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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19. 2023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모리 선생의 못다 한 이야기


"엄마, 이 나이에도 무릎, 허리, 목 안 아픈 데가 없는데 엄마는 괜찮아?"

물리치료받을 일이 잦아지자 친정 엄마와의 통화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젊은 줄 알았더니 벌써부터 그러느냐"며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에 근심이 어렸다. 50년이나 썼는데 닳는 게 당연하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도 앞으로 30년 이상 쓰게 될 몸이라 생각하면 내심 까마득해졌다. 젊었을 땐 어르신들은 모이기만 하면 아픈 곳이나 먹는 약 이야기만 할까? 의아해했었는데 요즘 나도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효과 좋은 영양보조제'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지 오래다. 한참 무슨 약이 좋다더라, 이야기를 나누다 이렇게 늙어가나 봐, 하며 허허 웃고 만다.


무릎 염증으로 한 달 정도 물리치료를 받을 때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대수롭지 않아 했었는데, 족저근막염으로 더 이상 조깅을 할 수 없게 됐을 때는 마음이 몹시 상했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잘 컨트롤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노화'를 인식하게 되는 것인가.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된다던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떨어지는 체력에 정신력도 함께 나약해지나 싶어 뾰로통해진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를 보며 노화가 더 진행되었을 때 내 몸이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를 가늠해 본다. 70대 중반인 친정 엄마는 오래 서 있는 게 무리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몸을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올해 팔순을 맞으신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과수원 농사를 지으시며 무거운 물건을 많이 르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릎 관절이 굉장히 약하시고 허리를 곧게 펴는 자세가 잘 안 되신다. 일상의 거동이 불편하시니 삶의 질이 낮아져 걱정스럽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여 두 분 모두 홀로 지내시게 되면서 건강과 돌봄 문제가 항상 근심거리다. 갱년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심리적인 징후도 안심할 수 없는 문제다. 두 어머니의 신체적, 정신적 노화를 보면 내 미래를 보는 듯해 나이 듦이 서글퍼진다. 


그렇다고 노화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친정 엄마는 젊은 시절보다 훨씬 온화해지셨다. 혼자서 책임지고 감내해야 할 일이 많았던 젊은 시절엔 더 예민했고 완고하셨다. 지금은 본인이 먼저 결정하시기보다 성장한 자녀들의 의사를 먼저 물으시고 경청하신다. 좀처럼 타인을 잘 믿지 못하시고 경계하시곤 했었는데 지금은 마음을 여는 지인과 소통하시며 전보다 인간적인 정을 더 나누신다. 시어머니는 원래도 정이 많으시고 선한 분이시긴 했지만 출가한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 대한 정은 더 깊어지셨다. 적지 않게 나이 든 며느리인 내게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으신다. 애정을 한껏 열어 표현하시는 두 할머니를 손자, 손녀들이 싫어할 리가 없다.


두 어머니들의 넉넉한 마음과 가족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정, 깊은 배려를 대할 때면 내 노년기의 모습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런 생각은 모리 슈워츠 교수가 루게릭 병으로 돌아가신 뒤, 교수님의 책장에서 발견된 원고를 엮은 ,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읽고 더 확고해졌다.


책에서는 아브라함 헤셀(독일 태생 유대인 신학자)의 말을 인용해, 노년을 '침체기가 아니라 내적 성장을 이룰 기회의 시기'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노년을 맞이한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이들을 떠나보내는 상실감을 맞기도 하지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숙고하며 노후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찾는다. 인용된 또 다른 책, <에이지 웨이브>(켄 디히트발트, 미국의 노인학자이자 심리학자)에서는 "과학적 연구를 거듭한 결과, 활동적이고 지적인 도전을 계속한 노인들은 기민한 두뇌를 유지할 뿐 아니라 더 장수한다"고도 한다.


타인들의 눈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사느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다면 노년의 삶은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볼 마지막 기회다. 모리 교수는 노화의 어려움과 기회 속에서 각자의 필요, 관심사, 능력에 맞는 최선의 생활 방식을 찾아 '웰 에이징(잘 나이 드는 것)'하는 방법을 찾고 '나다움', '나다운 생'을 살라고 북돋운다.


모리 교수가 전하는 웰 에이징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마음을 열어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하자.

-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자존감을 높여줄 사람들을 찾고 그들로부터 존중을 받자.

- 인연을 이어가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온전히 집중하자.

- 매일 웃을 거리를 찾고 온몸으로 크게 웃자.

- 낯설고 변하는 상황을 겁내지 말고 더 수용하려고 노력하자.

-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공동체를 비롯해 넓은 세상과 관계를 맺자.

- 집착하지 말고 신중하게 자신의 몸과 마음 건강을 챙기자.

- 삶에 '예스'라고 말하고 인생을 긍정하는 태도를 견지하자.

- 자신에게 진실하고 타인들에게 정직하게, 진정성을 추구하자.


'날마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인생은 이토록 멋진 것'이라는 인생 예찬을 모리 교수의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더 이상 어느 누구에게 '저울질' 당하거나 '점수 매겨질' 필요가 없는 '나다운 생'을 살 수 있는 기회로 본다면 노년은 막연히 두려운 시기만은 아닌 듯하다. 모리 교수의 말씀처럼 '창의적인 노화에 강제 은퇴란 없'음을 가슴에 새기고 내 노화를 좀 더 다정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



<이토록 멋진 인생이라니> by 모리 슈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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