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롤을 못하는 이유

by 경규승

가장 처음 비디오 게임을 접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5살 때 집 근처 오락실에서 접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제공한 우연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며 게임에 대한 나의 선호도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그 경험은 20년이 지나서 나를 금융업에서 게임업으로 이동시킨 나비효과의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동의 중심에 있는 게임은 League fo Legends, 롤이었다.




롤은 게임 정보에 오픈 API를 통해서 라이엇 계정이 있다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내가 잘하는 것 두 가지를 연결시켜 데이터를 롤 데이터를 가공해서 혼자서 분석하고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보통 게임 유저들보다 이런저런 게임 정보에 대해서 많이 안다.


"그래서 님 티어가?"


그래, 이게 문제다. 난 실버다. 현재 KR서버 기준 상위 51%. 딱 절반 정도 수준이다. 지금까지 가장 높았던 티어는 실버 1 70LP로 기억한다. 골드를 가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롤을 분석하더라도 게임에서 나는 그냥 실딱이였다.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개인이 부유해진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ifi.png 물론 이 계정만 있는 건 아니다...




골드를 가고 싶었다.


그래도 롤판에 있는 사람인데 골드는 찍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강의를 봤다. 챔피언, 라인, 동선, 브실골 탈출법 등 여러 강의를 들었다. 랭크 게임 한판 한판은 체력 소모가 커서, 최대한 밀도 높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려고 했다. 랭크가 오르기는 올랐다. 하지만 내 실력이 오르는 건지, 게임 판수를 늘리면 티어가 특정 수준까지는 올라가도록 되어있는 랭크 시스템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블랙스완>에서 한 글귀를 보고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체스 고수들은 실제로 자신의 수의 약점에 집중한다. 이에 반히 하수들은 자신의 수를 부정하는 사례들보다 긍정하는 사례들을 찾는다.


나의 실력을 향상하려 한 부분은 나의 플레이 위주의 강화였다. 소수의 챔피언 숙련도를 끌어올리고 순간이동 활용과 우리 팀 정글러와 거리를 가까이 유지하여 수적 우위를 점하려 했다. 철저하게 내 위주의 플레이였다. 나의 플레이 에고가 강화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 플레이보다 내 플레이만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나심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의 승리 가설을 확인하는 근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사례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것이 에고를 강화하는 신호에서 벗어나 세상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확증편향에 빠졌다.


에고는 달콤하다. 내가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고 승리 방정식을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특수한 몇 번의 우연한 경험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말자하를 잘해"라고 하는 가설을 개인의 경험을 통해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과거 말자하의 승률을 확인하면 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우 명제를 생각해보자. "나는 말자하를 잘해"는 "나는 말자하를 플레이하면 승리한다."로 표현할 수 있고, 해당 명제의 대우 명제는 "패배한 경우 말자하로 플레이하지 않았다"이다. 즉, 말자하로 플레이하지 않은 판을 졌다면 해당 명제가 강화된다. 예를 들어 내가 게임을 졌는데 해당 게임을 말자하가 아닌 다이애나로 플레이한 경우가 있다면 내가 말자하를 잘한다는 증거가 된다. 심지어 단 한 번도 플래이 해보지 않은 르블랑을 플레이해서 지더라도 증거가 된다. 뭔가 이상하다. 말자하를 연습한 것도 아닌데 나는 말자하를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지?


이는 명제를 확증하는 방법에 대한 황당함을 불러일으킨다. 즉 가설에 대한 증거를 더 많이 수집한다고 해서 가설이 견고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백조는 희다."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목격한 "백조가 모두 희다"라는 경험을 증거로 삼는다면 빨간색 자동차를 보더라도, 흰색 호랑이를 보더라도, 파란색 티셔츠를 보더라도 "백조가 모두 희다"는 대우 명제(희지 않은 것은 백조가 아니다.)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즉 원하는 명제의 증거는 어떤 형태로든 수집할 수 있다.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그 챔피언으로 승률이 좋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내가 그 챔피언을 잘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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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블랙스완>에서 말하는 제2사분면에 속한다. LOL은 '평범의 왕국'에 속한다.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은 모든 주어진 시스템 제약 안에서만 일어난다. 즉 5:5 게임에서 갑자기 한 명이 더 추가되는 경우가 일어나지 않으며 현금 결제를 한다고 해서 골드가 100이 증가되지 않는다. 또한 LOL은 5명의 상호작용으로 게임의 승패, 유불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복잡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위험이 존재하면서 통계적 모형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여전히 전점근성, 독립성 결여, 모형 오류는 존재하지만 상황에 대한 예측과 대응 방안을 미리 고려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물론 특정 챔피언을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럼 어떻게 승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강화하는 것, 즉 나의 에고를 강화하는 행동을 하기보다 상대의 에고를 강화하거나 역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상대란 상대팀 5명뿐만 아니라 우리 팀 4명과 객관화된 나를 포함한다.




