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달라, 너무 달라, 달나라
신랑과 나는 성격이 다르다. '완전히'까지 썼다가 그래도 부부인데... 오버스러운 것 같아서 지웠다가 그래도 다르긴 다른 건데, 다른 게 꼭 나쁜 걸까.
어제도 친정에서 TV를 보는데 영화 한 편이 나오고 있었다. 《달이 지는 밤》이란 영화였다. 원더걸스 막내였던 안소희가 가장 알려진 배우로 나오는 영화인지 안소희 주연 「달이 지는 밤」이라고 적혀있었다. 노숙자 같은 포스를 풍기는 아주머니인지, 할머니 같은 분이 버스 정거장에 내리고 한참을 산에 오른다. 오르다가 산 깊은 곳에 들어가 바닥을 마구 파헤친다.
띡-!
예상대로 채널을 바꾸는 소리가 들린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럴 줄 알았다. 분위기가 어둡거나 조금만 음산해 보여도 심지어 기아, 난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보여도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서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전혀 달라서 같이 TV를 보는 일도 거의 없다.
▷ 아니, 왜? 지금 보고 있잖아.
▶ 왜? 즐거운 일요일 낮에 왜 저런 걸 봐야 해?
▷ 저런 거라니? 저게 어떤 건데?
▷ 방울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주변도 캄캄한데 무덤을 파는 거야, 뭐 하는 거야? 저런 걸 꼭 봐야 해?
갑자기 무슨 괴담인지 저 배우가 죽은 거라는 둥(찾아보니 아직도 살아계신, 열심히 연기하시는 배우님이었다) 이상한 소리를 횡설수설을 하더니, 일요일은 무조건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사람답게 밝은 정서와 자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강조한다. 이 정도면 뭐 싸우는 것도 아니다. 짜증이 났지만, 나도 내 할 말을 또 다 하는 스타일이라, 무던하게 넘기진 않는다.
응응! 나는 궁금해!
왜 저 여자가 할머니 같은 여자인지 중년의 아줌마인데
할머니가 된 건지도 궁금하고 대체 혼자 무서운 산속에 꽁꽁 들어가서
뭘 파헤치는지도 궁금하고,
-저기서 고구마를 캐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원더걸스 안소희가 나온다는데 언제 나오는지도 궁금해!
내가 안 본 영화라 더 궁금해.
난 궁금하다고!
흔히들 부부를 서로 참 안 맞아서 로또라고 한다면 우리 부부만큼 안 맞을 수 있을까.
새벽 5시에 기상하는 신랑과 아이들 학교와 어린이집을 보내기 위해서 눈을 비비며 8시가 다 된 시간에 (그것도 힘겹게) 일어나는 나, 신랑은 새벽 기상 후, 7시부터 나와 아이들을 열심히 깨운다. 나에게 이른 기상은 7시 - 7시 30분 정도 되는 시간인데 그것도 열심히 옆에서 모닝콜 역할을 해주는 신랑 덕분이다.
내일 출근하거나 주말에 놀러 갈 외출복을 그 전날 골라놓고 코디해 놓는 신랑과 그날그날 그때 기분에 따라서 당일에 아무거나 걸쳐 입고 나오는 나, 그나마 신랑과 살면서 아이들 옷은 미리 전날에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쓰다 보니, 서로 달라서 장점이 더 많네? ㅎㅎㅎ 의도하진 않았지만 로또라서 장점 발견!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데 전날 혹은 당일에 짐을 후다닥 싸는 나와(영국에 갈 때도 당일 새벽에 짐을 싸는 지독한 -_-;;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푸핫;;;) 최소 2주 전에 캐리어를 꺼내서 가져갈 목록을 체크하고 꼼꼼하게 짐 정리를 하는 신랑. 신랑 덕분에 이제는 일주일 전에는 캐리어를 꺼내놓긴 한다. 짐을 싸는 건 3일 전이긴 하지만. ^^;; 타협점이 생긴 거다.
겁이 많으면서도 공포 영화,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챙겨보는 나와 정서가 우울하게 물드는 게 싫다고 공포나 스릴러, 심지어 아픈 아이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도 그냥 꺼버리는 신랑.
〔닷찌볼〕,〔폴리와 함께〕, 〔프렌즈〕 같은 아담샌들러, 벤 스틸러, 우리의 챈들러가 나오는 매튜페리를 좋아하는(고인이 되셨지만) 우리 신랑. 나도 정말 좋아하는 영화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검은 물 밑에서〕나 〔사바하〕도 극장에서 보고야 마는, 쫄보이자 공포영화 마니아이다!(아, 쓸데없이 당당한;;;!!)
「검은 사제들」은 신혼시절 잠든 신랑을 거실로 끌고 와서 TV로 감상한 기억도 있다. 혼자선 절대 못 볼 것 같으니 코 골고 잠들어도 괜찮아, 나는 옆에서 그냥 볼게, 이런 생각으로 본 공포영화가 꽤 여러 편 된다. 진짜 자느라 검은 사제들은 하나도 안 본 신랑도 대단하고 그냥 안 보고 말지, 끝까지 보겠다는 나도 부창부수다. 천둥 같은 코 고는 소리와 부엌에 달아둔 액자가 갑자기 떨어져 여러 번 비명 지르고 눈물이 찔끔 난 적도 있지만 신랑은 아랑곳 않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ㅋㅋㅋ
mbti를 검사해 보니 내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것마저 일치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ㅋㅋㅋ
놀랍지도 않고, 역시는 역시구나 했더랬다.
