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아기 독수리, '리틀 쌈닭'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미운 아기 오리'

by 정혜영


'흰둥이'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몸의 털이 흰색이라는 이유로 엄마, 아빠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흰둥이의 다른 형제들은 몸에 난 털이 노란빛을 띱니다. 흰둥이는 다른 형제들과 털 색깔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여 다니는 형제들과는 달리 혼자 놀기를 좋아하고 거친 성미라 갓난 병아리 때부터 '리틀 쌈닭'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오늘도 흰둥이는 큰 형이 마당 구석에서 발견한 먹음직스러운 지렁이를 달려들어 빼앗으려고 하는 바람에 형과 싸움이 붙었습니다.

"야! 이 못된 쌈닭! 이건 내가 먼저 발견한 거 몰라?"

"누가 먼저 발견한 게 뭐가 중요해? 우리가 먼저 발견할 때도 형이 항상 먼저 먹었잖아! 그리고, 뭐? 못된 쌈닭이라고? 형이면 다야?"

리틀 쌈닭과 형 병아리는 한데 엉켜 싸우느라 바닥의 흙먼지를 온통 뒤집어썼습니다. 평소 리틀 쌈닭과 크고 작은 말싸움을 벌인 적이 많은 다른 형제들은 모두 큰 형이 이기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큰 형이 리틀 쌈닭의 못된 버릇을 제대로 고쳐주길 은근히 바랐습니다.

"아니, 이 녀석들! 형제간에 뭐하는 짓들이냐!"

"그만두지 못해!"

엄마와 아빠 닭이 푸드덕 거리며 멀리서부터 달려오면서 내지르는 고함에 둘은 순간 멈칫, 합니다. 엄마 닭과 아빠 닭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형제간에 생기는 이런 싸움을 말리는 것이 이제는 힘에 부칩니다. 항상 사이좋게 붙어 다니는 이웃집 병아리 형제자매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엄마, 아빠! 오늘은 단판을 지어야겠어요!"

큰 형은 아직 덜 풀린 분을 다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저 리틀 쌈닭 때문에 우리 형제들이 매일 얼마나 피곤한지 잘 아실 거예요. 오늘은 리틀 쌈닭을 내보던지, 제가 나가던지 둘 중 하나 결정해 주세요!"

엄마 닭은 큰 병아리의 말에 난감해졌습니다. 아빠 닭의 표정도 어두워졌습니다. 엄마 닭을 바라보는 아빠 닭의 표정은 '그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이 병아리 형제들에게는 엄마, 아빠 닭이 말하지 못했던 한 가지 비밀이 있었습니다.


엄마 닭이 귀여운 알을 낳던 날, 농장 주인은 어디선가 하얀 알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농장 주인 부부가 하는 말을 엿들은 아빠 닭은 그 알이 깊은 숲 속 아름드리 소나무 밑에서 주워 온 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 닭은 숲 속에서 주워 온 알이라면 수리부엉이 알이거나 검독수리 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이던 사납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맹수들이라 아빠 닭은 엄마 닭에게 하얀 알을 쪼아 화근을 없애자고 했습니다. 그런 아빠 닭을 극구 말린 것은 엄마 닭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온 생명을 어떻게 없애요? 우리가 잘 키우면 바르게 자랄 거예요."

눈물을 흘리며 만류하는 엄마 닭의 말을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던 것을 아빠 닭은 요즘 들어 부쩍 후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화한 리틀 쌈닭은 다른 병아리들과 생김새도, 몸의 색깔도, 성격도 달랐습니다. 자라면서 몸이 커지자 다른 형제 병아리들과 투닥거리기 일쑤에, 이제는 큰 형의 권위에까지 도전하는 흰둥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엄마 닭은 그날 밤,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흰둥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을 거라던 자신감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흰둥이를 계속 보듬고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요즘 흰둥이가 날개를 쫙 펴고 날갯짓을 할 때면 땅에서 발이 살짝살짝 들리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엄마 닭은 흰둥이에게 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엄마 닭은 깊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엄마 닭은 밤새 생각한 결심을 아빠 닭에게 말했습니다.

"흰둥이가 원래 살아야 했던 곳으로 보내는 게 좋겠어요."

엄마 닭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렸습니다. 한숨도 못 잔 엄마 닭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일주일 간 엄마 닭은 흰둥이에게 맛있는 것을 먼저 먹이고 밤에는 옆 날개에 꼭 품고 잤습니다. 리틀 쌈닭은 오랜만에 엄마를 혼자 독차지하게 되어 신이 났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질투 어린 눈초리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리틀 쌈닭은 생애 가장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일주일 후, 리틀 쌈닭은 아빠와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엄마 곁을 떠나가는 길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는 어른이 되려면 꼭 필요한 연습이라고 리틀 쌈닭을 설득했습니다. 리틀 쌈닭은 다른 형제들은 하지 않는 이런 연습을 왜 자기만 해야 하냐고 따졌습니다.


