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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충직한 낙타가 되었다

Gobi March 253km, 중국 고비사막

by 경수생각

고비사막 253km 대장정의 시작 / 중국 북서부 우루무치
나는 지난 10년 넘게 지구 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는 조금 독특한 모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사십 대에서 사막과 오지 레이스를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데 시각장애인과의 인연을 빼고 사막을 말하는 것도 참 어렵다.

2005년 초 한 시각장애인에게서 “사막에 가고 싶은데 함께 동행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좋은 일 한번 하겠다고 OK를 했지만 나는 그 역할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해 4월, 과거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중국 북서부 우루무치 Urumqi 지역에서 고비사막 레이스 Gobi March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전 세계 32개국에서 모여든 89명의 전사들은 5박 7일 동안 253km에 달하는 고비사막과 투루판 Turpan 분지의 산야를 넘나들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제작진도 극한의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합류했다. 공포와 좌절, 감동과 희망이 반전을 거듭했던 이 경기는 출전자 중 완주율이 60%에도 못 미칠 정도로 최악의 레이스였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레이스 / 필자는 그의 낙타가 되었다

출발 전 동구시앙 Donggouxiang 캠프에서 시각장애인 이용술 씨가 내게 말했다. “김 형! 김 형은 이제부터 낙타가 되는 거야. 나는 낙타만 따라갈게. 사막에서는 낙타가 제일 믿음직하잖아.” 그때부터 나는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충직한 한 마리 낙타가 되었다. 사막의 극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온전하게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낙타는 레이스의 주인공이 아니다. 낙타는 오직 주인님의 분신이어야 하고, 한 순간도 떨어져서는 안 될 그림자여야 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모두 내려놓지 않으면 정말 감당하기 힘든 역할이었다.


# 좋은 길은 양보한다

사막을 달릴 때 지면이 고른 길은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도우미는 거칠고 험한 길로 가야 한다. 주로의 장애물도 미리 제거해 주어야 한다. 레이스 첫째 날, 어른 머리만 한 돌들이 끝없이 깔려있는 34km 제왕의 계곡 The Valley of the Kings을 따라 올라갈 때에도, 휘몰아치는 모래폭풍 속도 함께 뚫어야 했다. 한나라 왕들의 하계 휴양지인 티 안치 Tianchi를 지나 만년설이 녹아 흘러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수십 개의 강물을 건널 때에도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을 거친 길로 몰고 내가 좋은 주로에 서면 결국 험난한 여정의 목적지까지 함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만년설이 녹아 흐는 협곡 / 허리까지 조여 오는 한기의 고통을 참아야 했다


# 쉬지 않고 얘기를 한다

레이스를 할 때 도우미는 주변 풍경과 날씨는 물론 코스 정보까지, 시각장애인이 답답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해줘야 한다. 촉각과 냄새로, 상상으로 주변 환경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투루판 분지로 들어서는 레이스 넷째 날, 정상인 선수들도 경기를 포기했던 스네이크 피크 Snake Peak라는 수백 미터 흙산의 칼 능선을 지나자 한 뼘 남짓한 산허리의 패인 골을 따라 주로가 이어졌다. 한 손은 그의 팔목을 다른 손은 흙벽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까치발로 거미처럼 벽면에 달라붙어 버둥거리듯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발끝을 내디뎠다. 온도계 수치가 58℃까지 치솟았다. 분지 전체가 살인적인 열기로 달아올랐다. 발아래 천 길 낭떠러지로 흙더미들이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연신 굴러 떨어졌다.

스네이크 피크 칼 능선 / 능선 뒤로 산허리를 타는 코스로 이어졌다

시각장애인과 맞잡은 두 손은 흙먼지와 땀으로 흥건했다.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너무 깊은 곳까지 와버렸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모두가 살아남지 못할 상황에서도 “이 형, 나 믿지? 괜찮을 거야! 조금만 더 가면 돼.” 라며 거짓말을 했다. 사선을 넘나들던 레이스 기간 내내 오직 나의 음성과 서로를 연결해준 끈 하나에 의지한 그에게 수 없이 반복했던 말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투르판 분지에서


# 친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무엇보다 도우미는 자신의 안전보다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도우미는 어떤 상황에도 방심하거나 그의 손을 놓는 것은 곧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이스 중에는 위험과 때로는 목숨까지 담보로 해야 한다. 레이스 둘째 날 저녁, 대자연의 광기인지 엄청난 굉음의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세찬 폭우가 쏟아졌다. 일순간에 티안샨 산맥 구릉지에 자리 잡은 캠프 전체를 쓸어버릴 것 같은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긴 밤을 함께 지새웠다.

캠프의 일상/ 물집 제거
빅균을 넘어 희망을 향해 / 한 순간도 그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모래폭풍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고비사막의 춥고 깊은 밤, 광활한 투루판 분지 유전지대의 정유관 불기둥을 앞선 선수의 배낭에 달린 깜빡이로 잘못 알고 한참을 쫓아가다 길을 잃었다. 얼마만큼 주로를 이탈했는지 알 수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사막 한가운데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무릎 꿇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의 발길을 부디 당신 뜻대로 내딛게 해 주옵소서.’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땅바닥에 코를 박고 수백 미터를 기어가다 기적적으로 앞서간 선수들의 신발 자국을 발견했다. 간절함이 절박했던 나의 한계를 넘어선 순간이었다.


완주 축하를 위해 찾은 개그맨 신동엽과 함께 / 결승선에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냉혹한 대자연 앞에서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었던 나를 그저 믿으라고만 했으니, 도대체 무엇을 믿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그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을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 신뢰였다. 서로 격려하며 이끌어 주었기에 용케 완주가 가능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 없는 각박한 현실에서 상대의 눈이 되어 좋은 길을 양보하고, 포기하지 않게 힘을 북돋아주며 두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인생. 이런 삶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김경수

직장인모험가 | 오지레이서

in 고비사막(중국 우루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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