중이라 저녁 시간 확보가 어려웠네요..ㅜ 3월이 지나면 양질의 글로 돌아오겠습니다(제발).
다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