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들이 다니는 미술학원 원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이 '톰보 소묘 공모전'에서 고등부 금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전혀 전해 들은 바도 없고 '톰보'라는 대회명도 생소했지만, '소묘 공모전'과 '금상'이라는 익숙한 낱말에 기대어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소묘전으로는 전국대회에서 가장 큰 대회"라는 원장님의 말씀에 내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수상작을 발표한 게 사흘 전이라는데 이 녀석은 왜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걸까?
늦은 저녁,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달려들어 호들갑을 떨었다.
"00아! 너 톰보 소묘전에서 금상 탔다며?"
"어."
"결과 발표한 게 3일 전이었다며?"
"어."
"아니~ 근데, 왜 그 좋은 소식을 여태 말을 안 했어!"
"그냥. 말할 타이밍이 없었어."
내 흥분 지수와는 무관하게 아들의 대답은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아들의 감흥 없는 반응에 난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 녀석, 예고 합격자 발표날, 떨어질까 봐 걱정했다며 으헝헝 울던 내 아들 맞나? 멋쩍은 듯, 어색한 듯한 녀석의 말투와 표정에 엄마의 방정이 무색해졌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었을지. 아들이 작업한 그림들이 모두 궁금하지만, 아들은 자기 맘에 들게 그린 날, 사진으로 찍어 와서 제일 먼저 보여 주며 엄마의 반응을 기대하던 중학생이 더 이상 아니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D-2년 반 미술 입시생이다. 예고 진학 6개월만으로도 아이의 눈빛이 달라진 건 실력 쟁쟁한 친구들 사이에서 치르는 치열한 현실을 매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을 졸라 수상전에 제출한 작품 사진을 톡으로 받았다. 그림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높은 고층 빌딩 숲을 가로지르는 자동차의 행렬. 가득 채워진 듯한 공간에 흐르는 무심하고도 허허로운 느낌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무척 좋아했다. 아들이 언제부터 자동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시점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 핸드폰 앨범에 처음 등장한 자동차는 아이가 4살 무렵에 그린 것이다. 연필에 힘을 주어 또렷한 윤곽을 그려낼 정도로 충분한 소근육이 발달하기 전이었을 텐데, 경계가 분명한 걸 보면 얼마나 여러 번 반복해서 그려냈던 것일까. 주야장천 엄마가 몰고 다니던 SUV를 그리다 이름도 생소한 슈퍼카 이름을 들이대며 엄마는 언제 그거 타냐고 물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던 아이(아들이 아기 때부터 탔던 그 SUV는 이후 16년을 더 탔고 이 생에 그 슈퍼카를 몰 가능성은 제로ㅠ).
아들은 다양한 자동차들의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을 그리다 성에 안 차 입체로도 그리며 자동차 사랑을 이어갔다. 성장함에 따라 종이 접기와 블록 맞추기로 선호하는 표현 방식은 달라졌어도 대상화 목록에 자동차는 늘 1순위였다. 그러니 17살이 되어 처음으로 참가한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 '자동차의 행렬'을 표현한 소묘라는 게 단순한 우연이고 행운일까.
나는 가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들이 그리고 오리고 접고 만들었던 모든 것들을 사진으로 찍거나 잘 모아 놓은 섬세하고 사려 깊은 엄마가 아니라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좋아했던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남겼을 때, 꾸준히 기록으로 남겨 역사화해 주지 못해서.
그럼에도, 그것을 아이가 표현할 때마다 오늘처럼 온몸으로 호들갑을 떨던 내 표정과 말과 몸짓이 그저 아들의 마음속에 화석으로 박혀 가끔 꿈틀, 해주길 바란다.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 되도록 하는 데 걸리는 아들의 물리적인 시간과 쏟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쏟을 열정과 에너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함께 일어날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의심과 회의, 불만족, 권태나 염증에 대해서도. 내가 글을 쓰며 겪는 그 모든 과정들을 똑같이 맞닥뜨리더라도 방정맞고 야단스러운 엄마의 응원을 떠올린다면, 아들이 조금은 더 용기 내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들과 나, 그리고 수능 D-94일이라는 숫자 앞에 매일 그러한 과정을 겪고 있는 우리 집 고3 딸, 그리고 다른 수험생들 모두에게 다음 캘리그라피 문구를 전하고 싶다.
오늘 하루 괜찮았니?
걱정 마.
내일도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