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켰던 내 흔적들
만약 어느 날
내가 살 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현실감이 없을 수도 있고
무서울 수도 있고
어쩌면 이상하게 후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그 말을 혼자 삭혔겠지
열두 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낮추고
시간을 멈춘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 시간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병은
내가 힘들게 쌓아온 평온한 인생 한가운데
갑자기 굴러온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피하고 싶었고
빨리 치워버리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한 번 안아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명치에 걸린다.
아주 오랜만에 엄마 집에서 잔 날이 있었다.
딱딱한 매트 위에
말기 암 환자인 엄마와
서른다섯 살 딸이 나란히 누워
새근새근 잠들었던 밤.
엄마가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줬다.
‘그래도 지금은 편하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그 밤이
그 집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이사하러 다시 그 집에 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냄새도
동선도
물건도.
그런데 정리하다 보니 알게 됐다.
내가 오래전에 쓰다 두고 간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걸.
내가 쓰던 세수대야,
양치컵,
머리핀,
볼펜,
잠옷 바람으로 뒹굴던 매트까지.
나는 그게 발암 물질일지도 모른다며
왜 이런 걸 아직도 안 버리냐고 말했었다.
“엄마 죽으면 이거 다 내가 또 치워야 되는데
왜 나 두 번 고생시키냐고.”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다.
이사 당일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일곱 개, 여덟 개 쌓였고
결국 인부가 와서 치워야 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
주인을 기다리던 살림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 열두 평짜리 집은
엄마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여전히
나와 엄마의 집이었다는 걸.
엄마는
언젠가 내가 돌아올 자리를
그렇게 지키고 있었던 거다.
아마 그 집은
엄마가 나 때문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1분 1초가 아까웠을 그 시간 속에서
엄마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서웠을까.
희망적이었을까.
아팠을까.
아니면
그저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안다.
그 집이,
그 물건들이,
그 고집이
모두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도착한 이해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걸 기억하려고 한다.
엄마는
끝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