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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Dec 22. 2022

감당할 수 있겠나, 자네?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이라니요.


학창 시절, 학예회... 기억나시나요?

특히,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요.

노래와 율동, 악기 연주... 공부 잘하는 똑똑한 친구들만 주인공이던 일상의 학교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재능으로 일약 스타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학교 행사였잖아요.


내일은 우리 반 학예회가 있는 날이에요. 저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기만의 끼와 재능을 펼치는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아이들 반응이 분분해요. 어떤 아이는 빨리 학예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학수고대하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생각에 가슴이 떨려 죽겠대요.


어제 국어 시간에 말과 행동을 실감 나게 따라 해 보는 학습 시간이었어요. 이틀 후면 학예회이기도 하니, 짧은 말과 행동을 짝과 연습하고 친구들 앞에서 실감 나게 보여주기로 했지요. 일종의 학예회 발표 연습 시간이었던 거죠.

뭘 시켜도 부끄럼 1도 없는 대담이들이야 무슨 걱정이겠어요. 발표라는 말만 나오면 전체가 다하는 거냐고 먼저 묻는 수줍이들에겐 긴장의 시간인 거죠. 그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듯 릴레이 발표를 시켜 버렸어요. 쭈뼛거릴 새도 없이 앞줄 아이 둘이 끝나면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연결해서 보여주는 식이었지요.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동으로 후루룩 진행되니 28명 전체 아이들이 시간 내에 모두 발표를 마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어진 쉬는 시간.

화장실에 들렀다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우리 반 남자아이 하나가 반쯤 열린 교실 뒷문에 기대고 쪼그려 앉아 있는 거예요. 아이에게 다가가 왜 거기 앉아 있냐고 물었더니, "발표 후유증"인 것 같대요. 언젠가 자기는 발표 공포증이 있다고 말했던 아이예요. 반 전체가 모두 하는 발표에다, 짝과 함께 주고받는 말과 행동이다 보니 못한다고 할 수 없어 하긴 했던 모양인데, 후폭풍이 장난이 아니었던가 봐요.

 

아이는 발표 후 심장이 너무 쿵쾅쿵쾅 뛰어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라고 했어요. 교실에서 발표할 때는 그렇게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연습한 대로 친구와 역할 놀이를 잘했는데 끝나고 나니 애써 눌렀던 긴장감이 확 몰려왔나 봐요.


"괜찮아. 선생님 따라서 숨을 깊이 내쉬어봐."

아이와 같이 눈을 맞추며 교실 밖에서 심호흡을 했어요. 숨을 흐흡, 깊게 들이켰다가 후- 크게 뱉어내고 또 흐흡, 후-. 아이와 서, 너 번 깊은 심호흡을 하며 전 아마 저의 떨리는 마음을 함께 다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실로, 꿈만 같습니다.

저의 브런치 이름, '그루잠(깼다가 다시 드는 잠)'처럼 너무 달콤하여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친구들 앞에서 하는 발표를 그렇게 열심히 독려하더니, 정작 자신의 브런치북 대상 수상 발표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참 우스운 꼴이지만, 사실이었답니다.


언젠가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딸이 한창 사춘기의 터널을 통과할 무렵에 자기 핸드폰 연락처에 엄마인 저를 이렇게 저장했던 적이 있었어요.


'안 받는 게 좋을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자네?'


수상 후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을 때, 저는 왜 딸아이의 이 문장이 떠올랐을까요?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브런치 작가들에게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너무 잘 알기에, 수많은 넘사벽 작가님들의 글 앞에서 쪼그라든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에, 그럼에도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해 봤기에... 수상 소식의 무게가 잠시 버거웠었나 봐요.  안의 소심이가 고개를 들고 묻는 거죠.

너, 감당할 수 있겠어?


그러다 다시 <어린이의 문장>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 그 초심을 떠올려 봤어요. 한없이 스스로가 불만족스럽고 위축되던 날,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혼자 큭큭 거리다 갑자기 코가 찡- 해오던 순간들을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글에 내가 왜 리 마음이 요동치나 싶었는데... 아이들의 꾸밈없고 솔직한 글에는 '진심'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진심 앞에는 무장해제 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아이들의 진심이 기적을 만들었으니 저도 진심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다시 마음먹습니다.

모든 영광을 수상작의 주인공인 어린이들과 제 글의 독자분들, 언제나 이곳에서 다정하게 격려해 주시는 이웃 작가님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어린이의 문장>이 좋은 책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제 프로필 사진을 바꿨어요. 브런치 담당자께서 저작권 문제 등 불필요한 문제를 사전에 불식시키기 위해 기존에 제 프로필 사진(에바 알머슨 화가의 작품) 변경 여부를 여쭤 오셨거든요. 사진은 제 첫 에세이 표지 그림입니다. 안경 쓴 에바 알머슨 여인 쯤으로 여겨 주세요~^^


https://brunch.co.kr/@brunch/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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