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다

by 외과의사X

강릉 아산에 파견을 나올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다. 이 글은 제작년에 쓰다 마치지 못한 글인데 오늘은 꼭 갈무리를 해야겠다.



#1.


몇 주전 정읍 응급실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싸이(Psychiatry:정신과) 환자 특유의 화장법이 있는거?"

"그게 뭐에요?"

"일단 아이라인을 아래위로 검게 칠하고 립스틱은 빠아알간색에..."

"인턴쌤 지금 제 화장법 돌려서 이야기하시는거죠? 그냥 저라고 하세요!"

(아차! 말하고 보니 그 선생님 화장이 내가 설명하고자 했던 딱 그 화장이었다.)


환자를 본 경험이 부족한, 아니 부족하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초짜이지만, 1년 정도 여러 환자들을 마주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나름의 '촉'이라는 것이 생긴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주변의 가족들은 어떤지 등등, 이런 정보들은 분석을 넘어 하나의 느낌으로 확 다가온다.


'어? 뭔가 이상한데?'

'이 사람 혹시 싸이 환자인가?'

'이 환자는 조심해야겠다'


환자에 대한 첫인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환자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분류하고 이해하면 일단 일하기는 편한 것 같다. 환자를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불안감을 줄여주기도 하고,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좀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런 내 나름의 분류가 한단계 더 나아가 병에 따라 환자의 성향을 미리 짐작하게 되었다. 간경화 환자는 알코올 중독이 많고 중독자들이 보이는 자기절제나 판단력 등이 부족할 것이다, 과호흡 증후군 환자들은 성격이 극도로 예민하고 사회생활을 잘 못할 것이다, 같은 종류의 판단이다.


이런 판단은 연차가 올라가면 갈수록,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견고해진다. 그렇게 내 틀도 견고해져갈 때쯤, 각각의 환자를 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에 적용해서 바라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 의사가 환자에 대한 편견에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만남이 있었다.


#2.


작년 추운 겨울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환자 한명이 병원으로 실려왔다. 새우깡과 소주 몇병의 초라한 술상, 그 위에 머리를 쳐박고 기절해 있는 아들을 어머니가 데리고 오셨다고 한다. 뜨거운 온돌방바닥 위에서 몇 시간을 그렇게 아무런 움직임 없이 쓰러져 있었고, 그 결과 엉덩이와 다리에 화상을 입고 근육이 망가졌다. 진단은 화상, 횡문근융해증 및 그에 따른 급성신부전. 다행히 빠른 조치로 의식이 돌아오고 신장 기능도 회복되었지만, 오랜 시간 뜨거운 방바닥에 눌려 있었던 양측 좌골신경(sciatic nerve)이 손상을 입어 잘 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반신 곳곳에 화상을 입었는데 특히 오른쪽 발 뒤꿈치 쪽 화상이 상당히 깊었다.


신장내과에서는 급성신부전의 치료에 집중한 나머지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환자의 컴플레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퇴원할 때 쯤 실시한 근전도 검사에서 신경이 많이 손상되었다는 결과를 받고 본과에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으니 신경과로 전과해서 치료 받으라고 하였다. 여기에 대해 환자는 빨리 치료를 하지 않아 자신의 상태가 심해졌고 이렇게 다른 과로 막 던져도 되는거냐며 컴플래인 하였고 감정이 상한 환자는 재활치료를 타병원에서 받겠다며 병원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두달 뒤 그 환자는 신경과로 다시 입원하여 내 담당 환자가 되었다. 재활치료 및 아직도 낫지 않은 왼쪽 발뒤꿈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발 뒤꿈치에는 피부결손이 있었고 피판술(flap)을 할지 피부이식(skin graft)를 할지 애매한 상처였다. 교수님께서는 내게 환자가 알코올 중독이며 컴플라이언스가 낮으니 그냥 하고 싶은대로 다 해주고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귀뜸하셨다.


팔과 다리 재활치료는 잘 받고 계셨다. 문제는 왼쪽 발 뒤꿈치에 낫지 않는 상처에 대한 치료였는데 성형외과에 컨설트를 내고 수술날짜를 잡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3주 뒤쯤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그때까지 드레싱을 받으라고 답변이 왔다. 거기에 대해 환자는 왜 그렇게 늦어지냐며 불만을 토로했고 교수님은 환자를 달랜 후 병실을 나오면서 '내가 이럴거라 전에 이야기 하지 않았냐'는 표정을 지으셨다.


발뒤꿈치 상처는 500원 동전크기보다 조금 더 컸는데 상처가 깊어서 피부이식을 하기에 애매했다. 그래도 괴사조직절제 및 소독을 하면서 새살이 차오르면 피부이식이 가능할것도 같아 수술을 하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상처를 봤다. 하루 하루 지나면서 상처의 크기도 조금 작아지고 죽은 살들이 떨어져 나가고 분홍빛 새살들이 차오르는게 보였다. 그리고 수술 며칠 남기고 성형외과 교수님이 상처를 보시더니 이정도면 피부이식이 가능하겠다고 이야기하셨다.


매일 소독하면서 쌓이는 라뽀는 무서운 것이다. 회식 갔다와서 술이 취해도, 너무 피곤해서 기절할 것 같은 날에도 그분의 드레싱 만은 잊지 않았다. 인턴 초반의 열정과 순수함도 있었겠지만, 의료진과 병원과 신뢰 관계가 깨져있는 분이라 그 신뢰를 나라도 좀 회복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매일 저녁 얼굴을 보면서 아저씨와 점점 정이 들었다.


#3.


한달이 지나 신경과에서 응급실로 턴이 바뀌었지만 그 후로도 아저씨는 종종 보았다.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로 종종 내려오셔서 "선생님은 어찌 여기서도 바빠 보이네요?" 같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내고 돌아가곤 하셨다. 그리고 얼마 뒤에 퇴원을 한다며 점심을 사주셨다.


같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갑자기 엄청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매일 저녁 드레싱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사이인데 식당에서 마주하며 밥을 먹으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의사-환자 관계는 익숙했지만, 이 밥상에서는 그런 느낌이 아니어서 그런가. 나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몇가지가 있었다. 그 중 가장 놀랐던 것은 아저씨가 술을 잘 드시던 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와이프가 뇌경색을 앓고 3년간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요양생활을 하다 돌아가셨고, 작년 겨울 그 사건이 있었던 날은 와이프가 세상을 떠난지 1년 되던 날이었다고 한다. 와이프가 죽고 나서 가끔 술로 적적함을 달래곤 했지만 그렇게 인사불성이 될만큼 마신 적은 없었고, 그렇게 정신을 잃은건 처음이었는데 그런 일이 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기게 된 알코올 중독자의 낙인. 술먹고 기절해서 그런 상태가 될 정도였으면 평소 술에 찌들어 사셨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입원 후 그분의 검사 결과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건강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것도 이제 이해가 됐다. 한달간 아저씨를 매일 같이 봤지만, 누구보다도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그분을 누군가가 찍은 낙인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작별의 시간이 됐다.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었다.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꼭 명의가 되십시오. 잘할 수 있을겁니다." 이렇게 고개 숙여 말씀하시는 아저씨를 보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건강 잘챙기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으로 되뇌었다.


'아저씨 저는 명의가 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그만한 그릇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환자를 만나더라도 편견을 가지고 낙인을 찍고 바라보는 그런 의사가 되지는 않겠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약속할게요.'


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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