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환자

by 외과의사X

1월에 주치의를 하면서 맘이 많이 쓰였던 환자가 다시 입원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약성 진통제 의존이 심했던, 그래서 본인도 힘들었지만 주위 모든 사람을 힘들게 했던, 너무나 나약해 보이고 때로는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았던 이 아이. 그 당시 나 또한 해결책이 없는 약쟁이라고 생각해서 진통제를 더 안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그 병실을 지나쳐 가곤 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환자 상태도 나아지지 않고 그러는 내 마음도 너무 안 좋아 하루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처럼 1-2분이 아니라 30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후로 난 이 아이가 약쟁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아이는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진통제를 줄여갔다.


그 아이가 며칠 뒤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매번 입원 때마다 선생님들이 나를 마약 중독자처럼 바라봐서 그게 참 힘들었는데.. 저를 다른 선생님들처럼 괴물로 보지 않고 이야기 들어주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잘 이겨내 볼게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관계였구나, 이 아이는 약쟁이가 아니라 누구보다 강한 아이 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약도 줄일 수 있구나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도 받았다.


아이가 퇴원할 때 책을 선물로 주고 싶어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제대로 알게 됐다. 이 아이가 당뇨를 오래 앓아서 왼쪽 눈은 실명이고 오른쪽은 각막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그전에 분명 차트로 봤었던 내용이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나서야 정확히 그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됐다.


오늘 퇴근길에, 혹시나 다시 나빠진 모습을 보게 될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 아이를 찾아갔다. 입원 후 수술도 받았고 중환자실도 다녀오는 등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했다. 여전히 통증으로 힘들어했고 마약성 진통제 의존과 싸우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1월보다는 나아진 상태였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며칠 전 교수님께서 자기를 위로한다고 성경책을, 그것도 두권이나 선물로 주셨다고 했다. 아이에게 대신 사과를 하고 싶었다.


다음 주에는 퇴원한다고 하니 나라도 자주 찾아가 봐야겠다. 잘 이겨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이겨낼 거라 믿는다.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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