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참정권을 끌어낸 운동, <서프러제트>

by 정혜영
We don't want to be law-breakers.
We want to be law-makers.


이 말은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지도자였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연설 중 한 말이다. 법적 권리를 가진 주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회에 던지는 결연함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서프러제트'는 1880년대~1910년대 영국 등 서구권 국가에서 벌어진 일련의 여성 참정권 투쟁을 일컫는 말로, 특히 이 영화에서는 1000여 명이 넘는 영국 여성들이 투옥되며 일궈낸 20세기 초 동명의 영국 여성의 참정권 운동에 대해 그리고 있다.


<서프러제트>는 여성 제작자, 여성 감독, 여성 각본가에 의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2016년 개봉 당시 일부 예술영화 상영관 등에서 일주일만 상영할 예정이었으나, 각종 페미니즘 단체의 연장상영 요청이 쇄도하여 한 달 가까이 상영되었던 영화라고 한다. 여성 인권을 다룬 영화에서는 남성 배우들이 조연에 그쳐야 하는 관계로 남성 역할의 배우들이 지원을 꺼렸다고 하니, 이런 영화에서 매력적인 유명 남성 배우를 만날 날은 요원한가 보다.


외유내강형의 지적인 미모의 배우, 캐리 멀리건이 주연을 맡고 대배우 메릴 스트립이 서프러제트 운동의 지도자인 에멀린 팽크허스트 역으로 분한다. 캐리 멀리건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사랑한 여인, 데이지 역으로 절제된 연기와 미모를 선보였던 배우다.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에서 등장한 분량이 5분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짧은 시간에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내가 메릴 스트립이다!"를 각인시켜 줄 만큼 강렬하다.




런던 1912년.
여성들은 평등과 투표권을 얻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평화적 시위를 지속해 왔지만, 이들의 주장은 묵살되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 지도자인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이에 대응하여 전국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일으켰다.
이 이야기는 그 투쟁에 참여한 한 여성 노동자 단체의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첫 자막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는 남편(벤 위쇼)과 함께 20세기 초 영국 세탁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가난한 살림이지만 어린 아들과 그럭저럭 살아가는 평범한 하층 노동자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본분에 대해 어떤 의심 없이 충실히 살아온 여성이다. 거리에서 서프러제트 단체 여성들이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며 상점의 유리창에 돌을 던지는 거친 투쟁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큰 동요를 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모드는 이 단체의 회원인 직장 동료 바이올렛(앤 마리 더프) 대신 의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증언을 한 이후 여성 참정권 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공장 감독관의 어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 장면과 여성들의 평화 시위에 대한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의 부당성에 직면하며 여성으로서의 삶과 꿈, 미래와 정의에 대해 각성하게 된다. 그렇게 모드가 여성노동자 단체의 활동에 참여할수록 모드의 남편은 그녀를 집 안의 수치로 여기며 어린 아들에 대한 엄마로서의 권리도 빼앗아 버린다.





영국의 서프러제트 운동은 활동가인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의 참정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국왕이 참석하는 경마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다 말에 치여 죽음을 당하게 되며,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영국 여성들의 추모와 참여를 이끌어낸다. 그 결과, 1918년 마침내 30세 이상의 특정 여성들의 투표권과 1925년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법적 권리 인정을 이끌어냈다고 하니, 거대한 변화는 큰 희생 없인 불가능한 일인가.


우리나라 여성 참정권도 1948년에 인정되어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 70여 년밖에 안 됐다니 놀라운 일이다. 오랜 기간 동안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폭력적인 기득권에 절로 화가 나는 영화이다.

아내를 걱정한다는 핑계로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는 아내를 단속하고 끝내 수치로 여기는 남편에 대해 모드가 느꼈을 분노와 배신감이 내게도 오롯이 느껴졌다. 딸을 낳았다면 그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고 묻는 모드의 질문에,

Same as yours. (당신과 같은 삶이지.)

라고 답하는 남편의 대답은,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 삶이 어떤 모습일지를 가감 없이 말해 주는 것 같다.


백인이나 특권 여성층 위주의 참정권 운동이었다는 비판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억압에 분노하고 투쟁을 통해서라도 권리를 찾는 당시 여성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며, 나부터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대해 어떤 점을 간과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