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나우 Jul 08. 2023

Boyhood

나의 첫 번째 조카 예찬이, Joshua

예찬이가 한국에 왔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 선재를 데리고 영국에서 본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그때 선재가 17개월 무렵이고 예찬이는 7,8세쯤 된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조카 예찬이. 예찬이는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첫 번째 조카다. (언니에겐 네 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언니가 영국에서 예찬이를 낳고  2주도 안될 무렵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다. 덕분에 나는 예찬이의 소중한 영유아기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눈, 코, 입이 아기 사슴 밤비처럼 빛났고 뽀얀 피부에 까르르 엄청 잘 웃는 아가. 너무 작고 예쁘고 뽀송뽀송 아가의 냄새가 갓 구운 식빵 냄새 같았다. 당시에 나는 선릉역 근처 학원에서 일할 때였는데 일이 끝나면 무조건 언니네로 향했고(언니가 머무는 곳도 바로 선릉역!) 언니네가 원룸에서 생활하던 때였음에도 형부가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면 아가 옆에 자고 싶어서 짐을 싸서 예찬이 옆자리를 차지했다.


비 오는 날 던킨 도넛을 사 먹으러 갈 때도 나는 핸드폰이나 지갑이 아닌 자연스럽게 아기 띠(baby carrier)를 먼저 챙겼다.


-나경아, 비 오는데 아기띠는 왜?

-예찬이 데리고 가야지. 비 오는 거 구경도 시켜 주고. 나 예찬이 안아주는 거 좋아. 비 오는 거 예찬이도 한 번 봐야 돼.

-그래, 난 안 나가고 그냥 너 혼자 심부름 갔다 오라고 할랬는데.


나는 익숙한 듯 허리에 척척 아기 띠를 착용하고 작고 소중한 예찬이를 앞으로 꼭 안았다. 비 오는 미끄러운 계단도 더 조심조심 그렇게 둘이 외출을 했다. 아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구나, 처음으로 알았다.


내 안에 조카로 꽉 들어찬 삶.
언니의 아이이기에 마냥 더 이쁘고 사랑스럽고,
내가 키우는 책임감에선 또 벗어나고.
그냥 그렇게 무한정으로 마냥 이뻐만 할 수 있는 존재가 내게 생긴 게 참 좋았다.


나는 원래 아기를 좋아했는데 나보다 작고 꼬물거리는 그 존재를 이렇게 날마다 보고 우유도 먹이고 안아주고 씻기고, 보살펴 줄 수 있다는 게 특히 더 좋았던 것 같다. 나처럼 짜증과 예민으로 이뤄진 사람도 이모가 되니 아가를 이렇게 한결같이 사랑하고 바라볼 수 있구나.


예찬이가 한국에서 좀 더 머물면서 말문도 트이고 '리루!'라고 불렀던 발음도 어느새 '이모'로 또렷해졌다. 작은 아가를 붙들고 이모란 말과 내 이름을 얼마나 가르쳐 줬는지 모른다. 밤늦은 시간에도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언제든 데리고 나갔다. 어떤 날은 내가 먼저 나가자고 했다. 철없는 이모.


-밤중엔 애들도 놀이터에 없을 거야. 우리 나가서 놀까?


형부가 하는 일이 잘 돼서 일원동에 아파트를 구하게 됐을 땐 우리 예찬이를 곁에서 매일 보고 싶어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내 옷과 짐을 왕창 싸갖고 언니네 집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내 방에 있는 짐을 전부 형부 차에 꽉꽉 실었다. 형부나 언니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ㅋㅋㅋ 나 좀 이상한 애네.


직장으로 출근도 하고 쉬는 날엔 우리 예찬이랑 문화 센터도 가고. 당시 언니네 집 근처에 사는 남자친구랑 우리 예찬이 갈비도 사주고 공원 산책도 시켜주고. 축구도 하고 분식집에도 갔다.


어느 날엔가 둘째 예나를 임신한 언니랑 스케줄이 꼬인 적이 있는데 열쇠도 핸드폰도 모두 없던 언니가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놀다 온 나와 예찬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임신해서 무거운 몸으로 힘들고 지친데 아이랑 내가 사라졌으니 또 걱정은 되고 언니는 이래저래 많이 지치고 화가 났을거다. 언니가 불같이 화를 냈을 때도 예찬이는 자기 엄마가 아닌 나에게 달려와서


엄마 미워, 엄마는 나빠!


나에게로 달려와서 토닥토닥 나를 안아줬다.


내 손의 반만 한 아이 손이 내 어깨를 도닥여줄 때 그 기분이란.