우리 팀 4명을 활용하기

밴픽: 일단 우리 팀 4명을 선택을 잘해야 한다. 1명의 손해가 나머지 4명의 손해로 이어지는 네트워크임을 롤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밴픽 화면에서 우리 팀 전적을 검색해 본다. op.gg 멀티서치를 활용한다.


mute all: 많은 사람들이 /mute all을 활용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수동적인 전략이다. 커뮤니케이션 통해서 정보를 얻는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우리 팀을 칭찬한다.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은 문제의 해결에 단 하나도 도움될 것이 없다. 상대팀의 비난과 실수를 유도한다. 단 불필요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자신의 판단이 감정적으로 변화한다면 /mute all을 활용한다.


팀 체크: 내 스펠과 스킬 상태만큼이나 우리 팀의 스킬과 성장 상태를 확인하라. '버스를 타는 것도 능력이다.'는 말과 부합한다. 승리가 중요하다면 내가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된다. 단 우리 팀이 호응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우리 팀이 확률 높게 호응을 해주는 상황을 내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에 따른 반응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나에게 맡겨진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팀의 행동에 대한 결과는 부차적인 것이므로 연연하지 않는다.


상대 팀 5명 활용하기

맞라인 상성: 내 챔피언이 언제 강력한지 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이를 인지하고 있으면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강한 타이밍을 피하는 것과 활용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상대 위치 체크, 예측: 상대방(특히 상대 정글러)의 입장에서 상상한다. 상대 정글러의 다음 동선이 어디인지 확인(예측) 후 내 플레이 여부를 결정한다. 내 스킬 맞은 것만 보고 들어가는 건 어리석다. 솔킬을 따더라도 운이다. 운은 지속되지 않는다. 라이너가 상대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 플레이한다면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다음 게임은 분명 상대 정글 개입으로 죽는 경험을 한다.


상대 스펠, 스킬 쿨타임 확인: 내 챔피언보다 상대 챔피언이 무엇을 할 것인지 예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도 상대 챔피언의 시스템 내에서 제한되어 있는 제2사분면에 속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스스로 객관화하기

리플레이 활용: 주의해야 할 점은 게임 플레이할 때의 나와 게임이 끝나고 난 나는 다른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리플레이를 활용한다. 훈수 두는 사람이 판이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로 판에 개입된 사람의 행동과 훈수 두는 사람은 행동의 차이가 존재한다.(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전문가를 나심 탈레브는 강하게 비판한다.). 리플레이를 볼 때 보통 킬 데스 장면만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는 앞의 행동의 누적으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흔히 말하는 스노우볼이 구른 것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것보다는 스노우볼을 굴리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상대 스펠을 내가 얼마나 체크하고 있는가, 상대 위치를 예측한 정확도가 어떠하였는가를 중점적으로 확인한다. 예측의 정확도는 현실에서는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게임에서는 행동의 경우의 수가 제한되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의 정확도가 높다면 내 행동에 빠른 단계로 영향을 미친다.


피드백 활용: 우리 팀, 상대 팀의 피드백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거친 언어로 표현할 지라도 내가 아닌 타인의 관점에서의 피드백은 내가 만들어 낼 수 없는 귀한 정보다.




결국 게임을 잘하는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 보다 내가 아닌 9명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왜 지기지피가 아닌 것일까? 나에 대한 메타 인지나 에고는 누구나 존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상대를 아는 것(지피知彼)이 나를 아는 것(지기知己)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본다. 그렇기에 비즈니스에서 레드팀을 구성해서 우리 팀의 약점을 공격해 개선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911을 대표적인 블랙스완이라고 말한다. 그래 대부분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한 사람이 존재한다. 바로 테러범들이다. 블랙스완이 모두에게 블랙스완인 것은 아니다.


내가 플레이를 잘하면 실력을 높여서 높은 티어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이해보다, 매판 변화하는 상대 팀과 우리 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플레이하지 않는 나머지 150개의 챔피언과 다른 라인의 플레이를 알아야 실력을 높일 수 있었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다른 챔피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챔피언을 플레이해보거나 다른 챔피언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 즉 게임 플레이 수를 늘리지 않고는 힘들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티어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협곡에서 "통계돌이"를 만나면 닷지(dodge)하는 것이 당신의 티어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Reference.

op.gg

ifi.gg

<블랙스완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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