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파업

by 외과의사X


앞으로 한주에 하루이틀은

잠도 제대로 못잘텐데 괜찮을까

수술방에서 하루종일 수술하는데

내 체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

취미가 별로 없지만

그것마저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그렇게 힘들게 수련받은걸

마음껏 쓸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집안 형편도 힘든데 바이탈과라니

내가 아직도 너무 비현실적인건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나 있을까

그냥 혼자사는게 양심적인 선택이려나



4년 전 외과를 선택하면서 했던 고민

이 질문에 어느 하나 자신있게 대답 못했다

그대신 ‘사람 살리는게 진짜 의사지’

이거 하나 가슴에 품고 스스로 위로하며

레지던트 4년을 버티고 버텼다


부족한 내가 모든걸 다 할 순 없으니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그만한 힘을 가지려면

그만큼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놔야 한다고

적어도 그러는 시늉이라도 해야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너무나 속상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현타가 마구 밀려온다


왜 가치있는 일을 힘들게 하면서

이런 말도 안되는 고민들까지 해야했는지

그런 고민을 안겨주는 일을 왜 시작했는지


사람 살리는 의사가

이 나라에 많아지길 원한다면

사람 살리는 의사들을 먼저 존중해달라


필수의료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도 이걸 안하려고 해서 문제라면

그럼에도 이걸 하고 있는 사람들 말에

귀기울여달라


내가 외과를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던 그 많은 질문들을

하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달라


밥그릇 챙긴다, 살인면허다 같은 말로

이런 나를, 우리를 싸잡아서 매도한다면

안그래도 힘들게 걸어가는 이 길을

구치소로 가는 지름길로 만든다면

우리는 이 길을 하나 둘 떠나고

후배들도 이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일이 가슴 뛰어

어지간한 고생도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명감 있고 어찌보면 바보같은 그런

낭만닥터는 더이상 보기 힘들 것이다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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