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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inem Show - 에미넴 (상)

랩을 강탈해 간 백인

by 따뜻한 만년필

MBC FM 라디오의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1990년 3월 19일에 첫 방송을 했고, 올해 2025년 3월 19일로 35주년을 맞았다.


필자는 방송의 오랜 & 충성스러운 청취자다. 군복무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을 듣지 않았던 기간도 간혹 있기는 하였다. 그조차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그 기간들을 특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한때는 라디오 외에는 새로운 팝음악을 접할 통로가 딱히 없어서, 필자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지 않았던 기간은, 곧 당시의 최신팝음악을 습득하지 못했던 기간이 되고는 했다.


에미넴(Eminem)과의 Day 1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에미넴(Eminem)을 처음 만났던 날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MP3플레이어 보급이 보편화되어 있던 시절, 설날이라 서울에서 귀성했던, 두 살 터울 사촌동생의 MP3플레이어에서, 빠르게 랩을 하는 낯선 가수를 듣게 되었다. 에미넴(Eminem)이었고, 그때 들은 노래는 <The Real Slim Shady>였다—그때까지 에미넴(Eminem)을 전혀 몰랐으니, 당시엔 필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듣자마자 백인임을 바로 알 수 있는, 분노의 랩을 쏟아내는 앙칼진, 목소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멜라닌 색소는 성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인종이 대개 짐작이 된다. 마치 각 인종만의 음색이 있는 듯. 목소리로 인종이 식별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신기하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당시엔, '냅스터(Napster)''소리바다'로 대표되는 국내외 P2P 음악파일 공유 서비스를 통해 음원이 쉽게 다운로드가 가능했다.


그래서 에미넴(Eminem)을 알게 되자마자, <The Real Slim Shady>가 수록된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의 거의 모든 MP3파일을 어딘가에서 금세 구했고, 나의 단말기에 저장했다. 그 후로는 줄곧, 필자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리스트에서, 에미넴(Eminem)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The Marshall Mathers LP]

누가 뭐라 해도 에미넴(Eminem)의 출세작은 2000년 5월에 발매한 [The Marshall Mathers LP]다.


그전에는 인지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앨범이 에미넴(Eminem)의 데뷔 앨범이라 생각하는 팬들도 많지만, 이 앨범은 그의 세 번째 스튜디오(정규) 앨범이다.

에미넴의 세 번째 정규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

[The Marshall Mathers LP]는 앨범차트(Billboard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싱글차트(Billboard Hot 100)에서는,

'The Real Slim Shady'(4위), ‘The Way I Am'(58위), ‘Stan(featuring Dido)'(51위) 정도의 히트곡을 배출했다. 차트 기록만으로는 특출하게 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앨범과 수록곡—특히 강렬한 <The Real Slim Shady>—으로 에미넴(Eminem)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는 수록곡의 차트성적보다는, 앨범의 판매량이 훨씬 놀랍다.


미국에서 1,294만 장이 판매되어, 미국에서 발매된 모든 앨범 가운데, 역대 32위에 해당한다. 실물 음반 호황기의 끝자락에서 이룬 대단한 성과다. 에미넴(Eminem)보다 위쪽 순위(1위~31위)에는, 2000년대 발매 음반이 없다. 그러므로 에미넴(Eminem)의 [The Marshall Mathers LP]는, 2000년대에 발매된 음반 중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란 뜻이다—참고로 바로 위 31위에는 1,300만 장이 판매된 프린스(Prince)의 1984년 명반 [Purple Rain]이 자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 앨범의 판매량은 대단했다.

대략 2,500만 장이 판매되었고, 세계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역대 44위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프린스(Prince)[Purple Rain](47위)을 따돌렸고,

유투(U2)의 명반 [The Joshua Tree](46위),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슈퍼히트 솔로 데뷔 앨범 [Faith](50위),

대표곡 'You Are Not Alone'이 수록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1995년 발매 앨범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58위) 등등.. 쟁쟁한 역사적 명작들을 제쳤다.


‘Eminem’은 무엇인가?

웬만한 팬들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이자 엔터테이너가 활동명으로 사용하는 에미넴(Eminem)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 활동명의 기원은, 그의 본명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에미넴(Eminem)의 세 번째 앨범명 [The Marshall Mathers LP]에 사용된, 마셜 매더스(Marshall Mathers)가 그의 본명이자, 에미넴(Eminem)이란 이름의 기원이다.


본명에서 이름 마샬(Marshall)과 성(姓) 매더스(Mathers)의 초성을 따면 에메넴(M&M)이 된다. 미국 마스(Mars) 사(社)의, 유명한 초코볼 브랜드 매넴즈(M&M‘s)가 또 그의 별명이어서, 활동명을 에미넴(Eminem)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멋진 이름이 탄생했다. 에미넴(Eminem)

미국 마스(Mars) 사(社)의, 유명한 초코볼 브랜드 애매넴즈(M&M‘s)


새 시대의 개막

90년대까지, 랩(Rap)은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다.

노토리어스 B.I.G(The Notorious B.I.G.), 투팍(2 Pac), 닥터 드레(Dr. Dre), 스눕 독(Snoop Dogg), 제이지(Jay-Z) 등등의 이름들이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당시에 필자는 엠씨 해머(MC Hammer)에 애착이 컸다.


새천년(New Millennium)이 시작된다는 사실은, 전 세계인들을 불안하게도 했지만, 기대에 부풀게도 했다.

에미넴(Eminem)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새천년과 함께 등장했으니, 대중음악팬들의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하게 했다.

에미넴(Eminem)의 랩은 예리하고, 새파랗게 날이 서 있다. 그 이전 흑인들의 랩이 부드러운 연필의 느낌이라면, 에미넴(Eminem)은 0.3mm의 날카로운 샤프펜 같다. 백인 청년이 분노를 한가득 담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에미넴(Eminem)의 랩, 그것은 그 이전 어떤 것과도 달랐다.


그 날카로움과 대중의 호응으로, 흑인들의 전유물이던 랩음악을 강탈해 간 것만 같았다.


실물음반의 명맥이 유지되던 동안, 새로 발매되는 그의 앨범을 모두 구매했다.

그 시작은 에미넴(Eminem)의 네 번째 앨범 [The Eminem Show]였다. 월드컵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미친 듯이 뜨거웠던, 2002년의 초여름.


전작 [The Marshall Mathers LP]로 유명세에 올라탔던 슈퍼스타 에미넴(Eminem), 그가 마음먹고 제대로 준비한 신작은 팬들의 기대를 훌쩍 넘어섰다.

DVD 케이스에 포장된 [Eminem Show]


* The Eminem Show - 에미넴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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