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외과를 하려고 외과를 선택했다고 할 만큼 이 파트에 대한 마음이 확고했는데, 그게 요즘 흔들리고 있다. 치프가 돼서 수술을 수없이 보고 그 수술들에 크고 작게 관여하면서 집도의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인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사람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이 의사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행위 같았고 그런 칼잡이들이 때로는 성직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부자가 되어 보니 성직자 중에서 진짜 성직자가 별로 없듯이 외과의사도 그러하다는 걸 깨달았다. 몰라서 용감한 그래서 많은 신자들을 호도하는 이들처럼, 몰라서 용감한 그래서 사람 잡는 외과의사들을 종종 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안 좋다. 그리고 두렵다. 과연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내가 하는 그 평가가 그대로 내게 돌아와서 내 멍에 될 것이다. 그래도 서젼의 기술적인 문제나 잘못된 판단으로 환자가 나빠질 때, 그리고 그게 평생의 후유증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때, 다 과정이려니 어쩔 수 없으려니 이해해 보려 하지만 그게 정말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합리화를 할 만큼 그분들이 자신의 환자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회의감을 느끼다가 또 몇몇 존경하는 은사님들이 환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오아이스를 만난 기분이 든다. 인간적으로 흠결도 있고 가끔은 왜 저렇게 힘들게 사나 싶은 부분도 있지만, 어찌 됐든 그 어렵고 험하고 위험한 길을 먼저 묵묵히 걸어간 분들이 있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 감사한 마음이랄까. 이렇게 내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과 존경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
잘 다룰 수 없는 무겁고 날카로운 칼이라면 들지 않는 것이 맞다. 책임질 수 없는 길이라면 가지 않는 것이 맞다. 그게 부담된다면 환자에게 최대한 위해를 가하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맞다. 그게 나도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꼭 가고 싶은 마음이 있고 거기에 뜻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자 그럼 난 어떤 대가를 얼마만큼 지불할 수 있을까. 이게 그만큼 내게 중요한 일인가. 이 대답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롯이 나 스스로가 해야 하는 대답이다. 그 대답에 따라 내 진로가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
2020.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