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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Jun 19. 2023

내가 뽑은 영화 속  나쁜 엄마 좋은 엄마 1편

-영화 ·드라마를 통해 본 지극히 주관적인 나쁜 엄마 좋은 엄마


이제야 기저귀를 떼고 배변 훈련 중인 둘째는 바깥에서 놀거나 집에서도 놀이에 빠져 있는 중에는 쉬를 참느라 몇 번씩 실수를 한다. 여유 있게 봐주면 좋으련만 지금까지 기다려줬는데 손 가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짜증이 올라온다. 특히 실수한 장소가 키즈카페, 우리 집 카펫 위라는 게 너무 화가 나서 씻기는 중에 아이 엉덩이를 찰싹 두 대 때리니 오늘은 엉엉 울면서 나에게 소리친다.



선율 : (장난감 공구함에서 전동드릴을 총처럼 꺼내며-물론 장난감입니다) 엄마는 나빠, 진짜 나빠.
나쁜 엄마야. 엄마 삡이야! 내가 엄마 고칠 거야!


돌아가는 드릴이 장난감인데도 마음이 아프다. 엄마가 여태껏 참았는데 이번 한 번을 또 놓쳤구나 싶고.

화를 낸 엄마 입이나 엉덩이를 때린 손을 고치겠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코가 못생겼으니 여기부터 고칠 거야!"란 아이 말에 다시 쿡쿡 웃는다.


나쁜 엄마


아이들 기준에서 나쁜 엄마라는 건, 시시각각 바뀌기도 하고 생각보다 빨리 나쁜 엄마에서 좋은 엄마가, 좋은 엄마에서 나쁜 엄마가 되기도 하는 일상의 반복이지만 웃음기 빠진 진짜 나쁜 엄마와 내가 되고 싶은 좋은 엄마를 떠올려 봤다.


『마틸다 』의 엄마 지니아 웜 우드



자녀에 관심이 없는 부모(중고차 딜러인 사기꾼 아빠와 돈 쓰는 걸 가장 좋아하는 엄마)에게 태어난 마틸다는 책과 이동도서관을 하는 펠프스 부인이 유일한 친구이다. 상상력이 어마어마한, 야무지고 특별한 천재 소녀 마틸다. 학교에 가거나 책을 읽는 것보다 텔레비전 시청을 강요하는 마틸다의 부모. 하지만 아이들을 구더기라 부르는 트런치불 교장이 있는 크런쳄 홀 학교에 입학하면서 마틸다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험난한 어른들과의 싸움, 그곳에 또 다른 유일하게 따뜻하고 좋은 어른인 허니 선생님을 만난다. 마틸다는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으로 조금씩 세상과 싸울 용기와 희망을 가진다.


로알드 달의 글을 읽다 보면 진짜 노키드존의 창시자일 법한 어른들이 숱하게 나온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각기 다른 어마어마한 아이들을 떠올려 보라. 버릇없고 이상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 뒤에 모든 걸  그렇게 만든, 잘못마저 허용한 부모들이 있었다. 떠올려 보니 로알드 달은 노키드존이 아니라 아이에게 무관심(노관심)인 부모들을 혼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진짜 마녀도 있지만 마녀가 아닌 멀쩡해 보이는 어른들도(트런치불 교장) 마녀 그 자체다. 아이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빙빙빙 돌리거나(양갈래 머리 혐오증이 극심하다는) 쵸키(혼자 움직이지도 못하는 맞춤용 독방, 오 세상에 너무 끔찍하다)에 가두거나, 진짜 선재 말처럼 이럴 거면 교장을 왜 하는 거야? 아이들을 구더기라고 아이들을 부를 거면서 어떻게 구더기를 득실득실 참는다는 거지? 화가 난다. 아이들이 싫어서 학대하는 걸 즐기려고 오히려 교장을 하는 이 어른을 아이에게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뽑은 더 최악은 트런치불 교장이 아닌 바로 마틸다의 엄마(아빠)다.



나쁜 엄마네.



마틸다를 보면서 다시 확신하게 됐다. 슬프게도 세상에는 엄마가 안 키워야 오히려 행복한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마틸다의 엄마 지니아 웜 우드는 어떠한가, 그녀는 아이를 생물학적으로 낳기만 하고 엄마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이름조차 관심이 없다.(원작에는 아들이 한 명 더 나오지만 뮤지컬 영화 속 마틸다는 외동딸) 마지막 엄마·아빠가 쿨하게 아이를 두고 가면서도 그게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니,  어찌할까 이 상황을. 「귀여운 꼬마가 닭장에 가서」 노래처럼 웃을까 울까 망설여지는 표정을 짓고 싶은데 영화에선 해피엔딩 그 자체다. 아이가 상상하는 그 모든 곳에 아이의 천재성을 봐주고 빛나는 성격과 상상과 공감력, 지혜를 봐주는 허니선생님, 동네 이동도서관 주인 펠프스부인이야말로 오히려 마틸다의 엄마 같단 생각이 듣다.  

