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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Nov 01. 2024

무수히 쏟아지는 글 속에서

차고 넘치는 샤인 머스캣을 보다가



샤인머스캣, 이 과일을 처음 먹었던 건 6년 전, 아이가 유치원 입학을 하고 사귀게 된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습니다.  한 송이에 만원도 넘는 과일을 시원이 엄마는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준다며 턱 하고 샀죠. 


청포도와 색은 비슷해 보였지만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과일이었기에 그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언제 돌발 상황이 벌어질 줄 몰라 아이 옆에 늘 따라가곤 했는데 과자가 아닌 이 비싼 과일이 식탁에 올라온 순간, 아이들을 챙겨주고 난 후에 하나를 뜯어서 입에 넣어봤죠.


팡팡하고 터지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입 하나 가득 꽉 차는 아삭하면서도 몽글한 식감이 더없이 기분 좋았습니다. 포도를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따로 씨를 뱉어내야 하는 귀찮음, 번거로움이었는데 거봉처럼 껍질이 두껍지도 않은 이 녀석은 탄력 있는 얇은 껍질 마저 아삭아삭 씹는 맛이 났고 씨는 뭐, 뱉을 필요가 없었죠. 씨 없는 수박, 아니 씨 없는 포도알 그 자체였으니까요. 망고맛의 당도, 달달함으로 소개된 이 과일은 사실 제 입맛엔 망고맛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포도와 아오리 사과를 합쳐놓은 맛, 사과 중에서도 초록색을 띈 아오리의 향과 아삭함이 떠올랐고, 적당히 쫄깃 탱탱한 식감이 아주 재밌었습니다. 


아이들보다 제가 더 많이 먹은 것 같은 샤인 머스캣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샤인머스캣의 가격이 거봉보다도 뚝 떨어졌습니다. 늘 장을 보기에, 과일 장은 꼭 보게 되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자주 찾는 사과나 귤도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그런데 세상에나! 고급 과일 샤인 머스캣이 가격이 뚝, 내 생각보다 반값으로 떨어진 겁니다.


오~싸다!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데!


비싼 과일이라 잘 못 사 먹었는데 잘됐다 싶어, 부랴부랴 장을 봐서 집에 와서 아이들과 뽀득뽀득 잘 세척해서 맛나게 먹었어요. 집 앞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과일을 사는데 여기가 과일이랑 고기종류 장을 보기가 편하기도 하고 제품도 싱싱해서 좋더라고요. 탱글탱글, 쫀득 여전히 맛났습니다. 왜 이렇게 가격이 떨어졌는지는 뭐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그런데, 세상에!!


길거리를 지나가다 우연히 과일가게를 봤는데 샤인머스캣이 아주 그냥, 박스당 그득그득 넘치게 담겨있는데 가격이 전부 반토막 난 게 아니겠어요?


후다닥 또 사다가 날랐습니다. 양손 무겁게 한 박스도 아닌 두 박스를 사서 먹는데


씻으면서 먹어보니 단 맛도 그저 그랬고 중요한 건 포도송이가 달려있었던 가지 색깔이 갈변해서 거무죽죽 말라 있더라고요.  말라서 까맣게 탄 나무 꼬챙이 같았어요. 샤인머스캣 알맹이들은 알알히 잘 붙어있었지만 요게 요게, 또 하나씩 떼어먹는 게 제 맛이거든요.


그래서 세척할 때도 물에 좀 담가놓고 식초 물로 떨어뜨리고 흐르는 물에 세척한 후에 한 알 한 알 떼먹는 게 매력이었는데 막상 탄력 있게 따놓고 보면 시들시들 힘이 없어서 금방이라도 철퍼덕 슬라임이 될 것 같은 애들도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어 따로 치워놓은 걸 신랑이 먹고 결국 탈이 나기도 했습니다.


신랑 회사의 이사님께서 아버님이 몇 년 전부터 샤인 머스캣 농장을 운영하셔서 매년마다 챙겨주셨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주문해서 사 먹어봤습니다. 와! 하나에 1Kg 정도 하는 압도적인 무게, 역시나 이제는 나뭇가지 색깔부터 감별하듯 커다란 포도알을 헤쳐서 안을 봐도 영롱한 초록빛이더라고요! 그날 아침에 농장에서 수확하자마자 바로 포장해서 보내준 거라고 하는데, 역시! 꿀맛이었습니다. 샤르륵 녹는 맛, 알 하나는 미니 아오리, 상큼한 포도를 같이 먹는 맛이 다시 나더라고요. 과일 중에서도 샤인머스캣을 좋아하는 두 아이는 금세 한 송이씩도 뚝딱뚝딱 잘 먹었습니다.




싱싱하고 맛있는 샤인머스캣 (우리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샤인머스캣과 사과예요) *농장 직배송!





신랑이 출근길에 샤인머스캣 가격이 어제보다 더 떨어졌다며 또 사진을 찍어 보내줬어요. 그제야, 집에 한가득 두 박스나 산 농장 샤인 머스캣이 있는데 궁금해지더라고요. 왜 이렇게 가격이 다운된 거지? 


