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장례식장에 가지 못한다

마지막을 확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별을 배우는 방법

by Mia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봄은 이미 와 있었고, 햇빛과 공기가 먼저 계절을 설명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날씨에 취해 8킬로 가까이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어 내심 좋았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잠잠했다.

엄마를 보낸 이후 처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네 시가 조금 지난 시각,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회사 본부장의 부고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어는 분명 익숙했는데,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알고 있는데, 그 문장이 지금이라는 시간과 연결되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을 때도 그랬다.
죽음은 언제나 이해보다 먼저 도착했다.


몇 초 정도였을 것이다.
생각이 상황을 따라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사이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손끝이 먼저 식었고, 심장은 뒤늦게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감각이 올라왔다.

장례식장의 공기였다.


엄마를 보냈던 그 공간.
사람들이 울고 있었고, 나는 울지 못했던 그날.

슬픔보다 먼저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감정을 뒤로 미루는 법을 배웠다.


그 이후로 장례식장은 나에게 특정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누군가를 보내는 장소라기보다, 내가 혼자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공간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곳에 가지 못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집 안에 불을 켜고, 조용히 앉아 그 사람을 떠올렸다.

늘 낮은 자리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직함과 상관없이 몸을 먼저 움직였고, 지시보다 배려가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사람을 챙기는 방식이 분명했다.

내가 힘들던 시기에, 그는 별다른 질문 없이 그저 필요한 것들을 건네주던 사람이었다.


엄마가 아프던 시절,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버티고 있을 때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 끼니를 물어보던 사람이었다.


냉정한 사회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나는 몇 시간 전까지 업무 메일 속에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름 앞에 ‘故’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현실은 그렇게 급하게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별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한 번 충분히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이 마지막이 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조용히 인사를 했다.


고마웠다고.

그리고 잘 가시라고.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이별은 반드시 어떤 의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다른 형태로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그날의 봄은 여전히 밝았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지만, 사람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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