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2025년을 보냅니다.

떠난 뒤에도 나를 살게 한 시간들에 대하여

by Mia

엄마, 오늘은 올 해의 마지막 주말, 일요일이야.

2025년이 이렇게 저물어가.

늘 그렇듯 오늘은 특별하지도 않은 보통의 날이네.


작년 이맘때 나는 요양병원에 계시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고,

올해 이맘때 나는 그 손이 남긴 온기를 여전히 붙잡고 있어.

그저 2024년을 잘 보내서 다행이고, 새해에도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 라며 말을 건냈지.


작년 이 맘 때는 참으로 행복했네.

오랜만에 서울에서 산넘고 물건너 내려간 의성은

참으로 맑고 눈이 시릴 정도로 추웠지.


나를 보자마자 ‘뭐하러왔노’ 하면서

틀니빠진 입술로 베시시 아이처럼 웃던 외할매 모습이 선해.


내가 병실에 들어서면

그 동안 안면을 튼 다른 4명의 할머니들과 간병인 선생님들이 반겨주었어.

서울에서는 새벽 5시 첫차를 타야지만 의성역에 오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 분들의 반김에 피곤함은 느껴지지도 않았지.


북작거리는 서울을 벗어나

사람 한 명도 겨우 볼까말까한 의성역에 내리면

누가봐도 외지인인 나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았어.

‘저 처자는 왜 이 시골까지 왔나’ 싶게 말이야.


역주변에 양미리를 연탈불에 굽는 냄새를 뒤로한 채

외할미가 좋아하는 카스테라를 하나 사서 병원으로 향했어.


역에서 병원까지는 걸어서 10분정도인데

사람이 걷지않는 국도변을 따라 조심해서 가야만 했어.

어쩌다 보니 다리아래 돌다리를 발견하고는

짧은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가곤 했어.


그 날도 그렇게 걸어갔던 것 같아.

엄마의 항암치료를 지나 온 후로

나는 병원 근처만 가면 알 수 없는 냄새들이 내 몸을 휘감아

우울한 기분이 몰려오기도 했어.

외할미가 계시는 요양병원도 그랬지.

입구에서부터 퀘퀘묵은 냄새들로 그리 유쾌하진 못했어.





병실에 다달았을 때

그 날따라 외할미가 자리에 없더라.


마침 목욕을 하러갔는데,

몸이 모두 벗겨진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서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걸 보고 한참을 눈물을 삼켰던 것 같아.

어릴 때 할머니는 살집이 있었고, 살결이 보드라웠는데

이제는 숨만 붙어있는 시체나 다름없어보였거든.


연락을 하고 내려갈 수 없어서 그냥 내려갔더니

마침 외손녀가 올 때 맞춰서 깨끗하게 씻었다면서

베시시 웃던 외할미 모습이 선하다.

몸은 앙상해도 머리숱은 복실하게 숱이 어찌나 많았는지

뽀얗게 누워있는 외할미가 귀엽기도 했어.


누워있기도 힘든 환자를 억지로 일으켜세워

미음과 죽사이의 허접한 점심 밥상을 보면서

애써 속으로 쓰라림을 삼켰었어.

어찌 큰외삼촌은 이런 시설과 수준의 요양병원에 할머니의 마지막을 모셨을까 싶었지.


옆에 앉아있노라면 서울에서 내려온 외손녀가 굶었을까

허접한 밥상의 반찬을 조금 찍어서 내 입어 넣어주기도 했어.

맛보다도 외할미와의 그 시간이 참 좋았어.


그 날은 미리 사간 카스테라와 믹스커피를 디저트로 먹었는데

믹스커피를 둘이서 짠하면서 외할미가 좋아하는 트로트를 크게 틀고서

둘이서는 청담동 카페가 따로 없었네 … ㅎㅎㅎ


간병인들도, 환자들도,

삭막했던 병실에서 트로트가 울려퍼지고

30대 외손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90대 노인의 가래끓는 묵직한 목소리로 나누는 수다가 재미있었는지

이내 침대 주변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어.

아마 그 날 만큼은 그 분들도 살아있음을 즐겁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해.


외할미와 시간을 보낸 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편안하기도, 무겁기도 했어.

엄마가 살아있다면 지금 뭐라말할까

잘하고 있다고 말할까, 그거 밖에 못하냐라고 말할까 말이야.


그래도 엄마, 나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

나는 정말 진심을 다했어.

엄마의 몫까지 말이야.

