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치명적인 병을 가졌다. 그러나 엄청난 부를 이용해 미래 의학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삶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은 1997년에 개봉된 영화, <오픈 유어 아이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작품 <떼시스>를 본 후, 이 감독의 영화는 나의 취향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이 감독이 공포물에 재능을 발휘했다니, 공포물을 잘 못 보는 내가 또 이 감독의 영화를 만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삼 세 번의 기회'주의자인 내가 한 번 만나 인연이 아니라고 판단하기에는 기본 데이터가 너무 약했다. 그래서 택한 영화가 <오픈 유어 아이스>였다. 소싯적에 보고 이야기의 독특한 설정에 반했던 <바닐라 스카이>의 원작이라니 일단 믿음이 갔다.
<떼시스>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인, 에두아르도 노리에가와 펠레 마르티네가 다시 이 영화에서 주, 조연을 연기한다. 감독의 여러 영화에 에두아르도 노리에가가 주연급 캐스팅된 걸 보면, 그는 알레한드로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가 보다. <떼시스>에서는 너무 노골적인 눈빛과 연기로 조금 거부감이 드는 캐릭터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준다.
세자르 역의 에두아르도 노리에가(출처: 네이버)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부모로부터 막대한 부를 상속받은 세자르(에두아르도 노리에가 분)는 돈과, 젊음, 잘생긴 외모로 원하는 여성은 누구라도 쉽게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절친인 펠라요(펠레 마르티네즈 분)와 함께 온 아름다운 여인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 분)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끼고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한다.
소피아 역의 페넬로페 크루즈(출처: 네이버)
이들이 가까워지려 하자, 세자르의 전 연인이었던 누리아(나즈와 님리 분)는 복수심에 불타 세자르를 차에 태워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다. 이 사고로 세자르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잘생긴 얼굴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그는 여러 차례의 수술에도 괴물과 같이 얽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되돌리지 못하는 당시 성형수술의 한계에 괴로워한다.
더욱이 세자르에게 남은 유일한 안식처이자, 운명의 사랑이라 여겼던 소피아마저 그의 집착이 부담스러워 거리를 두려 하는 것 같다. 이에 괴로워하던 세자르는 만취한 어느 날 하룻밤을 길거리에 쓰러져 잠이 드는데, 다음날 깨어나니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180도 달라진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본 직후에 든 첫 번째 생각은, 이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천재다! 였다.
개인적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흥미롭게 다룬 영화들 중원 톱은1999년 개봉된 <매트릭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워쇼스키 감독'과 '키아누 리부스'라는 할리우드 거물들을 등에 업었으니 그 후광 효과도 어마어마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는 당시 혁신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매트릭스>보다 2년이나 먼저 만들어진 이 영화는 자본 투자가 할리우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스페인에서, 그것도 당시 감독의 나이 20대 중반의 약관의 나이로 만든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20년도 더 된 영화인데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다루는 방식이 결코 구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오롯이 이 감독이 가진 힘이다.
좀 더 화려한 영상미와 매력적인 톰 크루즈를 만나고 싶다면 <바닐라 스카이>를 보는 것도 무방하다.
상대 여주인공으로 대체할만한 배우를 못 찾았던지, 원작과 리메이크작 모두에서 여주인공 소피아 역을 맡았던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지중해의 코발트 태양빛에 견줄만한 신비하고 매력적인 배우라는 점, 인정!
여담이지만, <바닐라 스카이> 촬영 후 톰 크루즈와 연인으로 발전했던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미래 의학의 힘을 빌리기 위해 현재의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없는 세상이 과연 행복할까, 싶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