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묻습니다

'남편 교육' 시킬 뻔했습니다

by 정혜영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남편이 현관문을 쑥 밀고 들어옵니다.

현관문 앞에 놓인 김장 택배 4박스를 낑낑대며 나르지만 우리 집에서 남편보다 더 힘센 사람은 없으므로 그 일은 오롯이 남편의 일입니다. 남편은 박스를 모두 옮기고 저녁밥을 다 먹고,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올 때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십 대 아들, 딸이 괘씸한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남편은 골방에서 태블릿을 켜고 오늘도 쓸 만한 소재를 고민 중이던 아내 옆에 털썩 걸터앉습니다. 아내는 집중할 때 뭔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을 딱 질색합니다. 아내는 멀티태스킹형 인간이 아닌 데다 머리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집중할 때는 조금만 정신 사납게 하는 것들에도 예민해집니다.

"나가."

아내가 좋게 얘기합니다. 아내가 '좋게' 말할 때 들어주는 것이 평화로운 길임을 남편도 잘 압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에게까지 홀대받는 게 좀 억울했는지 물러서지 않고 한마디 합니다.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아빠가 와도 애들이 꿈쩍도 안 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하여 아이들이 화상으로 학원 수업을 진행 중이라는 것을 남편은 평소엔 그다지 관심두지 않았으니 모르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혈기 왕성할 때도 안 하던 '자식 교육'을 입에 담다니요.


"지금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아내는 전투 모드 1단계에 막 진입 중입니다. 서서히 예열을 시작합니다. 아내는 화려한(?) 전투 경력으로 순식간에 피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내공이 있습니다. 남편이 모르지 않을 텐데 오늘은 뭘 믿고 만용을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 뭘?"

남편이 딴청을 피웁니다. 요즘 들어 가끔 남편은 이렇게 아내를 간 보려 합니다. 이 정도쯤은 괜찮으려나, 하고 한 발씩 내디뎌 보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정확하게 해. 그래야 답을 하지."

아내가 예상보다 일찍 전투태세가 갖춰진 것을 확인하자,

"자식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 거지? 하고 물어보는 거지. 나한테."

슬쩍, 발을 뺍니다.

"그럼, 신경 쓰이니까 나가줘."

아내는 비로소 경계 태세를 낮추며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합니다.


남편이 큰 몸을 일으켜 어기적어기적 옆 방 의자에 가서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스마트폰이 인공지능이라면 하루 종일 영혼을 털리며 거대한 정글에서 싸우다 돌아온 남편에게 "다녀오셨어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인사말 정도는 흔쾌히 해 주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어차피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소재에 한정 없이 붙들릴 만큼 미련하지는 않아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아이들 방으로 가 보니, 아들 녀석이 화상 수업을 마치고 컴퓨터 방에서 금요일 저녁 시간을 막 즐겨보려 하고 있는 게 눈에 포착됩니다. 엄마가 다가가 아빠 오신 줄 몰랐냐고 묻자, 아들 눈이 똥그래집니다. 아들은 아빠를 매우 좋아합니다. 아빠도 아들을 매우 좋아하는지는 좀 의문스럽지만요. 아들이 긴(?) 복도를 우당탕 달려가 아빠가 있는 방으로 큰 몸을 쑤욱 들이밉니다.

"아빠, 언제 오셨어요! 몰랐잖아요!"

달려드는 작지 않은 몸을 귀찮은 척 받아줄 남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자식 교육'이 '남편 교육'으로 이어지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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