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를 통한 단상

by 정혜영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의 방식을 결정한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이 가설은 이 영화에 흐르는 기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컨택트>는 SF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이지만 나 같은 문과 편향의 사고를 지닌 이에게 매우 흥미로운, 인문학적인 SF영화이다.

감독들이 SF물에 철학적인 고뇌의 흔적이나 인간성 지향적인 주제를 담는 것을 보면 과학도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 안에서 효용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리라.


<컨택트>는 SF 드라마, 12세 관람가의 미국 영화로 캐나다 출신 감독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이다.

중국(대만)계 미국인 소설가 테드 창의 SF 단편 소설 원작인데, 원작 속 몇 문장을 보고 감독의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감독의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를 보고 담고 있는 독특하고 충격적인 서사와 영화적 표현 방식에 반해서 여러 편의 감독의 영화를 이어 봤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에너미>, <프리즈너스>, <블레이드 러너 2049> 등 하나같이 독특한 발상과 치밀한 스토리, 흥미로운 반전 등 영화적 재미가 엄청난 작품들이다.


<컨택트>는 각종 영화제에서 각본, 각색상, 음향상 등을 수상하고, 89회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음향편집상을 수상했다. 음향편집상을 수상한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모든 영화들에서는 장면 장면마다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적인 음향 효과가 굉장히 뛰어나 마치 현장에서 지켜보거나 배우들과 함께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다음부터는 영화 내용 스포이니 참고하시길. :-)

우리는 너무 시간에 얽매어 있어. 그 순서에...


이와 같은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분)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와 엄마가 등장하고, 행복한 일상의 모습이 주인공의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게 전개된다.

루이스는 언어학 전문가로, 어느 날 '쉘'이라 불리는 12개의 외계 비행 물체가 지구에 도착해 세계 각지의 상공에 등장하자, 과학자인 이안(제레미 레너 분)과 함께 외계인이 지구에 온 목적을 밝히는 일을 맡게 된다.

루이스와 이안은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 방어벽 너머 두 명의 외계인과 접촉한 후, 이 외계인들에게 7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와 같은 외형에 '헵타 포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루이스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음성언어 대신 그들의 표기문자를 유도해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인간들이 보통 사용하는 어휘들을 가르치고, 그런 어휘들을 그들이 표기하는 방식을 연구해 나간 끝에, 군에서 알고자 하는 궁극적인 질문,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다. 루이스가 그들의 답을 '무기를 준다'로 해석하자, 중국을 위시해 동조하는 몇몇 국가에서는 경계태세를 갖추고 외계인을 상대로 무력으로 상대하려고 한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루이스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무기'라는 해석이 과연 맞는 것이었을까? 더군다나 루이스는 일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떠오르는 아이의 모습에 혼란스럽다. 미혼인 그녀에게 자꾸 나타나는 그 여자 아이의 정체는 또 누구일까?


선형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인간의 사고체계와는 달리 한 번에 통으로 의사소통하는 외계인들은 시간 역시 통으로 바라본다. 과거, 현재, 미래가 순서대로 일어나는 일이 아닌, 통으로 일어나는 일로 사고한다는 것.

사피어 워프 가설처럼, 외계인의 언어를 배워 이해하게 된 루이스가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사고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대학 시절, 한창 영어 배우러 다니던 때, 하루 몇 시간씩 영어 테이프를 들었더니 나중에는 영어로 대화하던 꿈을 꾸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아~ 옛날이여~ 지만.ㅎㅎ

외국어를 배우면 언어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그 언어의 문화까지 익히게 되어 외국어로 말할 때와 우리말로 말할 때 나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루이스가 외계인의 시간을 통으로 사고하는 언어를 배움으로써 자신의 삶을 통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어요?


그녀가 미래의 남편인 그에게 한 이 질문에 대해 나도 생각을 해봤다. 과거에 내 미래의 삶을 다 볼 수 있었다면 나는 다르게 살았을까...?

부분적으로 그러고 싶은 시기나 상황도 있었겠지만 큰 흐름은 그대로 이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미래의 행, 불행을 함께 보게 될 텐데, 그 상황을 내가 행복으로 받아들일지, 불행으로 받아들일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판단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미래의 딸에게 지어준, 앞으로 읽어도 뒤로부터 읽어도 같은 형태인, 한나(Hannah)라는 이름은 삶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 루이스가 바라보는 삶의 태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미래를 다 알면 살아가는 게 재미없어서 싫겠다, 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니 생을 다 알고, 그 속에 어떤 불행이 함께 한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들을 비켜가지 않고 살아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이란, 그 자체가 불행일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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