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잘 모른다.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명품을 좇는 사람에 대해 다른 편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너무 몰라서 무식해 보일 정도라 이제는 모르지 않는 척한다. 그렇다고 예쁜 옷이나 가방, 신발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식단 조절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예쁜 옷을 오래 입고 싶다는 게 큰 이유일 테다. 오히려 예쁜 것 하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싼 거 하나 살 돈으로 좀 더 합리적인 가격대로 여러 개 사자는 주의. 난 그런 쪽이다.
남편은 나와 반대다. 하나를 사더라도 때깔 나는 것으로, 누가 봐도 "오~ 좀 주고 샀겠는데?" 하는 것으로 사자는 주의다. 좋은 것을 사야 오래 쓴다는 이유인데 아무래도 내 눈에는 갖고 싶은 거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은 사람의 핑계로만 보인다. 내 눈엔 특별할 것도 없고 더 합리적인 가격대의 비슷한 물건도 널린 것 같은데, 다르다니 아무래도 이 간극은 좁혀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나이도 있는데 좀 괜찮은 걸로 사."
내 나이 불혹이 지난 어느 날 가방을 하나 살까, 고민하던 내게 남편이 말했다. 누가 봐도 알만한 브랜드 제품 하나쯤 가질 나이가 됐다며. 천 쪼가리들만 매고 다니면 너무 없어 보인다며.
합리적인 소비에 대한 고민은 아주 잠시. 곧 소위 '명품'이라는 이름의 가방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는 게 없었다ㅠ 남편에게 명품 브랜드명을 말해 보라고 하니 여러 개를 나열했는데 그중에는 그래도 익숙한 이름도 몇 개 있었다. 그러나 브랜드와 디자인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나는 브랜드명 만으로는 원하는 물건을 고를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답답해졌는지 남편은 직장 동료들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들 중에 마음에 드는 가방의 로고나 문양을 알려달라고 했다. 하나 생각 나는 게 있었다.
"V자 모양이 다른 알파벳이랑 겹쳐 있고 꽃 모양이 있던 것 같은데..."
남편은 이렇게 말하는 내가 그렇게 웃긴지 큭큭대더니, "비싼 건 알아가지고." 하는 거였다(그것이 루이** 가방이었음은 말 안 해도 짐작하셨겠지요?). 더 말했다간 무식이 다 드러날까 이쯤 그만해야겠다.
남편은 그 제품은 모조품이 많다며 다른 제품을 추천했지만, 난 일단 내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사 주어도 싫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때 내 생애 처음으로 명품이라는 이름의 가방을 하나 갖게 되었다. 한때 좀 갖고 다니다가 아이들 글쓰기 공책이나 수업 자료를 함부로 넣고 다니기에 적당치 않아 이내 천 가방으로 바뀌었지만.
그렇게 명품을 줄줄이 꿰고, 오래 참았다가 마음에 드는 명품이 세일할 때 사는 남편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가죽 공예'다. 오물딱 조물딱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라 남편과 가죽 공예는 낯설지 않은 조합이었다. 내 옷에 똑딱이 단추를 달아주던 바느질 솜씨가 야무지니 가죽 제품 바느질도 어느 정도는 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얼마 하다 말겠지. 길면 한 달 각이라고 생각했다. 책 읽고 글 쓸 나만의 공간을 위해 만들어 준 책상이 남편의 가죽 공예 공구들로 하나, 둘 채워질 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남편의 첫 작품 by 그루잠
그런데 끝나 지지가 않았다. 연습용으로 만들어 본다던 내 장지갑을 시작으로, 핸드폰 가방, 카드 지갑, 허리띠, 동료의 시계줄까지... 물건을 만들수록 남편의 바느질은 점점 정교해지고 가죽 테두리에 바르는 엣지 코트 마감은 더 부드러워졌다.
남편의 두 번째 작품 by 그루잠
퇴근 후 지치고 무력해진 표정으로 매일 TV와 핸드폰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남편이 그렇게 달라졌다. 요즘 그는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가죽을 붙들고 앉아 자르고, 바느질하고 엣지 코트를 바른다. 누가 시켜서는 절대로 하기 어려운 일. 좋아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임엔 틀림없다. 나의 공간 침해 기간이 길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짙어지지만, TV나 핸드폰만 바라보던 남편의 공허한 눈동자와는 분명 달라진 눈빛이 나의 인내를 키워낸다.
직장 동료 몇몇에게 남편이 만든 지갑 몇 개를 보여주었더니 관심 있어하는 사람도 생겼다. 남편에게 전했더니 대번에 주문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남편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본 나는 남편이 만든 가죽 제품들이 둘도 없이 소중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의 앎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까지 고양시켜주지는 않는다. 물건의 귀함이 다른 이들의 소비 가치와 항상 같을 순 없다. 아무리 연습을 했다고 해도 남편은 초보 가죽 공예가다.
그러나 주말 하루를 통째로 쓰고 새벽까지 엣지 코트를 하던 남편의 물건에 얼마의 값을 매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남편은 아무리 공들여 만든 물건이라도 자신이 초짜임을 알기에 비싼 값을 부를 수도 없다.
결국 직장 동료가 주문한 카드 지갑 두 개를 만들어 주고받기로 한 금액은 남편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값이었다. 그것을 고스란히 알면서도 돈을 주고 사는 소비자의 입장도 모르는 바가 아니니 앞으로도 남편의 물건을 제대로 영업하기는 아무래도틀린 것 같다.
남편이 만든 카드 지갑 컬렉션 by 그루잠
왜 명품을 명품이라 부르는지 이제야 알겠다.
물건을 사용할 상대방을 생각하며 한 땀, 한 땀(이 말이 그냥 과장된 말이 아님을 이제야 안다) 바느질하고 애지중지 재료를 다루는 손길에 가격을 매기기는 어렵다. 남편의 노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에 보내려니 이 아이들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찾아보면 비슷한 디자인과 재료로 된 물건들은 어디든 있을 테다. 그러나 이 물건들에 들인 정성을 보아 알고 있는 내겐 이 물건만큼 특별한 것은 없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람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것, 이런 물건을 '명품'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부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