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진 강사님
우리 아이 학교에서 시행한 수업은 아니고 옆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강의였는데 금요일마다 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 분들과 함께 참여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성교육은,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난자와 정자 이야기/ *성폭력 예방 이야기보다 더 처참했다. (우리나라 성교육은 12년 내내 이 두 가지를 반복하고 더 나아가질 않는다고 한다) 여중을 나왔는데 양호 선생님께서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성교육 시간이었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건 평소엔 활기가 없어 보이셨던 선생님께서 교탁 앞에 서시자 마자, 눈을 빛내시며 하신 말씀이였다.
자자, 여러분 우리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신혼 첫날부터 거기엔 '꿀단지'가 있습니다.
세상에, 꿀단지라니. 꿀을 먹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여중생들을 앉혀놓고선 아무 시청각 자료도 없이 한 시간 넘게 선생님의 알 수 없는 꿀 이야기로 시작한 성교육이 재밌고 유익할리는 만무했다. 나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꿀단지라는 단어에서 이미 사고가 멈춰버렸고 더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때, 아이들 질문은 호기심을 넘어서 꽤 구체적이었던 기억도 난다.
-선생님, 여자는 생리할 때와 소변을 볼 때 나오는 길이 각각 다른 건가요?
-남자들도 생리 같은 걸 하나요?
손을 들고 이거 저거 발표하고 진지하게 묻는 아이들에게 선생님께선 호통을 치거나 얼버무리고 넘어가셨던 기억도 난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성교육'이다. 어른이 되고 생각해 보니 그때 꽤나 열심히 질문했던 00B라는 아이가 있었는데(동명이인일 때는 00A, 00B라고 불렀다) 그때도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호기심이 많고 야한 이야기나 농담을 좋아했던 걸로 봐서 우리 또래 보다 더 빨리 눈을 뜨고 영상자료도 접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의 질문들을 지금 돌이켜봐도 충분히 궁금할 수 있고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이상했던 건 야한 질문을 한다, 쉬쉬하고 호통치는듯한 어른들, 같은 반 학우들의 태도였다.
오늘 강의는 크게 두 가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1. 성교육의 의미
2. 연령별 성적 행동
우리에게 큰 이슈가 됐던 n번 방 사건의 주축은 대부분 주동자들이 20대 초반 대학생들이었다.(물론 10대 후반, 수시까지 합격한 18세 예비 대학생도 있긴 했지만 : 이 학생은 미성년 최초로 신상이 공개된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 일어났던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은 범죄자의 80% 이상이 10대라고 한다. 점차 점점 어려지는 연령대 아이들, 이렇게 가다간 강사님 말씀처럼 4년 후에는 몇 십원에 거래되는 수천 장의 음란물 사진을 다운로드하고 유포하고 만드는 주축이 초등학생이 될지도 모르겠다.
'성'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어떻게 살아가는 게 중요한가?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한 성적 호기심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성행위에 대한 호기심만 커지고 잘못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게 아무렇지 않고 뭐가 이상한 지조차 모를 수 있다는 게 무서웠다. 핵심을 놓친 성교육을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더 숨기는 부분이 커지면 비밀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또 비밀 속에서 언제나 사고가 터지고 감추는 게 늘어난다. 아이들을 마냥 어리다고, 순진하다고 호기심이었지 뭐, 지나치고 키우다간 사실은 더 중요한 걸 놓치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성'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터놓고 하면 괜히 관심도 없는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학부모들도 많았다. 사실 나는 성교육 수업까지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학부모님들이면 아이들과 소통도 하고 더 잘 교육하고 싶어서 온 부모님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위험 시그널이 있는 아이들, 사춘기 2차 성장을 앞둔 아이들 학생들, 모든 부모에게도 함께 수반돼야 할 교육이 바로 '제대로 된 성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도 넘쳐나고 아이들의 기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만큼 빨라지고 커지지만 여기에서 더 중요해지는 건 부모의 역할과 의무라고 한다.
사람을 보는 눈과 기준을 기르고 긍정적으로 어떤 가치관에서 스킨십을 어떻게 대할지 기준을 세우는 건 그만큼 더 성숙한 때에 이성교제를 맞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교육이 된다고 한다.
이번 강의를 통해 성교육은 아이들이 자라는 중요한 시기부터 꼭 필요한 가치관 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을 대상화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가치관을 바르게 심어주고 인성을 돌볼 수 있게 해주는 결국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교육. 스스로를 알고 파악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야동이라고 부르는 영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야동을 뭐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야동만 안 봤다 뿐이지 이미 세상에는 야한 웹툰, 소설, 그림이나 19금 표시가 있지만 그걸 능가하는 많은 에로틱한 영화들이 있기에 나는 이런 영상 미디어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접했기에 굳이 '야동'까진 찾아볼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놀랐던 건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이런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친구 노트북에서 이런 동영상 폴더를 발견하고, 여자들도 찾아서 보기도 하는구나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는 야한 동영상, 포르노 그라피를 만드는 건 불법인데 시청하고 보는 건 합법이라고 한다. 물론 합법 기준엔 19금, 19세라는 나이가 적용되긴 하지만.) 성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판별되고 옳은 판단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성교육이 의미는 이미 다 커버린 어른에게 하는 것보다는 효과적이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명진 강사님께서는 두리뭉실, 꿀단지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강의가 끝나면 밝고 희망차고 어떤 설루션을 못 줄 수는 있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아이들을 걱정하게 할 거라는 건 확신한다고 웃으셨는데 농담 삼아하신 그 이야기대로 다들 웅성웅성 걱정도 고민도 많아 보였다. 그런데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알찬 강의를 잘 들었고 돌아가는 길도 즐거웠다.
무조건 미디어를 다 통제하고 절제시키고 부모가 내내 감시한다고 아이들이 성에 대해 눈을 안 뜨는 것이 아니다. 그러려면 강사님 말씀처럼 우리가 무인도에서 외따로이 살아야겠지만. 무인도에 떨어진 두 아이도 아무 지식도 없으면서 서로의 몸에 탐닉하고 사랑을 깨달으면서 임신을 하기도 한다. (영화 '블루라군'처럼)
삶에서 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땐, 상대에게 거절해도 된다는 신념을 가르치고
친구를 위한, 남을 위한 배려, 관심보다 내 마음이 내키지 않고 싫고 꺼려질 땐 과감하게 거절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마음이 약하게 너무 순박한 사람을 이용하는 성범죄뿐 아니라 다른 범죄 사건들도 많기에 아이와 소통하며 접근하며 미리 이런 교육들을 해줘야겠다.
예를 들어, 이성교제 시기나 나이를 부부가 잘 이야기해보고 아직 이성교제를 하기 전에 엄마아빠는 네가 **살 때쯤 연애를 하면 좋을 거 같아, 스킨십도 여기까지만, 하지만 더 하고 싶다면 포옹은 어깨로 서로 안을 수 있지만 배는 20cm 정도 띄우고...
강사님 말씀이 너무 재밌었지만 사실은 필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왜 꽉 달라붙는 포옹은 안 되는데요? 아이가 질문하면 그 물음에 당황하지 않고 그다음을 설명해 주고 알려주면 된다. 미리 알고 준비해서 생각해 본 아이와 막상 닥쳐서 겁나고 떨리지만 휩쓸리기만 하는 아이는 분명 다를 것 같기에.
*수업 진행 중 유익한 자료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공개할 수 없기에 노트 필기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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