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5초 컷의 감동을 전해 줄 선물을 추천합니다

by 정혜영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직장인들은 승진이나 전보 등 직무 배치를 앞둔 인사철이라, 학생들에게는 기말고사 시즌과 수능 후 원서 접수를 앞둔 시기라 집집마다 마음이 분주한 시기다. 우리 집도 한, 두 명은 이런 상황에 놓이곤 했는데, 올해는 가족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분주해졌다.


큰아이는 수능 시험 결과가 나오고 희망군 대학, 학과 중 합격 가능군을 추리느라 바쁘고, 남편은 지난 몇 년간 미뤄진 승진 문제가 올해는 풀릴 수 있을지 긴장감 최대치다. 정시 대학 진학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누나의 현실을 목도한 둘째 아이는 수시 진학을 목표로 기말고사에 올인 중이다. 교사인 난 학교 이동 시기가 되어 다른 학교의 전출 예상 교원 수 등 각종 이동 정보에 잔뜩 민감해져 있다.


아무리 모두가 열심히 달려도 결승선에서 누군가는 환호를, 누군가는 쓴맛을 맛본다. 그게 지금 내 가족들의 가까운 미래라 생각하니 엄마이자 아내로서 염려스러웠다. 우리 가족들이 열심히 달려온 과정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실망하게 될까 봐.


시스템은 결과로 평가할지라도 고군분투한 각자의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더 힘내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한 해 동안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알고 있다고, 당신의 결승선은 여기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은데 얼굴을 보며 얘기하기엔 왠지 쑥스럽다.

그럴 때 유용한 것이 손글씨다. 그래서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우리 가족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담아 손글씨 달력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DIY 무지 달력과 꾸밈용 판박이 스티커를 구입했다. 필기도구는 다이소에서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제노펜이 무난하다. 각 달별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응원 문구를 열심히 찾아 달별로 배치해 썼다. 각 문구에 어울릴 법한 스티커 1~2개로 포인트를 주면 끝.

글씨를 좀 더 멋들어지게 쓸 수 있다면 전시 효과는 더 크겠지만, 상대를 위해 고르고 고른 말들은 상대에게 글자의 형태로만 다가가지 않는다.


실제로 딸은 첫 달 문구를 읽고 둘째 달부터 몸을 돌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달까지 흐느끼는 어깨를 주체하지 못했다. 우느라 눈이 벌게진 아이를 안아줄 때, 백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엄마의 마음을 전달한 듯해 기뻤다.


딸에게 직접 응원 문구를 써서 선물한 달력(캘리그라피 by 정혜영)

사실, 처음부터 모든 가족 맞춤 달력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재수하느라 고생한 큰아이가 흡족하지 않은 수능 시험 결과에 코가 빠져 있길래 계획했던 일이었는데, 이 달력을 보자 부러워하는 남편의 눈길이 느껴졌다. 위로가 필요한 건 나이 든 어른도 마찬가지다.


남편 응원용 문구가 자식용과 같을 순 없었다. 아이에겐 앞으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면, 남편에겐 옆에서 묵묵히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더 비중을 차지했다. 50이 넘은 우리 부부의 미래는 천천히 우리만의 속도로 함께 가자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응원 문구를 써서 선물한 탁상용 달력(캘리그라피 by 정혜영)


남편이 달력을 좋아할 줄은 예상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자기 것이라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입이 함지박만 해지더니, 마지막까지 보고는 나를 와락 끌어안는 게 아닌가! 90킬로가 넘는 남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느끼며, "설마, 우는 건 아니지?" 하고 농을 던졌는데... 남편이 정말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럴 때, "늘 애써줘서 고마워. 사랑해!" 같은 달콤한 응대를 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정작 내 입에서 나간 말은,

"아이고~ 울 신랑, 에스트로겐 과다다 진짜!"

였다. 역시, 마음을 전할 때는 말보단 글이 훨씬 낫다.


남편에게 써 준 응원 문구들(캘리그라피 by 정혜영)


누구나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한 해를 달려왔을 것이다. 일 년을 마감하며 다소 결실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제 한 해 동안 애쓴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다독여 줄 시간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가족이나 고마운 지인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그 마음을 직접 쓴 DIY 달력은 어떨까.

'마음을 전달하고 감동받는 시간, 5초'의 기적을 누려 보시라.





매거진의 이전글김소월 님의 시, '가을'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