-엄마는 나빠, 왜 이모한테 소리를 질러, 나는 이모 편이야. 이모는 잘못한 게 없어!


귀여운 발음으로 또박또박 내편을 들어주는 예찬이 목소리에 눈물이 또르륵 났다.


영국에 갔을 때도 언니랑 크게 싸우고 혼자 선재를 아기띠에 안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고만 좀 싸워라ㅋㅋ) 나와서야 깨달았다. 돈도 핸드폰도 두고 나왔다는 것을;; 갈 곳이 없어 불 켜진 집에 들어가서 뭐라고 사정을 말하고 차를 얻어마실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가 마을 끝까지 다 걸어왔다는 걸 알았다. 뉴몰든에 내가 아는 집은 언니네 집뿐인데 캄캄한 밤이 밀려오자 불 켜진 상점 하나 없는 그곳에서 나는 훌쩍훌쩍 울다가 다시 언니네 집으로 돌아갔더랬다. 집에 들어선 순간, 창 너머로 보이는 소파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그 순간까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우리 예찬이었다.


예찬아, 넌 그때도 내 편을 들었지. 내가 집에서 문을 쾅 닫고 나간 지도 모르고 설거지와 집안일에 몰두했던 언니는 예찬이가 다급하게 뛰어오며


엄마, 엄마! 나경이 이모가 아기랑 나갔어요.
엄마는 왜 이모한테 소리를 질러요? (사실 화는 내가 먼저 냈단다 예찬아, ㅎㅎㅎ)
엄마, 나경이 이모는 한국에서 여기까지
우릴 봐주러 와준 귀한 손님이에요.
이모한테 사과하세요.

모든 과정을 알렸다고 했다.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며 텅 빈 거실에 혼자 앉아서 창가에서 내가 언제 오나 쳐다보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너였구나. 언니에게 또 그 말을 듣고 아이를 불안하게 했다는 그 생각에 나도 펑펑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 웃음이 비실비실 나오기도 했다.

고마웠다. 이모를 어린 시절과 다름없이 일 번으로 아껴주는 네 마음이 뭉클했다.


항상 배려와 양보가 몸에 밴 아이.


아래로 동생이 줄줄 태어나자 고집 세다고 여겨진 성격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부터 양보하고 나누는 법을 먼저 배웠겠지, 7살인데도 자기 계란 볶음밥을 척척 해 먹고 3살도 안된 선재에게 형아가 방아방아를 해줄까? 뽀로로를 보여줄까 하며 챙기던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질과 태생이 그렇게 선하고 예쁜 애일 수도 있지만 나는 언제나 우리 예찬이가 조금 짠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따라간 주일 학교 예배 시간에 선생님께서 예찬이가 울면서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이가 울면서 기도한 내용은 '제발 우리 엄마가 동생을 더 안 낳았으면 좋겠어요'라고.  그 작은 속 안에 속상한 마음, 나눠주고 빼앗긴 사랑에 대한 설움이 큰 것 같아 내 마음도 아팠더랬다. 항상 방에서 잠이 들 시간이면 엄마 옆은 어린 두 여동생들이 차지하고(이제는 세 명의 여동생이다 ^^) 예찬이는 자기 방이 있었지만 베개를 들고 엄마 자리를 한참 빙 둘러보고 서성였다. 어디에도 큰 아이의 자리는 없었다. 아이는 같이 손을 모으고 기도를 마치고 엄마를 꼭 안아준 뒤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 언니 역시 그런 찬이 모습이 짠해서 아이들이 전부 잠이 들면 어느 날은 그렇게 자기 방에서 홀로 잠든 예찬이 작은 침대로 올라가 아이를 꼭 안아주기도 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힘든 거구나. 언니의 눈물도 보였고


아이가 자란다는 것도 그만큼 마음이 아프고 눈물 투성이라는 것도 나의 조슈아, 예찬이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언제나 나에겐 네가 일 번이야, 예찬아. 우리 예나, 예아, 예니 모두 귀엽지만 나랑 같이 살았고 나에게 첫 번째로 와준 천사인 예찬이에게 늘 그렇게 말해줬다. 네가 원하는 만큼 숨바꼭질을 해주고 빙고를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같이 수영장에도 갔다. 캐러반 체험도 하고 너랑 친구 승훈이를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난도스 치킨집도 가고 거기서 사람은 세명인데 주문을 잘못해서(부족한 영어 실력;;) 치킨을 네 마리나 시킨 적도 있었다. 『라이언 킹』 뮤지컬도 함께 봤다. 영국에서 재밌는 뮤지컬을 많이 봤지만 친정엄마, 언니, 우리 셋이 함께 본 『맘마미아』보다 라이언킹이 더 재밌었다. 세상에, 그 얌전한 아이가 뮤지컬을 보면서 환호하고 즐겁게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순간을 예찬이에게 좀 더 많이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처음 보는 뮤지컬 『라이언 킹』에 압도당했지만 나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예찬의 빛나는 눈빛을 더 잊을 수가 없었다.






