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천재' 남편이 50 평생 처음 해 본 이 요리
떨어진 기력 회복에 이것만 한 것은 없습니다
이번엔 또 뭐람?
현관문 앞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흰 스티로폼 박스를 보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쑤시개조차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남편이 이번엔 또 뭘 시킨 건가. 주말을 앞둔 목요일엔 으레 남편이 주문한 주말용 식재료(주로 육류)가 당도하곤 해서 이번에도 그런 종류겠거니, 했다.
보낸 사람 정보를 흘낏 보니 '옥수*산'이라고 씌어 있었다. 옥수... 수?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 생각은 과거 경험에 기인한 것이었다. 예전에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남편 지인이 옥수수 한 상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옥수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 머릿속에 '옥수수 맛있게 쪄내는 비법' 따윈 저장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도 한 상자 가득한 옥수수를 보며 한숨부터 나와 몇 봉지로 소분하여 여기저기 다 나눠줘 버렸다. 그러니 다시 만난 '옥수..'로 시작하는, '옥수수'임에 틀림없는 택배물이 반가울 리가. 한 번만 더 생각해 봤더라도 여름이 제철인 옥수수가 12월에 산지에서 택배 배송될 리 없음에도 한 번 강하게 뇌리에 박힌 기억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게 했다.
스티로폼 상자를 주방 한편에 팽개쳐 두고는 남편이 퇴근 후 돌아오면 처리하게 할 작정이었다. 전날 먹다 남은 닭볶음탕을 데워 호젓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과 주방 경계에 놓인 흰 스티로폼 박스가 남편 눈에 안 띌 리가 없었다.
"이게 뭐야?"
"옥수.. 뭐라고 쓰여 있는데 뭔지 모르겠어."
"또 옥수수 보냈나 보네."
단순한 사고는 우리 부부의 유일한 공통점인가. 남편 역시 처치 곤란했던 지난날의 옥수수를 먼저 떠올렸던 모양이다.
"내일 학교 가져가서 다 나눠줘 버릴 거야."
내 말에 남편이 두말없이 찬성했다. 자기 몫으로 온 감당불가 택배물을 아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며칠 뒀더니 옥수수수염 상태가 금세 별로던데. 이번엔 내일 당장 소분해 나눠주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불현듯 며칠 전 친구가 보낸 톡이 생각났다.
"주소 보내봐."
"당장."
무슨 일인지 궁금함이 앞섰지만 친구의 짧고 단호한 메시지 어조에 이끌려 손가락은 집주소를 누르고 있었다.
그 친구는 중학교 동창으로 중3 때는 짝꿍이기도 했던 절친이다. 일주일 전에 내가 두 번째 코로나에 걸려 병가를 내고 골골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세발낙지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전라남도 무안에 살고 있는 친구가 그 유명한 '무안 세발낙지'를 보내겠다는 말에 오래전에 먹었던 싱싱한 '낙지 탕탕이'가 떠올랐다. 전라남도에 근무했을 때, 제철이면 동료들과 먹으러 가곤 했던 '무안 세발낙지'를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였는지... 수도권으로 옮겨온 뒤 낙지 탕탕이를 먹어 본 적은 있지만 현지에서 먹던 그 맛과 비할 수가 없었다.
그때서야 예전의 옥수수는 종이 박스에 담겨 왔었다는 것과 지금은 여름이 아닌, 겨울 초입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 선명해졌다. 스티로폼 박스에 붙은 보낸 이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그제야 '옥수*산'이 '옥수수'가 아니라 '옥수 수산'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어떻게 철석같이 '옥수수'로만 믿었던 걸까. 어이가 없었다.
밀봉된 테이프를 제거하니 물과 내용물로 채워져 꽁꽁 묶인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다. 내용물은 발가락들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틀림없는 '세발낙지'. 꿈틀거리고 있는 수십 마리의 세발낙지들을 보니 꺅! 비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친구가 세발낙지를 보낸다고 했을 때, 내 주방에서 살아 꿈틀대는 세발낙지 수십 마리를 대면하게 될 줄은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난감해하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손질을 시킬까 봐 남편이, "난 못 한다"며 먼저 선을 그었다. 그렇게 많은 식재료로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던 '요리 천재, 셰프 킴'은 어디 가고 살아 움직이는 낙지 앞에 한껏 납작해진 '장삼이사 김서방'만 있었다.
진저리를 치며 절대로 안 할 것 같던 남편도 결국 살아있는 낙지에 손 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 KO패 당하고 말았다. 고무장갑은 갑갑해서 안 끼던 사람인데 도저히 맨손으로는 만질 엄두가 안 났는지 남편은 제일 먼저 고무장갑을 꼈다. 세발낙지를 한 마리씩 들어 올릴 때마다 요동치는 낙지의 움직임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와 딸은 동시에 "꺅! 꺅!"을 연발했다.
영롱한 자태로 꿈틀거리던 무안 세발낙지들 by 정혜영
체념한 남편의 표정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부엌칼로 세발낙지를 탕탕이 치는 일까지 도맡아야 할 참이었다. 그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살아있는 대상을 칼로 내리치야 한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남편이 그것과 얼마나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아빠의 내적 갈등은 모르고 눈치 없는 딸이 옆에서 "아빠 멋있다!"며 박수를 쳐댔다. 산 낙지를 만지고 자르는 아빠의 표정이 거의 울상인 것도 모르고.
사투를 벌여 완성한 남편의 세발낙지 탕탕이 by 정혜영
남편이 전쟁 치르듯 내 온 세발낙지 탕탕이 한 접시에 나는 소금 한 꼬집을 뿌리고 참기름을 둘렀다. 사냥터에서 막 돌아온 원시 가장처럼 기진맥진해진 아빠 앞에서 딸은 "나중에 살아있는 낙지를 손질할 수 있는 용맹한 남자랑 결혼하겠다"며 난데없이 이상형을 고백했다. 딸의 말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남편의 표정이라니.
"아빠도 50 평생 살아있는 낙지를 직접 손질한 건 처음이야."
힘 빠진 남편의 말에 큭큭 웃음이 나왔다. 여전히 꿈틀대고 있는 낙지를 향해 부지런하게 젓가락들이 드나들었다. 꺅꺅대던 모녀가 쉴 새 없이 젓가락질을 해대기엔 심히 무안해지는 싱싱한 '무안'의 맛이었다.
낙지를 멀리 무안에서부터 보내 준 친구와 50 평생 처음으로 산 낙지를 손질해 준 남편 덕분에 코로나 후 약해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힘들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어쩌면 내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은 이렇게 더 빛을 발하는 것일까. 그들 덕분에 부족하기만 한 내가 조금 더 채워지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남아있는 저 낙지들을 어쩐다? 주말엔 싱싱한 연포탕이나 해 먹자고 하니 남편이 또 먼저 선을 긋는다.
"연포탕은 자기가 만들어. 난 이제 못한다."
'먼저 선 긋는 자가 결국 하게 되는 자'라는 걸 본인이 입증하고도 저런다. 연포탕 끓이고 난 후엔 또 어떤 표정을 지으려고 저러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