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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11. 2023

내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을까?


올 것이 왔다.

9인 공저,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의 두 번째 출판 강연회가 마련된 것이다. 출판사에서 주관했던 첫 번째 강연회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을 때, 우선 아쉬움이 컸지만 한편 안도하기도 했었다. 강연자 숫자가 많으니 일인당 배정된 강연 시간이 얼마 되진 않았지만 강연이라니, 상상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다. 20년이 넘도록 교단에 서 왔지만 내 자식들 같은 아이들 앞에서 하는 수업과 불특정 다수의 성인들 앞에서 하는 강연이 같을 가 없잖은가.

당시 나를 제외한 8인의 저자들이 강연 준비로 분주히 주고받던 톡방의 대화를 부랴부랴 다시 찾아보았다. 다른 분들은 어떤 내용의 강연을 하셨나, 적어도 주제는 겹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공연히 마음만 부산스러워졌다.


이 글쓰기를 독려하는 내용이다 보니, 공저자들의 강연 주제도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쓴 글 고치는 방법'이나 '매력적인 첫 문장 쓰기'처럼 글쓰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팁을 제시하는 주제도 있었고 꾸준한 글쓰기의 힘을 강조하는 소재도 눈에 띄었다. 그럼 난 글쓰기와 관련하여 청중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까?



일기가 에세이가 되려면


글쓰기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글을 쓸 때마다 하는 고민이 있다. 브런치에 일상의 에세이를 올리면서 내 이름 아래 붙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글을 발행할 때마다 주저되는 지점이다. 내 글이 독자가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인가. 어쭙잖은 개인 일기를 꺼내놓는 것은 아닌가.


언제까지 일기와 에세이를 혼동하며 글을 발행할 때마다 걱정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인가. 그래, 강연 주제를 이걸로 잡아야겠다. 그래서 내 강연 주제는 이것으로 결정되었다. '일기가 에세이가 되려면'.


주제는 정했는데 내 생각을 강연 내용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이럴 땐 관련 책이 가장 접근성 용이한 족집게 과외 선생이다. 온라인 서점에 '에세이 쓰기' 키워드를 입력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관련 서적이 몇  없었다. 사람들이 '글쓰기' 관련 서적은 많이 찾지만 에세이 쓰기만을 염두에 두고 글쓰기를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도 난 항상 일기와 에세이 사이에서 고민이었는데.


마침 딱 내가 원하는 주제의 책을 발견하고 얼른 주문해 읽었다.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다 소설가로 등단한 도제희 작가 역시 자신이 처음에 에세이를 쓰려고 했을 때 관련 책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그래서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에세이를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다. '끌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글쓰기 기술'이라는 부재도 매력적이었다. 역시 노련한 편집자의 책 제목은 다르군. 독자로 하여금 일단 책을 집어 들게 하는 마력을 발산하지 않나. 책이 가격에 비해 이렇게 얇아도 되나? 싶었는데 읽고 보니 한 챕터도 허투루 버릴 게 없었다.


사진 출처: yes24


일기와 에세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독자의 유무'가 되겠다. 여기서 '독자'란 '자신을 제외한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칭한다. 나 외에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글을 쓰는 태도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독백을 내어놓는 글로 쓰지는 않을 테니까.


에세이는 '일상에서 겪는 평범한 순간을 포착해 보편적인 삶의 의미를 끌어내는 글'이다. 그런 글 속에서 읽는 이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글이 '좋은' 에세이인 것이다. 지적 욕구, 웃음, 정보 습득욕, 공감과 위로 등 독자의 무언가에 닿아야 휘발되지 않고 독자에게 머무르는 글로 남는 것이다.   



좋은 에세이의 조건은


그렇다면 좋은 에세이의 조건은 무엇인가? 작가는 다음 7가지를 제시한다.


- 타깃 독자가 뚜렷하다.

- 소재가 참신하다.

- 표현력이 좋다.

- 솔직하다.

- 정보가 들어 있다

- 통찰력이 있다

- 유머가 있다


내 에세이 <어린이의 문장>이 위 7가지 조건 중 얼마나 충족하는지 살펴보았다. 타깃 독자는 20~30 MZ세대였으나 정작 책을 구입한 독자들의 연령대는 40대가 가장 많았고 50대도 상당수였다(타깃 독자 설정 미쓰인가). 나만이 만날 수 있었던 아이들의 글을 소재삼아 썼으니 나름 참신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쓴 글을 솜씨 좋은 편집자가 교정, 교열해 주었으니 최고는 아니더라도 읽을만한 표현력은 갖췄을 테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솔직하게 썼다. 정보나 통찰력, 유머 등은 읽는 독자에 따라 판단이 갈릴 수 있겠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일기가 에세이가 되려면 고민할 지점이 상당하다. 그렇다고 저 7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좋은 에세이라는 뜻은 아니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유머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지만 넘치도록 훌륭한 에세이이지 않은가. 이 책에 유머가 난발되었다면? 상상하기 어렵다. 록산게이의 <헝거, 몸과 마음에 관한 고백>은 당혹스럽도록 솔직하여 읽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스베틀라나 알렉세이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에세이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 담긴 전쟁과 역사의식, 여성 문제 등은 인문학 서적에 못지않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나 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읽다 보면 이웃집 외국 언니들에게 정겨운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어 작가와의 내적 친밀감이 장난 아니다. 에세이는 다루고 있는 주제의 경중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에 작은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다음 에세이 작업에 돌입했다. 좋은 에세이의 조건 등을 본 뒤 글을 쓰려니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지만, 결국 에세이 쓰기는 자신만의 이야기로 보편성과 공감대를 얻는 과정이다. 좋은 에세이 조건을 따지다 보면 내 이야기가 어느 산으로 갈지 모른다. 그러니 찬찬하고 담담히 쓰되, 읽는 이의 마음에 닿을 수만 있다면 대체로 성공적인 글이라 하겠다. 과욕 부리지 않고 내가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을 부단히 써야겠다.


12월 2일(토) 하남 미사 도서관에서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 출판 강연회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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