그리고 지금까지 그 온기로 살아가는 거 보면 참 감사해.


외할미는 항상 내 끼니와 앞으로의 삶, 행복을 빌어주었거든.

그리고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좋다고 했어.

여기에 있으니 ‘미야가 찾아와서’ 라고 했어.






엄마,

올해는 엄마와 외할미가 남기고 간 온기로

크게 무너지거 없이

조용히, 하지만 깊게 흔들린 한 해였어.


겉으로 보면 나는 여전히 일하고, 웃고, 사랑하고, 여행을 계획했지.

하지만 속에서는

매일 엄마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없는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었어.


엄마가 떠난 후 올해 3월까지는

외할미가 살아계셔서 그래도 마음의 위안이 있었어.

그런데 올해 여름부터는 오로지 가족하나 없는 이 세상을 마주했어.


더 이상의 이별은 없었지만 놓아야 할 기대들은 여럿 있었어.

그리고 그 기대를 놓는 일이 이별보다 더 아프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


올해 나를 관통한 감정은

외로움, 죄책감, 책임감, 그리고 아주 늦게 찾아온 안도감이었어.


가장 후련했던 순간은

외할머니의 장례가 끝난 직후

큰삼촌일가와 모두 인연을 먼저 끊은 일이였어.

아주 어릴 적부터 폭언을 일삼았던 큰외삼촌과 그걸 묵인하는 큰외숙모와 사촌들.


요양병원에 간병인들이 증언할 정도로

끔찍했던 큰외삼촌의 언행은

외할머니가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어졌지.


그 순간을 부디 잊기 위해서

외할머니는 임종에 가까워졌을 때는 치매와 섬망사이를 오갔어.


자신의 어린시절만 기억하거나,

엄마에 대한 안부를 묻거나,

내가 어릴 적 걸음마를 떼었던 때와같이

자신에게 행복한 기억만 떠올리셨지.


아마 신이 가엽게 여겨서 ‘망각’이라는 선물을 내린게 아닌가 싶어서 감사했어.

최소한 큰외삼촌이 평생 퍼부은 폭언은 기억못하셨으니 말이야.


그리고 나도 끝까지

외손녀의 몫, 조카로서의 몫을 다 한 후

모든 연락처를 차단하고 내 인생에서 지워냈어.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도 믿지 못할 때였어.

퇴근길에 전화 걸 엄마와 외할머니가 없던 순간,

맛있는 걸 먹고있는데 나눌수 없었던 순간,

명절과 생일에 축하해줄 이가 없었던 순간들 등등…

괜찮다 말하면서도 참으로 외로웠었어.


처음에는 그게 벌인 줄 알았어.

엄마의 소중함, 사랑의 위대함을 잊고 산 나에게 내린 벌 말이야.


그런데 계절이 짙어지고

떨어지는 낙엽과 낙엽의 삭는 냄새를 맡을수록

엄마의 추억은 깊어져갔고,

하루하루 마주하는 감정들의 깊이가 선명해지면서

마치 옆에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이 여전하니

떨지말라 말해주듯 그 감정들이 날 지켜주었어.


올해 내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헤어짐, 외로움, 결핍, 끊어냄 등에서

스스로 느낀 ‘내 감정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거‘ 야.


누군가에 의지하거나,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고,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해 나를 참진 않고,

누군가의 회피를 내 책임으로 끌어안지 않고,

내가 가진 결핍들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아야한다는 거야.

이건 강해졌다는 말보다 단단해졌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






엄마,

올해 나는 엄마가 남겨준 방식으로 살았어.


아파도 참고,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고,

그래도 끝내 내 인생을 놓지 않으려 애썼어.


하지만 한 가지는 달라.

이제는 나에게도 엄마처럼 말해주려고 해.


“그 정도면 충분하다.”


“너도 보호받아야 한다.”




엄마,

2025년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도망치지도 않았어.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말해보네.


앞으로 엄마를 만나러 갈 시간은

어쩌면 60년쯤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이 삶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해.


엄마를 다시 만나러 가는 날까지,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조금 덜 미안한 얼굴로,

그 날을 맞이하고 싶어.


그래서 앞으로의 내 삶은,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토록 간절히 바랬던 ‘내일’이자나.


2026년은 나에게 조금 더 친절해져볼게.


엄마의 부재를 견디며,

엄마의 사랑을 안고서,


그렇게 2025년의 마지막 주말을 마무리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