"아가야, 넌 특별하잖니."


리틀 쌈닭은 엄마의 말에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리틀 쌈닭 역시 자라면서 형제들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과 행동 방식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다르게 행동하는 자신을 형제들이 조롱할 때마다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싸운다고 속이 후련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엄마가 리틀 쌈닭에게 하신, '특별'하다는 말에 비로소 리틀 쌈닭은 그동안 왜 자신이 그렇게 불편했던 것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리틀 쌈닭은 가족들과 헤어져 아빠와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하늘 끝까지 닿아있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날개와 날카로운 부리, 매서운 눈매를 가진 새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이르렀습니다. 그 새들 무리를 본 리틀 쌈닭은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습니다.

"리틀 쌈닭, 여기부터는 이제 너 스스로 가야 한다."

돌아서는 아빠 닭의 눈도 "넌 특별하잖니"라고 말하던 엄마의 눈처럼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습니다.

엄마, 아빠 닭은 이제 힘이 빠지고 걸음도 무척 느려졌습니다. 닭은 10년이면 장수한 축에 들기 때문에 8살 엄마 닭과 9살 아빠 닭은 이웃 닭들보다 무척 오래 산 축에 듭니다. 다른 병아리들은 이제 훌쩍 커서 어엿한 어른 닭이 되었습니다. 큰 형 닭은 이제 아빠 닭보다 더 큰 위엄을 가진 늠름한 가장입니다.


그즈음 인근 산에 사는 수리부엉이가 밤마다 농장에 찾아와 병아리를 낚아채 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농장의 어른 닭들은 매일 밤 비상경계를 서며 농장의 병아리들을 보호했습니다.


달이 한창 차오르던 10월 어느 밤, 또 커다란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농장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며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어른 닭들은 더 경계를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 섬광처럼 번뜩이는 빛이 아래로 내려 꽂히더니, 빼꼼히 고개를 내밀던 병아리 한 마리를 휙-! 낚아채어 하늘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엄마 닭과 아빠 닭, 농장의 다른 어른 닭들과 병아리들 모두 빽빽 울부짖기만 할 뿐, 높이 솟아오른 형제를 붙잡기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닭들은 삐약삐약 울부짖는 병아리 형제가 멀어져 가는 모습에 고통스럽게 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어두운 하늘은 야속하게 끝없이 아득해져만 갔습니다.

그때, 하늘 위에서 또 다른 검은 생명체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더니 그림자는 수리부엉이의 날개를 후려쳤습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수리부엉이는 급히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인근 풀밭에 병아리를 던져놓고 뒤따라 온 그림자와 격한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한껏 독이 오른 수리부엉이는 눈을 번뜩이며 그림자에게 돌진해 그의 목덜미를 잽싸게 물었습니다. 그림자는 치명상을 당했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수리부엉이가 그림자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고 확신한 순간, 느슨해진 틈을 타 그림자는 수리부엉이의 목덜미에 반격을 가했습니다. "꺽!" 수리부엉이의 외마디 비명 소리가 검은 숲을 가로질렀습니다. 그림자는 수리부엉이와는 달리 빈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수리부엉이 다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다 축, 처질 때까지 그림자는 수리부엉이의 목덜미를 결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움직임이 없어지자, 그때서야 그림자는 물고 있던 부리에 가했던 힘을 천천히 뺐습니다. 오랜만에 강한 천적과의 격투로 그림자도 기진맥진해졌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림자는 한편에 쓰러져 있던 병아리를 가볍게 입에 물고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형제를 잃은 농장은 울음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소란스러운 공간의 한가운데에 그림자는 큰 날개를 퍼덕이며 내려앉았습니다. 수리부엉이의 공격에 이어 알 수 없는 그림자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농장의 닭들은 혼비백산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몸을 숨길 곳을 찾느라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마당 한가운데에 병아리를 살짝 내려놓더니 이내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아, 흰둥이...!'

이제 기력이 다한 엄마 닭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멀리멀리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거대한 날갯짓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엄마 닭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래, 리틀 쌈닭,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였구나!"

엄마 닭의 얼굴에는 흐르는 눈물과 번져가는 미소가 함께 반짝거렸습니다.



* '미운 아기 오리' 이야기를 다시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양말 파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