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학년 때 선생님을 기억하세요?

저는 초 2 담임 선생님 얼굴이 기억이 안 나요ㅜ

by 정혜영


만들기와 줄넘기 수업으로 하루를 보내니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하루였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하나씩 손에 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뒤, 교실에서 한숨 돌리며 오늘 하루도 나를 도와 고군분투하신 협력 선생님과 뒷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학부모로 보이는 어떤 어머님 한 분이 교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내쪽을 건너보고 계셨다. 어머님과 키가 비슷한 학생과 함께였다.

"뉘신... 지요?"

"선생님, 저 구름이(가명) 엄마예요."

내 눈이 대번에 커졌다.


구름이. 영특한 눈빛을 가졌으나 자신을 쉬 내보이지 않던 아이. 이제 1학년에서 올라온 아이답지 않게 조숙하게 행동하던 아이. 3년 전 내게로 온 꽃들 중 하나였다.


"선생님, 구름이 전학가게 되었어요. 가기 전에 선생님께 인사는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러고 보니 구름이 엄마 옆에 엄마만큼 훌쩍 큰 키의 아이는 바로 구름이었다. 그 꼬맹이가 벌써 5학년이라니. 5학년 여학생이라면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했을 텐데 엄마를 따라 몇 년 전 담임을 찾아와 주다니, 그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전학 가기 전에 찾아와 인사를 건네 준 고마움에 뭉클한 쪽은 나인데 구름이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선생님께서 우리 구름이 학교를 다시 다닐 만한 곳으로 생각하게 해 주셨잖아요. 그 뒤로 무탈하게 학교 다닐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구름이 어머니 눈엔 이제 그렁그렁 눈물 가득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구름이와 구름이 엄마가 웃는 모습이 감사해서 구름이 엄마를 꼬옥 안아드렸다.


구름이 엄마의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실 과분하다. 내가 구름이에게 뭔가 특별한 관심이나 사랑을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그저 구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구름이나 구름이 엄마에겐 그게 더 마음에 닿았던 모양이었다.


구름이가 1학년 때 힘겨운 학교 생활을 했었다고, 구름이 엄마는 3년 전 상담 때도 눈에 눈물이 그득했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좋은 기억도 아닐 일을 캐묻지 않았다.


구름이와 나는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인연으로 만났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과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나와 맞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인연으로 괴롭거나 뜻하지 않은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 않던가. 구름이의 얼굴에 생긴 아이답지 않은 그늘이 깊어지지 않도록만 하고 싶었다. 구름이가 타고난 웃음을 자주 보여 주기 시작하면서부터 구름이 엄마의 표정도 조금씩 환해져 갔다.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아이만 1, 2학년을 겪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부모도 1, 2학년 부모가 처음이다. 첫 아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부모로서도 처음 맞이하는 일이라 때로는 환희에 들끓다가도 때로는 당황스럽다. 내 아이의 성장을 보며 자주 어릴 적 자신과 대면하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에게 생긴 일에 더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부모는 이전과 다른 어른의 세계를 경험한다. 나의 분신이 어릴 적 자신보다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그건 내 한 몸 잘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과는 분명 다른 차원 세상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행불행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난 초등 2학년 때 담임 선생님 얼굴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2학년을 제외한 다른 선생님들은 어렴풋이 얼굴이라도 떠오르는데 왜 2학년 때 선생님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걸까? 선생님께서 운동장 구석구석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시던 기억은 나는데 그 선생님 얼굴만 생각이 안 난다.

왜 그럴까,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혹시 나의 2학년 시절은 가장 평안한 시절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비교적 안온한 시기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더 기억에 오래 남기 마련이다. 갑자기 시골로 전학했던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힘든 시기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좋은 기억으로 각색되곤 하는데, 무탈했던 시기라면 기억에 오래 남을 리 없다.

아마 나의 2학년 때 선생님은 내 마음에 크게 동요를 일으키지 않으셨던, 무난한 선생님이셨을 것이다. 하다 못해 꿀밤이라도 한 대 놓으셨다면 난 두고두고 선생님을 기억했을 텐데(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내 머리에 놓은 꿀밤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대게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시기의 선생님을 더 오래 기억한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6학년 시기의 담임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다.

구름이는 전학 간 뒤에도 대학에 진학하고 직업인이 되었을 때 소식을 전하기로 약속했지만, 무난하게 보냈던 2학년 때의 담임을 언젠간 까맣게 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일평생 겪을 수많은 감정들을 보듬으며 살아갈 구름이가 어느 한 시기라도 편안함에 잊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바람이 있다면, 세상에 "너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주라는 나의 당부와 우리가 함께 나눈 마지막 포옹이 구름이에게 따뜻하게 기억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때 선생님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뭔가를 배우려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흐뭇합니다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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