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힘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기력, 어깨에 곰 세 마리는 지고 있는 것 같은 만성피로, 의욕이 없어지고 에너지도 기분도 한없이 가라앉는 상태.
키보드에 올린 손가락을 바치고 있는 손목에 지구의 중력이 그대로 느껴지고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라는 대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질문에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상태. 의미를 묻는 그 '왜'라는 질문에서 목표지향적이고 진취적인 느낌보다 이미 내적 동기를 잃은 자의 반항끼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알았던 날들.
번아웃이었을까.
쉼표를 찍는 여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길지 않은 여정임에도 우리의 쉼표는 삶 전체를 아우르고 일에 영향을 주고 또 받았다. 무엇하나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이 쉼과 삶과 일이 정반합을 이루며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굴러갔다. 코칭의 주제는 회기를 거듭할수록 진화해 갔고 갈피를 찾지 못하던 열 손가락 끝의 예민했던 감각은 그 무게 중심이 온몸으로 옮겨지며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쉴 수 없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BUT... 코칭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내 무의식은 '평온한 마음으로 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아직 명확하게 찾지 못한 듯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 회사에 다닐 때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간혹 한 번씩 날 주저앉게 만들었던 그때의 상태. 일이 안되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삶에 아주 큰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게 기력이 없었고 힘이 없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흐르겠다 싶도록 커피를 들이부어도 도무지 나아지지를 않았다.
회사를 벗어났다고 상태가 바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몇 년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잠을 자고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돌보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조직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인내하며 다시 노력하기 시작했을 때 번아웃의 그늘에서 아주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약속된 강의나 회의가 있지 않는 한 여행길에 더 이상 노트북을 챙기지 않아도 여행 일정 동안 마음이 전혀 무겁거나 찜찜하지 않았다. 일에서 분리되는 시간 동안은 그냥 그곳에 머물렀다. 주위 사람들의 성장을 의식 하긴 하지만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할 바를 차근차근할 수 있는 만큼씩, 하지만 나름의 속도로 성실히 해나갔다. 번아웃과의 관계가 그만큼 느슨해졌다.
'내가 이런것들을 좋아했었구나', 이제야 알아가는 '나'
코칭은 마치 저의 인생이 적힌 두꺼운 책을 툭 펼쳐 손으로 짚어가며 한 줄씩 읽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생의 그 시기는 이렇게 쓰여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었는지, 지금은 어떤 의미로 읽히는지. 그때의 최선과 지금의 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펼쳐서 볼 수 있었지요. 불편할 수 있는 무거운 이야기를 회기마다 불쑥 내뱉을 때도 단단한 표정의 코치님을 보며 안정감을 느꼈고 이해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길을 찾을 수 있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코치님께 정말로 고마운 것 중 하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라고 주저하게 되는 말들을 내뱉었을 때도 ‘그렇구나’라고 담담히 받아주신 점입니다. 내가 아무렇게나 떠든 말 중에서 핵심을 찾고 그것을 다시 한번 질문으로 끌어내 답을 찾게 해 주신 점, 장황한 고민을 정갈한 언어로 정리해 주신 점, 꼬인 실타래 같았던 복잡한 마음을 곱게 말아 유용하게 쓸 수 있게 해 주신 점도 감사합니다.
‘코칭을 받아야 하는 시기가 따로 있는가’라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살아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말이죠. 든든한 조력자, 친구, 선생님, 형제, 동반자 같은 이번 쉼 코칭을 마무리하면서 삶의 이정표를 노트 한 바닥 가득히 얻어갑니다.
- 묵직했던 쉼표 코칭 후기, Mia -
우리가 주고받은 쉼과 삶과 일로 이루어진 정반합의 대화는 어쩌면 번아웃으로 멈추어 있던 삶의 바퀴를 조금씩 다시 굴려가는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번아웃의 원인이 스트레스가 되었든 에너지 방전이 되었든 뻘에 박힌 듯했던 무기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시도들과 스스로를 구하고자 했던 의지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힘이 낳은 소중한 시작 말이다.
삶의 바퀴가 움직일 기미를 보인다면 이제 시작이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나를 돌아보며 내면의 힘을 키워가자. 넓고 깊게 삶을 향유하는 존재를 향하여.
PS. 쉼표 코칭을 '쉼앤라이프 코칭'으로 정식 오픈하려고 합니다. 5명 내외, 소수의 인원으로 그룹코칭 + 1:1 코칭(1회)으로 쉼과 삶을 함께 가꾸어 가실 분들과 함께 할게요. 정식 오픈은 7월, 모집 공지(블로그&인스타 공지)는 6월 마지막주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