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 모든 정보를 얻는다는데, 주중에는 TV도 켜지 않는 내가 영상 위주의 유튜브를 즐겨 볼 리가 없다. 그래도 구독 누르고 어쩌다 한 번 들여다보는 채널이 '김찬용의 아*티븨'이다.
'김찬용'님은 아들을 데리고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갔다가 만나게 된 미술 해설사였는데,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난 작품 설명에 반했더랬다.
이분이 오르세 미술관에 대해 안내하는 영상에서 마네의 작품과 함께 언급한 영화가 이 영화였다. 미술사를 잘 모르더라도 인상주의 화가들이나 작품들은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도 만나봤던 터라 낯설지 않다. 더욱이 19세기 '인상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에게 영감을 준 여인의 이야기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는 2014년도 개봉작으로, 마린느 델테르메(베르트 모리조 역)와 맬릭 지디(마네 역)가 주연을 맡은 카롤린느 샹페띠에 감독의 영화이다. 감독이 제작한 영화는 많으나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것을 보니, 역시 내게 프랑스 영화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영화 감상 직후의 내 감상평은, 이 영화는 재미를 목적으로 제작한 영화가 아니다,였다. 마네에게 영감을 주었던 베르트 모리조라는 여성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열망이 없었다면 영화를 중간에 종료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예술가의 실제 삶을 다룬 영화(특히 프랑스 영화)가 '12세 관람가' 등급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영화 보기 전부터 많은 것들을 매우 밋밋하게 다루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어서, 영화 중간중간 아찔한 수위를 다룰 법한 장면도 더러 있었는데 편집된 것인지, 어정쩡하게 다음 장면으로 연결해 버리니, 교육용으로 제작된 영화도 아닐 텐데 왜 저러시나 싶다. 등급을 조금 더 높이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연출했다면 더 훌륭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권하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베르트 모리조라는 19세기에 흔치 않았던 여성 화가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제목을 보고 그저 이 여인이 스캔들 제조기였다는 마네의 여인들 중 인상적인 한 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통해 베르트 모리조가 남성들의 전유물과 같았던 19세기 유럽 미술계에서 상당한 족적을 남긴 인상주의 화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였던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모리조 자매는 제대로 된 그림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초반에는 전원 풍경화나 가정적인 삶의 이미지만을 그려 19세기 여성의 표현적인 제한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요람>, 베르트 모리조
그녀의 그림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양식으로 변화한 것은 마네에게서 영향을 받으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녀는 당시 젊은 여성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던 결혼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내고자 했던, 자존감이 대단했던 여성이었다. 이런 그림에 대한 열정과 꺾이지 않는 자존감이 마네에게 영감을 준 베르트 모리조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마네와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마네의 막내 동생과 결혼하여 그의 가족 일원이 된 것은 프랑스여서 가능한 일이었는지, 베르트와 마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추천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영화를 통해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잔잔한 드라마로 흐르는 듯해 자칫 꿈나라로 빠질 뻔한 것을 붙잡아 준 것은 그 그림들이었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아찔한 장면은 없지만, 마네의 그림은 그 섭섭함을 충분히 메워줄 만하다.
마네의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는 내놓자마자 당시 평단과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야유를 동시에 받은 작품들이다. 기존 화가들이 전라의 여성을 화폭에 담을 때 다소 수줍게, 다른 곳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왔던 관습을 깨고, 마네의 그림 속 누드의 여인들은 그림을 보는 사람을 정면에서 바라보도록 당당하게 시선 처리를 했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풀밭위의 점심식사>(왼), <올랭피아>(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에 등장하는 여인의 목에 두른 검은 띠는 당시 성매매 여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의 발아래에서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는 남성을 상징했다고 하니, 그림이 내포하는 의미 역시 당시 귀족들을 풍자하는 대범함이 돋보인다.
<발코니>라는 작품에서 작품의 왼편, 흰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 바깥을 가만히 응시하는 알 수 없는 표정의 여인이 베르트 모리조이다. 저 모습으로 그림 모델을 설 때 그녀는 어떤 상념에 빠져 있었을까.
<발코니>, 에두아르 마네
검은 드레스와 모자를 쓴 베르트 모리조를 그린 작품, <베르트 모리조>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신비로운 그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마네가 원래의 자신보다 항상 돋보이게 그려주었다는 모리조의 이야기를 통해 추측하건대, 애정이 담긴 눈에 비친 모습의 결과였으리라. <피리 부는 소년> 그림도 익숙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실제 인물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 베르트 모리조(첫 번째), <베르트 모리조>(가운데), <피리 부는 소년>(세 번째), 에두아르 마네
스토리의 흥미진진함과 다이내믹한 영상기법을 포기한다면,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넘을 수 없는 선을 경계로 안타깝게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에 오히려 더 간질 맛이 나는 영화이다. 마네와 모리조의 그림을 보는 재미는 이 영화의 백미이니, 이런 부분에 흥미가 동하신다면 기꺼이 추천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