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오카리나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게 2020년 겨울이니까 올해 5년째를 맞는다. 사실 2019년 겨울에 처음 교직원 연수로 30시간 배웠었는데 기존에 알던 오카리나와는 운지법도 다르고 예쁜 소리도 내기 힘들어서 1년을 방치했으니 한국식 오카리나와의 정확한 인연은 6년 전이다.
심기일전해 다시 한번 마음먹고 열심히 임하던 차, 코로나19 대유행기가 찾아왔다. 금방 잡히겠지, 했던 유행병은 3년여간 이어졌다. 나이 들기 전에 좋아하는 노래 몇 곡 연주할 수 있는 악기 하나 배워 보겠다는 소소한 소망은 이렇게 자의로 타의로 미뤄지고 있었다. 아마 스승님이 불투명한 사업성에 일을 접으셨다면 한국식 오카리나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내가 당긴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내친다고 쉽게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팬데믹 기간에도 온라인 연수를 열어 가느다란 인연의 고리를 이어갔는데, 오히려 홀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났다. 그래도 스승님의 피드백이 없으니 내 연주가 산으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당시는 팬데믹 기간 동안 학교도 문을 닫고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어 한창 온라인 자료를 제작해 올리던 시기였다. 수업 영상을 찍고 편집해 올리는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자, 외부로부터 피드백을 못 받는 상황이라면 내가 내 스승이 되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거치대를 설치해 내 연주 영상을 찍었다. 내 연주 자세와 소리를 객관적으로 보니 과한 연주 자세와 잘못된 운지로 인한 이탈음들이 들렸다. 늘 앞서가는 감정을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 허둥허둥 따라가느라 박자가 틀어졌다.
그래도 영상을 찍으려면 스스로에게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는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하니 자연히 연습량이 늘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연주했는데 끝부분에서 틀리거나 음이탈이 생겨서 다시 찍어야 할 때는 멘털을 붙들어야 했다. 한 영상에는 심취해서 녹화 중에 갑작스럽게 딸이 방문을 벌컥 열어 진심 짜증 난 내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모든 영상들을 '정혜영 기록물'로 지정해 둔다. 향후 30년 이전엔 절대 공개불가토록.
전문 오카리니스트가 될 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진심이었을까. 자의로, 타의로 미뤄졌던 인연은 아무도 이래라저래라 내게 요구하지 않을 때 오히려 소리 없이 두터워졌다. 며칠 전, 그때 찍어 올려두었던 영상 자료들을 내 카카오스토리(요즘 이거 쓰는 사람들 있을까^^;;)에서 차근차근 돌려보며 그때의 나와 잠시 소통했다.
그때 너 참 진심이었구나.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팬데믹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본격적으로 다시 면대면 수업이 재개되었을 때, 아마도 난 이전보다 훨씬 실력이 늘진 않았더라도 오카리나와 훨씬 친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이 인연을 오래 가져가고 싶어서 작년 겨울, 한국식 오카리나 2급 강사반 레슨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2급 자격을 취득한 후, 올해 4월부터 1급 강사반 레슨까지 이어받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더 불안해지는 걸까. 1급 실기 테스트 날짜가 다가오자 늘지 않는 내 소리에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내 실기곡에 대한 스승님의 연주 녹음을 계속 들어가며 내 녹음 소리와 비교하니 이건 뭐,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핸드폰 녹음기는 왜 이렇게 성능이 탁월한지, 내 손가락이 도자기 오카리나 구멍을 닫을 때 느껴지는 미세한 불협화음까지 또렷이 녹음되었다. 그 소리가 귀에 들릴 때마다 마음의 소리는 분명해졌다.
'망했다!'
실기 평가 전날까지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레슨 동기들 앞에서 창피만 안 당할 정도만 연주할 수 있길 기도하는 수밖에.
매도 먼저 맞는 매가 낫다. 실기 평가가 시작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더 쭈그러지기 전에 얼른 끝내고 싶었다. 너무 떨리고 긴장되는 그 상황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손가락이 악기 구멍에 내려앉을 때 나비처럼 보드랍고 깔끔하게... 같은 건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느린 템포의 곡이어서 복식 호흡으로 강약을 조절하며 곡의 감정 표현이 제대로 드러나기만을 바랐다.
가까스로 연주를 마쳤을 때, 끝났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너무 감정 표현에 치중했나 보다. 스승님께서 감정에 빠져서 박자가 느려지면 안 된다, 고 하시며 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짚어주시는 걸 보면. 그래도 마지막에 "잘했어요." 하시자, 통과했다는 통보도 아닌데 기쁨이 몰려왔다.
그 뒤로 이어진 다른 분들의 연주를 들을 때, 조금은 진정될 줄 알았는데 그들의 박자가 느려지거나 음이탈이 날 땐 내 손에도 땀이 났다. 다른 참가자들도 긴장하긴 매한가지였다.
참가자가 너무 긴장해서 박자를 놓치고 리듬이 빨라지면 지켜보던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리듬을 입으로 소리 내어 흥얼거리며 맞춰주었다. 그렇게 함께 박자를 찾았고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참가자들이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모두가 수고했다며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그 마음이 어떨지 모두가 알기에.
그래서 1급 자격시험에 통과했단 말인가? 실은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결과가 어떻든 이제 상관없다. 인연이란 한 번의 어긋남으로 쉽게 끊어지는 게 아니니까. 다시 말하지만,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내가 당긴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내친다고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해오던 대로 내게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며 이어가면 된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들이 반짝반짝 기적의 옷을 입고 내 하루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게'(이서원 저,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에서 인용) 하면 되는 것이다.
올해 한국식 오카리나 교원앙상블 정기연주회가 10월에 잡혀 있다. 나를 위로하던 곡들이 듣는 이들에게도 위안이 될 수 있도록 모두 열심히 연습 중이다. 혹시 부담스럽지 않은 가을 공연으로 잠시 가을 정취에 취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관심을 가져 보시면 좋겠다.
내가 그랬듯, 스승님의 연주에 홀려 한국식 오카리나와 인연을 시작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진심으로 연주하는 이들의 소리가 어떤지는 직접 들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
p.s. 혹시...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들 중 연주회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초대권 신청'해 주세요. 초대권 받으실 이메일 주소랑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