ENFP ◀ ▶ ISTJ
하나는 맞을 법도 한데 어떻게 연애를 한 거지?;;; 서로의 다름에 끌렸다가 지금은 보완을 통해서 서로 맞춰가는 중이라고 한다면 포장일까, 상호보완적인 관계, 부부야 말로 서로의 빈틈과 허점을 낱낱이 잘 알고 있지만 사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 호기심 많은 성격 덕분에 나는 파헤치고 질문하고 늘 알아가는 쪽을 택하기도 하지만 우리 신랑 입장에선 좀 피곤하진 않았을까.
나만해도 그랬다. 겁도 없는 사람이 왜 이렇게 무서운 장르라면 질색을 하는지, 아픈 아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면 질색을 하는지, 사실은 내면에서 더 쉽게 물들고 울까 봐 슬플까 봐, 불안한 마음에 피했다는 걸 살면서 깨달았다. 나는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감정까지 전부 털어놓는 편인데, 직장이나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말로 털어놓는 순간, 그것마저 스트레스가 될까 봐 오히려 입을 꾹 닫아버리는 스타일이라는 것도 이전에는 잘 몰랐다. 책임감이 많고 성실하며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큰 신랑의 장점들이 사실은 일상에서 날마다 빛을 발하기보단 당연하게, 그게 뭐, 이렇게 넘어가는 순간들도 많다는 걸. 나 역시 따뜻한 말 한마디가 늘 중요한 사람인데 따뜻한 말로 잘 표현을 못하기에 신랑이 무심해 보였다는 것도, 많은 시행착오와 다툼과 화해를 반복한 끝에야 알 수 있었던 놀라운 비밀들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좌르륵 써서 이렇게 말하고 표현해 주고 대화해 줘, 말한 적도 많다. 하다가 자괴감이 들어서, 아바타도 아니고 이게 맞나? 이렇게까지 고맙다, 미안하다, 잘했어, 말을 들어야 괜찮을 만큼 내가 나약한 사람인가 자괴감이 든 적도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내 자괴감을 넘어서 끝까지 표현을 했더니 신랑이 말로는 못해도 나에게 인정하는 말을 건네주고 미안함을 표현해 주고 짧았던 카톡에 감정을 담아서 긴 장문의 편지로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도 잘 몰랐는데 그냥 말하긴 쑥스럽지만 '난 너처럼 상대방을 별로 신경 안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라고 디스를 하는 듯하면서도 길게 자기 마음이 어땠는지 카카오톡 문장으로 말하기도 했다.
8년간 일했던 직장을 떠나, 오늘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정리되지 않은 집안일도 언제나 쓱싹쓱싹 묵묵하게 해 주고 미처 거실을 못 치워서 마무리를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전 회사에서 짐을 찾아오는데 내가 선물해 준 기억이 또렷한 다 낡아진 연필꽂이를 보는데, 신랑이 그걸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봐도 색도, 모양도 그냥 딱 전부 내 취향으로 이루어진 선물인데.
ㅠㅠ
이렇게까지 닳았는데 버리지, 쫌! 하니까, 내 글씨를 보면 그냥 힘이 난단다, 그래서 버리긴커녕 어느 직장으로 옮기든 늘 일 순위로 챙기는 짐이 바로 요 연필꽂이라고 했다.
아침마다 설거지를 해주고, 집 정리를 하는 게 보통 일인가, 정말 고마운 일이다.
하라는 것만 해서 짜증 난다는 내 푸념에 주변에 언니들은 이런 얘기를 했다. 네 신랑은 진짜 천사야, 천사.
우리 신랑은 쌀도 다 씻어놓고, 이거만 눌러, 버튼 하나몇 분 후에 눌러달라는 부탁 하나도 안 들어.
다 같이 웃었지만 진짜 너무하네, 생각하기도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잘살고 이어지는 부부는 과연 뭘까 궁금하다.
연애할 때 신랑생일에 신랑 취향에 맞춰 생일 선물을 여러 개 준비하고 케이크를 사고, 경양식 돈가스 집에서 생일파티를 해줬다. 지금 생각하면 전부 허접하고 이상한 선물 모음 같은데(아니, 내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목걸이, 팔찌 이런 걸 왜 준비했지? 하핫;;; ㅋㅋㅋ), 하나하나 포장해서 편지랑 정성스럽게 쓴 기억도 난다. 선물도 10가지 정도 준비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동그랗게 커진 신랑 눈이 지금도 생각난다. 생일에 한 번도 이렇게 크게 축하를 받지 못했다는 신랑 말에 나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생일에 미역국과 홀케이크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미역국도 따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다고 하니 물론 생일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시부모님이 된 두 분에게 내가 좀 서운해했던 기억도 난다.
웃지요.
내가 끝까지 내 이야기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화주의자이기에, 어제도 그냥 채널을 만화로 돌렸다. 이제라도 자기감정과 정서를 선택하고 싶은 신랑은 존중해주고 싶기에.
아니, 뭔 만화도 코난이야, 저거도 사람 죽잖아.
아이코, 됐다, 됐어. 에도가와 코난은 모욕하지 마라, TV를 끄고 결국은 또 아이들과 우르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가을 풍경으로, 밖으로 향한다.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도 마지막 거울 앞에 마주 보게 될 게, 우리 신랑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유머러스함과 여유, 단단함에 반했는데 알고 보니 불안과 긴장감이 어마무시하게 높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반전은, 그게 싫고 미운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부족한 내 마음이라도 더 사랑해 주고 늘 한결같이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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