마틸다 역시 반복된 무시와 학대, 무관심 속에 아무 애정이 없기에 엄마 아빠에겐 분노의 초능력을 뿜뿜 하지 않지만 다정하고 상냥한 허니 선생님에 대한 응징과 복수로는 어마어마한 재능을 쓴다. 진짜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기의 모든 힘을 사용하고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요!'를 외치는 이 꼬마 아이를 자꾸 응원하게 된다.


아이는 나쁜 엄마에게 반항하고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어쩌면 자기 살 공간과 생존을 걸어야 할 일이니까, 내면에 무시무한 힘을 지녔음에도 순응하고 자기를 낳아준 사람들과 먹여준 사람들을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정서적 공감이 전혀 없었던 이 엄마에게 '길렀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를  방치하는 게 물론 소설이고 영화적 설정이겠지만 가슴 아프게도 아이를 기르지 않는 진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엄마가 됐지만 우리는 그 시험이 있다면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나만의 기준과 나의 자존감을 채워줄 도구처럼 생각하진 않았을까? 그냥 태어났으니 이대로 두고 사는 걸까. 무관심과 학대뿐 아니라 내 아이의 성공, 얌전하고 순응적인 성격, 그런 것에 뿌듯해한 적은 없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매 순간 점수를 매기지만 정작 아이들의 채첨표 속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 자격증 시험'이 있다면 전혀 통과할 수 없는 어른도 있다는 걸 이 잔혹한 동화는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공상과 상상의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꿈을 키우고 갇힌 방에 쓰러져서도 자신을 찾아와서 꼭 끌어안아줄 자신의 진짜 또 다른 아빠(어른)를 생각하는 마틸다가 안쓰럽고 대견하고 눈물이 났다.


엄마 아빠는 이제 괌으로 떠나야 하는데 마틸다는 조른다. 이곳에 남아서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입양되겠다고.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펠프스 부인처럼 영화는 분명한  해피엔딩인데 나는 마틸다가 부모에게 처음으로 낸 마지막 용기인 것 같아서 이 부분이 너무 찡했다. 아이들은 나쁜 엄마에게 이 말을 하고 싶지 않을까.




'나를 조금 더 좋은 어른이 있는 곳에
버려주세요'가 아닌
나를 위해 좋은 엄마가 돼주세요.라고






마틸다의 엄마 웜우드/ 펠프스 부인/ 허니 선생님





『더 웨이, 웨이 백』 The Way, Way Back
던컨의 엄마 팜



왕따로 늘 외롭게 지내던 남자아이 던컨은 여름 방학, 이혼한 엄마 팜과 엄마의 남자친구 트렌트, 그 의 딸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난다. 엄마와 트렌트는 앞자리, 그의 딸이 앞 좌석에 발을 뻗고 자야 한다는 이유로 던컨은 차량  맨 뒤쪽의 짐칸, 웨이 백에 홀로 앉아서 도로를 달린다. 별장에서도 트렌트에게 대놓고 무시와 텃세를 받는 던컨. 그러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유쾌한 아저씨 오언을 통해 그의 워터파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소년은 처음으로 그곳에서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 속에서 환대받고 편안함과 위로를 느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처음과 동일하다. 던컨의 처지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이만 휴가를 마치고 떠나자는 트렌트의 호통 한 마디에 던컨은 쭈구리 모드로 짐칸에 쑤셔 박힌다. 뭐지? 오언과 워터파크 사람들을 통해 던컨은 분명 달라졌는데, 자신감도 얻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이로 변한 거 아니었나, 역시 엄마가 문제구만 할 때쯤



엄마는 기꺼이 아들 옆으로, 의자조차 놓여있지 않은 웨이 백(짐칸- SUV나 스테이션왜건 내부의 뒤쪽 공간)으로 간다. 그냥 가는 게 아니다. 엄마는 주저함 없이 성큼성큼 뒷자리로 타고 넘어간다. 



