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파는 할머니

'성냥팔이 소녀'를 재해석한 이야기

by 정혜영


동민이는 월요일이 싫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동민이네 반 선생님은 주말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발표를 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모두 주말마다 굉장히 바쁜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매주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거나 캠핑을 다녀오거나, 환상적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했다고 합니다. 간혹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친구 중에는 가족들과 멀리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동민이의 주말은 평소와 다를 것이 별로 없는데 친구들은 어떻게 이렇게 매주 바쁜 것인지 참 의아합니다.


동민이는 엄마와 단 둘이 삽니다. 동민이에게도 당연히 아빠가 있었을 겁니다. 동민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빠이지만요. 엄마는 동민이에게 아빠에 대해 별로 해 주신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동민이는 엄마가 함께 있어 괜찮습니다. 동민이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기만 하다면 다른 불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는 주말이어도 일을 나가시는 날이 많습니다. 엄마가 고정적으로 쉬는 날은 일요일 하루뿐입니다.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시는 엄마를 졸라 놀이 공원을 가거나 캠핑을 가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3학년인 동민이도 엄마가 하루는 쉬셔야 한다는 것을 알 만큼 철이 들었으니까요. 일요일 하루 종일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민이는 일요일이 정말 좋습니다.


그래도 매주 월요일 학교 가서 엄마와 하루 종일 둘이 있어서 좋았다고 매번 똑같이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친구들처럼 캠핑을 가거나 멋진 곳에서 외식을 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안 한 일을 지어 말할 수도 없습니다. 주말 동안 신나게 가족과 한 일을 발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친구들이 그때는 조금, 아주 약간,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민이에게도 주말에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엄마를 따라 서울에 다녀올 일이 생긴 것입니다. 엄마는 지하철도 타게 될 거라고 합니다. 엄마와 함께 난생처음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다녀올 거라니, 동민이는 어젯밤에 설레는 마음에 뒤척이다 늦게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평소보다 잠은 부족했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동민이는 평소와는 달리 아침부터 엄마를 재촉합니다. 모처럼 주말에 엄마와 서울까지 다녀오는 '가족여행'을 더 빨리 떠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엄마랑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곳도 가고 싶습니다. 특별한 일을 많이 해서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큰 소리로 주말에 한 일을 발표하고 싶습니다.


아침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서둘러 먹고 나서 엄마를 따라 지하철에 올라탔습니다. 지하철은 버스와는 달리 의자가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앞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니 모두 서울로 가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무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동민이는 그 사람들의 진짜 얼굴 표정은 아마 저 표정과는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서울까지 데려다주는 지하철이 오늘은 동민이네 자가용입니다. 자가용이 없어서 여행을 못 다닌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지하철 자가용'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가족여행을 다녀올 걸. 동민이는 일찍 알려주지 않은 엄마가 오늘은 조금 야속합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엄마와 멋진 여행을 하는 날이니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여행이 다 끝나면 그때 엄마께 말해 볼 생각입니다.

"엄마, 나 지하철 자가용이 참 좋아."

하고 말이죠.


지하철이 출발한 지 10분 정도 지나 00역에 도착하자 할머니 한 분이 지하철에 오르십니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에 엄마의 검은색 생머리와는 다르게 흰머리를 곱슬곱슬하게 파마하신 분이었습니다. 키는 3학년 동민이만 하거나 약간 크실까? 엄마보다는 한참 작은 체구입니다. 할머니는 엄마가 장 보러 갈 때 가끔 가져가시는 장보기용 캐리어를 밀고 들어오셨습니다.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를 밀고 할머니가 들어오시자 동민이는 자리를 내어드려야 하나, 엄마를 쳐다봅니다. 엄마께서 괜찮다는 고갯짓을 하시며 다른 편 의자를 바라보셨습니다. 맞은편 의자에 빈자리 하나가 보입니다. 동민이는 할머니께서 얼른 그 빈자리를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캐리어 지퍼를 여시 더니 뭔가를 꺼내셨습니다.

잠시 후, 할머니가 가방에서 꺼내 드신 것은 '양말 뭉치'였습니다. 할머니는 알록달록 무늬가 있거나 검은색, 흰색 등 모양, 색깔별로 묶여있는 양말 뭉치 여러 개를 꺼내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무릎 위에 양말 한 켤레씩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할머니는 양말을 놓으실 때마다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양말을 주시면서 왜 미안하다고 하시는지 동민이는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동민아, 이 양말 사면 신을래?"

엄마가 말씀하시고 나서야 할머니께서 사람들 무릎 위에 올려놓으신 양말이 팔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양말엔 검은색 물방울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동민이는 물방울무늬 양말은 별로입니다. 여자 아이 것 같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싫다고 했을 텐데, 오늘은 괜찮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민이는 엄마에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할머니께서 사람들 무릎 위에 올려놓으신 양말을 다시 걷어가실 때, 핸드폰을 보던 무표정의 사람들이 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조차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동민이는 고개 숙인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을지 궁금해집니다.

엄마 차례가 다가오자 동민이는 '엄마도 안 사면 어떡하지?' 걱정이 됩니다. 엄마가 지갑을 꺼내 5천 원을 건네시고 양말 몇 개를 받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입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할머니는 아까 "아이고, 미안합니다" 하실 때와 똑같은 말투로 말씀하셨지만 이번에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동민이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꾸벅 인사드리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할머니는 캐리어 지퍼를 천천히 닫고 느릿느릿 캐리어를 밀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굽은 허리로 불편한 걸음걸이를 캐리어에 기대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셨습니다. 동민이는 할머니가 지하철 다음 칸으로 옮겨 가는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봅니다.


"엄마, 저 할머니 힘드시겠다."

"음, 그러게. 무거운 가방 밀고 다니시기엔 힘드실 나이신 것 같은데..."

"근데, 왜 저렇게 힘들게 양말을 파시는 거야?"

"......"


엄마가 빨리 대답해 주지 않아서 동민이는 답답해졌습니다.


동민이는 할머니가 지하철 다음 칸에서 양말을 과연 몇 개나 파셨을지 궁금합니다. 다음 칸에도 핸드폰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을지 궁금합니다. 다음 칸에도 얼굴에 표정 없는 사람들만 가득 탔을까 봐 조금 걱정됩니다. 양말을 좀 더 많이 사달라고 엄마에게 졸라 볼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됩니다.


동민이는 처음 타보는 지하철의 속도가 이렇게 빠른 줄 몰랐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무엇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동민이 외할머니처럼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양말을 파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하철 속도와는 반대로 느리기만 했던 할머니의 걸음걸음... 지하철 다음 칸으로 사라져 가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동민이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동민이는 모처럼 엄마와의 지하철 가족 여행에서 겪은 특별한 일들을 내일 학교에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생각해 봅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으로 몸을 따뜻하게 덥히다 소녀의 할머니가 계신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그럼 양말을 파는 할머니는 양말을 다 파시면 어디로 가실까요? 그 할머니도 할머니의 엄마나 할머니가 항상 함께 해 주시겠지, 생각해 봅니다. 동민이가 항상 엄마와 함께인 것처럼요.


내일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양말팔이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그 할머니의 엄마와 할머니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 밤에도 동민이는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성냥팔이 소녀'를 재해석 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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