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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l 19. 2024

엄마, 아빠도 2030 시절이 있었어


"엄마, 엄마 아빠 20~30대 때 사진 있어?"

두어 달 전,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불쑥 물었다.

"찾아봐야지. 근데 왜?"


아들이 다니는 회화 학원에서 7월에 전시회를 열 계획인데, 주제가 부모의 젊은 시절을 그리는 거라고 했다. 학원이야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로 하여금 자식들을 그곳에 보내야만 하는 이유를 무시로 홍보하는 곳이니 이번에도 그런 건가 보다, 했다. 대치동 강사 이력을 내세우는 일반 고등 입시 학원에 비해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게 입시 미술 학원의 홍보다웠다. 한 가닥 남아있는 낭만에 썩 마음이 끌렸다. 그런데, 남편이랑 내가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이 남아 있으려나?


낭패였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 중 가장 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2019년 이전 사진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동안 핸드폰을 교체해 오면서 더 과거의 사진들은 소실된 것인지, 아니면 일정 기간 외엔 자동 삭제되는 것인지  지만, 그 이전의 사진들은 핸드폰에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 부부 사진뿐 아니라 아이들이 더 어릴 때 찍어두었던 사진들도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그러다 떠오른 게 '카카오스토리'였다. 개인 블로그를 만들기 전엔 마땅히 추억을 기록해 둘 곳이 없어 카카오스토리에 사진과 짧은 기록들을 남겨 두었었다. 다행히 그게 생각난 것이다.


얼른 카카오스토리를 열어 보니, 과연 2012년도부터 사진과 기록이 남아 있었다. 2012년도부터 그 모든 것들을 훑어 나가다 보니,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과 우리 부부가 조금은 더 젊었던 시절의 추억들이 소환되었다. 핸드폰 앨범 저장 공간에 있는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우리 부부를 찾는  너무 어려웠는데, 카카오스토리는 날짜별로 사진과 기록을 남겨 두어서 비교적 찾기 용이했다. 그때 사진을 기록과 함께 남겨두지 않았다면 이 귀한 사진들이 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 사진들 중 최종 낙점된 것은, 12년 전 여름 방학, 남편의 휴가에 맞춰 모처럼 우리 부부 둘만 떠났던 제주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들이 그린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며 두 가지 점에 놀랐다. 첫 번째는, 아들이 정이 많은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림 그릴 땐 인정사정이 없구나. 녀석은 아빠의 배불뚝이 배와 엄마의 어색한 미소를 조금이라도 미화시켜 줄 생각일랑 애당초 없었던 듯했다. 인정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두 번째는, 왜 젊은 시절의 나는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헤어스타일을 그토록 고수했던 것일? 과거 사진을 마주할 때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세련됨'은 앞으로의 숙제로 남았다.


아들이 그린 엄마 아빠의 2030 시절(실은 30대 끝자락...^^) by 정혜영's son


시간이 지나면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 지금 안다고 생각한 것들을 돌아보며 미래의 나는 또 어처구니없어하고 있겠지.


회화 학원에서 보내온 아들의 그림을 보니 요즘 인체 표현을 연습 중인가 보다. 자신이 더 어린아이었을 때와 현재의 얼굴을 그리며 아들은 어떤 심상을 떠올렸을까. 학생, 젊은이, 노인의 얼굴을 그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엄마, 아빠의 좀 더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리면서는 또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에 대만의 미학자 장쉰의 '자화상 수업'소개된 대목이 있다. 장쉰은 동료 대신 들어간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자신을 소개하는 수업을 했다고 한다. 소개가 다 끝나고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거울을 보고 자신을 알아가는 경험을 처음으로 한 학생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것이었다. 보정도 필터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 외모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인체를 자연스럽게 그리는데 필요한 형태와 구조, 비율 등에 쏟았을 아들의 시간을 생각한다. 그림을 잘 그려내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을 아들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그 모든 과정에서 아들의 마음속에 일었을 심상도 떠올려본다.


엄마, 아빠의 모습을 너무 사실적으로만 표현했다고 서운해하면 안 되겠다. 아들에게 미화시켜 그려달라고 하기 전에 진짜 더 나은 엄마, 아빠가 되어 아들의 마음에 더 많은 심상을 남겨 주어야지. 70세, 80세가 되었을 때 아들에게 더 우아하고 세련된 심상으로 남으려면 그런 마음을 먼저 갖춰야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외모로 드러나게 해야지.


아들의 과거와 현재. 그 귀엽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by 정혜영' son
아들은 인체 표현들을 그리며 어떤 심상을 떠올렸을까? by 정혜영's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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