어마어마한 수미상관. 최고의 반전과 감동이 느껴졌다. 시작과 끝이 같은 장면으로 이어지지만 사실 엄마가 트렌트에게 따지거나 반항을 하고 헤어지지도 않았지만 엄마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나는 눈물이 펑펑 났다. 그리고 마주 보는 두 사람을 보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엄마 팜은 나약하다. 홀로 아들도 키우고 아이 아빠는 아들이랑 같이 살 마음조차 없다. 던컨은 새로운 남자친구에게 3점짜리란 말이나 듣고 늘 아빠에게 가겠다고만 한다. 남자친구의 독단적 성격과 바람기도 외면할 만큼 이혼녀로서 아들과 자신의 안위를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랬던 팜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대단한 용기를 낸 거다. 작은 행동이지만 무엇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 그건 바로 아들이랑 같은 위치에서 같은 자리에서 풍경을 본다는 거다. 이게 뭐 별거냐 할 수도 있지만, 아니 남자친구에게 따지고 헤어지고 아들 손만 잡고 끌고 나오는 게 아닌데 그래도 좋은 엄마야?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들의 눈물과 좌절, 어리숙함, 바닥으로 떨어진 심경을 인정하고 더 낮은 자리로 가서 거기가 더 이상 끝이 아님을 말해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옆 자리에 앉아 손을 잡아주는 용기를 내는 게 엄마도 힘들 때가 많다. 늘 밝고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엄마가 아니다.


선재가 17개월 무렵 언니에게 간다는 이유 하나로 런던행 비행기를 탔다. 아이는 거기서 한숨도 안 자고 긴 복도를 오갔고 사람들 식사를 건드리고 찔러보고 뛰기도 했고 울고 떠들고 온갖 행동을 다했다. 이건 뭐 뛰어내리고 싶은 10시간,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의사표현도 못하는 아이를 대신해 사과하며(내 인생의 가장 많은 사과와 고개를 숙인 날이었다) 자리로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 수치심에 눈물이 났다. 내가 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여전히 나도 알 수 없는 아이의 행동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게 자존심 상하고 분통이 터졌던 걸까. 엄마라 당연 하지만 세상 분주한 수십 번의 사과와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여러 번 반복이 돼도 여전히 힘들었다. 도착해서 알았다. 기저귀에 아무것도 묻지 않은 오줌을 보며, 나보다 더 긴장하고 낯설었을 내 아이가 먹지도 잠들지도, 볼 일 조차 못 보고 불안해했다는 것을.



김미경 강사가 말했다. 자식이 지하 1층이 아닌 더 어두운 지하 10층으로 떨어졌을 때 그 엄마는 자식과 함께 지하 1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여기가 더 끝이 아니고 더 아래서 버텨주고 같이 견뎌주는 엄마가 있다는 걸 아이가 알아야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고.  



던컨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겠구나, 짐칸으로 쫓겨났지만 짐칸 옆에 처음으로 같이 앉아주는 엄마를 통해 던컨의 창 밖 풍경은 이제 달라질 것이다. 엄마와 함께 하는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

가장 가까운 아이들의 마음을 외면하고 돌아서지 말자.  아이 옆에 앉아주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아이의 삶은 3점 짜리도, 짐칸도 아니다. 나의 수치스러움과 통제력 상실에 대한 불안함보다 아이의 불안과 행동을 봤더라면, 나도 기꺼이 짐칸이라도 앉아 줬을 텐데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어 감사하다.




던컨 혼자/ 이제는 엄마와 함께








사실,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엄마의 모습은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속 엄마 하나이다. 전혀 다른 종의(늑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 대해 공부하고 눈물도 많고 여리지만 아이가 원하는 곳, 원하는 삶으로 살길 응원하고 보내준다. 기꺼이, 보내주는 건 아니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잠시 나에게 머문 귀한 손님처럼 아이들을 대한다.『더 웨이, 웨이 백』 엄마처럼 노력하고 아이들 손을 잡아준다면 나도 결국 우리 아이들의 새로운 발자국을 내 것으로 붙잡지 않고 보내 줄 수 있겠지. 세상 모든 엄마들을 응원해 주고 싶다.





늑대 아이 속 엄마 하나(딸 유키와 아들 아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요즘에 재밌게 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지극히 주관적인(내 마음 기준) 나쁜 엄마 좋은 엄마

 (드라마 - 나쁜엄마/ 더 글로리, 영화 -더 웨이, 웨이 백/ 마틸다, 다큐멘터리 - 나는 신이다)

*더 웨이, 웨이 백을 제외하고 대부분 NETFLIX를 통해 시청 가능.

*2편에선 다른 영화와 드라마, 다큐에 대해서 써보겠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영화 -더 웨이, 웨이 백 (108분) *감독/ 냇 팩슨, 짐 러쉬

▶ 영화 -마틸다(122분) *감독/ 매튜 워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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