영화 보이후드

여섯 살 메이슨 주니어와 그의 누나 사만다는 싱글맘인 올리아와 텍사스에 살고 있다. 아빠인 메이슨 시니어는 일주일 한 번씩 들러 메이슨과 사만다를 데리고 캠핑을 가거나 야구장에 데려가며 친구처럼 놀아 주곤 하지만 함께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엄마의 일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져 계속해서 낯선 도시로 이사를 하고 메이슨은 외로운 나날을 보내며 조용히 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잭슨의 노래 중에  『Have you seen my childhood?』란 곡이 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듣기만 해도 가녀린 미성과 함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때가 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아예 없었을 것 같은 마이클잭슨의 삶에 나 혼자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린 시절은 누구나에게


아련하고

어렴풋하고

미성숙하고

유약하고

순수하고

반대로 교활하고

또 때론 너무 잔인하다.


주인공 메이슨이 5살 꼬꼬마에서  18세 다 자란 청년, 수염 덥수룩 청년이 됐을 때 그 감동이란, 가슴 뭉클함과 반가움, 아련함이란... . 별로 슬픈 장면도 없었는데 다 자란 애 어른을 보는 것 같은 심경이었다.



오, 너 왔구나 세상에! 이렇게 훌쩍 컸어!



라는 대사가 들릴 쯤에 나도 왈칵 눈물을 쏟았다.

어른들의 모습은 살이 좀 더 찌거나 빠지고  헤어스타일이 바뀐 정도로만 느껴졌지만 메이슨은 그렇지 않았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 모두 12년이 넘는 긴 시간을 한 배우가 그대로 연기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다.)

아기 메이슨이 완연한 탈피(?), 크나큰 성장통을 겪으면서 얼굴, 몸, 마음까지 고스란히 변해서일까.

우리 예찬이가 어느 날 상상도 못 할 청년이 돼서 나타나는 건 영화처럼 정말 순식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인생엔, 진짜 인생엔 치트키가 없다. 

어쩌면 이 영화가 좋은 이유도 치트키 없는 성장 그대로를 고스란히 정직하게 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등장하는 5년 후, 10년 후 이런 자막과 함께 화면이 훅 바뀌는 게 아니라  다 자란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게 아니라, 아무 자막이 나타나지 않아도 우린 모두 안다.


아이의 모습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통해 시간이 흐르고 성장했다는 것을. 매년 같은 시간을 정해 조금씩 촬영을 하고 다시 소통을 하고 만났을 배우들과 스텝들을 생각하면 어쩌면 영화 밖 이야기가 진짜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영화엔 다 담을 수 없었겠지만(비하인드도 꽤나 재밌다 ) 그보다 뒷얘기가 더 무궁무진했을 진짜 메이슨에게! 아직도 ing중인 메이슨에게! 그리고 나의 첫째 조카, 나의 소중한 조슈아, 우리 예찬이에게 손뼉 쳐주고 싶다.


어느 날 이모 키를 훌쩍 뛰어넘어버린 너를 오랜만에 보는 심경이 이럴 거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예찬이 네가 생각나서 이모는 눈물이 났는데 진짜 예찬이를 보니까 반가움과 기쁜 마음이 훨씬 컸다. 나의 허리 위로 조금 더 올라왔던 키의 조그마한 아이는 이제 내가 올려다볼 만큼 커져있고 훌쩍 자라 있었다.



잘 달려왔어, 예찬아.

인생에 많은 공백과도 같은 공간과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우리 이렇게 다시 만난 순간을 놓치지 말자.



시간은 영원한 거지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순간을 잡으라고 하지만
난 거꾸로인 것 같아.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야.
-영화 <보이후드> 중에서








▶보이후드 Boyhood/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2014년 작) /165분

▶줄거리 소개 : 네이버 영화 <보이후드>

▶Childhood/ 영화 『프리윌리 2』주제곡/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

Have seen my childhood?로 시작한다.


글 쓰는 오늘 Season13 우리들의 글루스 III
다섯 번째 일기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그의 엄마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