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Mar 24. 2024

초등 1학년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이겁니다


1학년 담임을 맡은 지 20여 일이 지났다.

아이가 수업도 끝나기 전에 집에 갔다더라,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뒤처리를 할 줄 몰라서 난감했다더라, 토하는 건 다반사라 항상 살펴야 한다더라, 엄마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도 있다더라... 초등 1학년 아이들에 대한 온갖 '카더라' 설화들을 들어왔던 터라 1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서 교직 경력 24년 만에 바짝 긴장한 나날들이었다.

1학년 학부모는 또 어떠한가. 수업 중에 교실 창문에 눈을 바짝 붙이고 자기 아이를 살피는 학부모가 있다더라, 시간 맞춰 약을 먹여 달라고 한다더라, 급식 반찬이 입에 안 맞다는 아이에게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보내서 먹여 달라고 한다더라, 녹음 장치를 달려 보내는 학부모도 있다더라... 1학년 학부모들에 대한 카더라 설화 역시 하나같이 1학년스러워걱정이었다.


1학년 입학 첫날, 강당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한 명, 한 명,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요즘 아이들 참 예쁘네'였다. 입학식이라 부모님들이 더 신경을 써서 보내신 건지 아이들이 하나같이 말끔한 차림에 해사한 얼굴이 귀공자, 귀공녀가 따로 없었다. 입학식을 무사히 치르고 교실에서 짧은 시간 담임 선생님과 만남을 가진 후 하교한 첫날, 아이들은 학교에 대해 어떤 첫인상을 가지고 돌아갔을까?

 

아이들의 등교 시간에 교실 문에서 아이들을 아침맞이 하면서 아이들이 학교라는 곳을 어서 친근하게 여기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학교에 대한 부담감에 집에 돌아가버리거나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난감한 상황이 생기면 곤란하니까. 웃는 낯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처음이라 헷갈리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두루 살펴 불렀다. 만난 지 3일이 지났을 때에도 '카더라' 소문에 해당하는 일들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긴장의 끈은 놓을 수 없었다. 쉬는 시간엔 화장실 가는 것도 미뤄가면서 아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언제, 어느 순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나서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학교나 선생님이 무섭다고 교실 밖에서 우는 아이도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도 없었다. 소변을 보다 바지를 적시는 남자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던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2주 동안 가장 큰 사건을 꼽아보라면 첫 급식을 하던 날, 급식실에서 밥을 먹은 후 반별로 함께 모여 교실로 이동하기로 했었는데 한 아이가 사라진 것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알리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가 길이 엇갈렸는데 아직 학교가 익숙하지 않아서 길을 조금 헤맨 모양이었다. 나도 교실과 급식실 사이를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아이들 찾으러 다니며 '1학년 설화 중 하나를 이렇게 접하는구나' 싶어 식은땀이 났다. 잠시 후 아이가 교실로 돌아와서 한숨 돌리긴 했지만, 초등 1학년 아이들은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실감한 날이었다.   


초등 1학년 생활 3주가 지나가는 지금, 1학년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은 화장실 문제도 아니고 엄마와의 분리 불안도 아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교과서 뒤편에 학습 보조 자료로 붙어 있는 꾸러미 자료를 어 내는 일이다. 아직은 손가락 힘이 부족해서인지 보조 꾸러미 페이지를 선에 따라 떼어내는 일을 그렇게 힘들어한다. 아직 한글을 배우기 전이라 초등 1학년 1학기엔 쓰는 활동보다는 자료를 오리고 떼어내고 붙이는 활동들이 많다. 그렇게 손의 협응능력을 키우며 연필을 쥐고 글을 쓰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직 손가락 힘이 약해서 점선에 맞춰 천천히 떼어내면 되는 자료들을 힘 조절에 실패해서 곧잘 찢어버리고 다. 아무리 천천히, 조심히 떼어내라고 얘기해도 금세, "선생님, 찢어졌어요!" 하는 아우성이 도처에서 려온다. 그럴 때마다 울상이 된 아이들에게 "괜찮아" 처방전을 내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입엔 "괜찮아"가 걸린다.


1학년 아이들과 이게 되려나? 하는 우려 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우리 반 이름도 짓고 학급 규칙도 정했다. 초등학교가 처음인 초등 1학년 아이들과 1학년 담임이 처음인 나의 신학기 3주는 이 정도면 선방했다 싶다. 뭘 해도 서툴러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하는 1학년이지만 그래서 앞으로 무궁무진 성장할 일만 남았다.

얘들아, 우리 '괜찮아' 정신으로 초등 1학년 생활, 슬기롭게 해 나가 보자꾸나!

  

입학 셋째날 아이들과 함께 한 우리 반 이름 짓기 활동 by 정혜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