제철이 아니니까 떨어졌나 보지,라고 넘기는 신랑 말에 그게 아닐 것 같은데... 강한 의구심이 들어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샤인머스캣 하나가 잘 팔리는 과일이 되니까 여러 농가에서 많이들 수확하고 길러서 수요보다 넘쳐나는 공급, 처음 나왔을 때 파격적인 당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 씨앗이 없기에 유전자 호르몬을 써서 성조숙증을 일으킨다는 기사(이 부분도 찾아보니 잘못된 지식, 전혀 인체엔 무해한 양이더라고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우리의 제왕 자리에 있던 과일이 순식간에 가격이 떨어지고 떨어진 거였어요.




*농사지은 분들이 가슴 아플까 봐 길거리 곳곳 떨어진 가격 사진은 일부러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진이 없어도 이미 엄청 싼 가격으로 붙어있는 샤인 머스캣 박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샤인머스캣은 아니고 글 쓰는 이야기예요. 흔하고 흔해진 샤인머스캣, 거기에 가격까지 뚝 떨어진 샤인머스캣을 보노라니, 갑자기 제가 쓴 글들이 생각났습니다.

나만의 고유한 점, 내 개성과 온갖 나로 된 걸 잘 갈아서 한 편 한 편 썼던 내 글들이 세상에 너무 많이 나와있는 수많은 글들 중 하나같은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독특한 향과 색과 맛을 가진 과일의 제왕 샤인머스캣인 줄 알았는데 사실 이런 글들의 공급은 날마다 넘쳐난다는 거죠. 이 글로 내가 뭔가를 이루고 수익창출을, 영화로움, 명예를 꿈꾼 것도 아니기에 그저 좋아서 썼는데도 이런 글이 그냥저냥 섞여서 떨이가 된다고 느꼈을 때 그 좌절감은 얼마나 클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조금 울적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세상의 엄격하고 금방 토라지고 달라지는 그때 그때 기준과 달리 여전히 묵묵히 그 자리에서 농사를 짓고 품질 좋은 샤인 머스캣은 분명 존재해요.(제가 농장이나 과일을 광고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일 맛있게 먹고 있는 위이사님 댁 샤인 머스캣을 사진으로 쓴 이유도 바로 이거예요!)


엄마, 포도 주세요!
매운 거랑 같이 먹어도 맛있어요! 
목마를 때 먹어도 좋아요!


금방 물처럼 곪아버린 과일은 싸게 사서 득템 한 것 같지만 먹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맛에 있어서는 언제나 정확한 아이들은 맛있는 샤인머스캣 맛은 기막히게 잘 알더라고요. 샤인머스캣을 반 잘라서 큐브 치즈랑 먹으면 또 색다른 맛이 나고 출출할 때 다섯 알 정도만 먹어도 금방 기운이 착착 돕니다.



몹글 (*몹쓸 글쓰기 8기-를 마칩니다. 우리의 글쓰기가 가격이 공급이 넘쳐나는 샤인머스캣처럼 가격을 하락된 것처럼 가치를 찾을 수 없고 뭔가 싶은 순간도 있을 거예요. 저도 매일 글을 쓰면서 늘 편하고 쉽게 쓴다고 하지만 사실은 또 이렇게 길게 다 털어놓고 쏟아내는 글만이 언제나 최선일까.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고 하는데 이런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경험이 과연 울림이 있는 걸까, 늘 질문하곤 했어요. 






김밥에 관한 글을 썼는데 조회수가 처음으로 15000명이 넘었더라고요. 여느 날처럼 평범하게 다음날 소풍 때 싸줄 아이 도시락을 생각하다가 그걸 소재로 글을 쓰고 그러다 보니 김밥의 달인 엄마가 생각났고 내 글의 방식은 언제나처럼 노마드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우리 엄마와 나의 유년으로 바턴이 터치된 거죠.





김천'김밥축제'가 성공이라도 한 걸까요?! ㅎㅎㅎ





Note. 김밥글 조회수 폭등보다 놀라운 건 사실 우리 아빠의 댓글이었어요. 알레작가님 아버님께서 남긴 댓글을 보고 물어봤더니 작가님의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빼놓지 않고 모든 글을 다 읽어보고 댓글도 종종 달아주신다는 이야기에 저도 부러운 마음에 울 아빠에게 말했더니 바로 가입도 해주시고 댓글을! 쨔란~!!!
(사실, 조회수보다 아버지의 댓글을 더 자랑하고 싶어요!)
*'박하라'는 박희락 할아버지~ 손녀 손주들이 부르는 줄임말인데 어린 시절에 하라부지, 하고 불렀던 말이 좋으셨나 봐요. ㅎㅎㅎ 핑크퐁 박하라님의 라이킷을 보니까 감동의 눈물이 퐁! ㅎㅎㅎ
아부지께선 첫 댓글부터 푸쉬킨 시를!! 정작 엄마는 아직 읽지도 않으시고 >_< ㅋㅋㅋ
김밥 얘기는 사실 엄마 이야긴데;;; 제가 브런치에 처음 쓴 글도 엄마에게 용기를 내어 보여줬는데 읽어보시곤 "나경아, 이게 소설이야, 일기야, 나는 뭔 말인지 통...;;; "이라고 너무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김밥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소울 푸드였구나. 한국인의 밥심은 김밥힘이었구나 할 만큼, 저마다의 추억이 가득했어요. 맞벌이 중에도 늘 자식의 김밥만은 챙겨준 엄마 이야기, 우리 엄마처럼 계란국은 아니지만 체하지 말라고 어묵국을 함께 끓여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어머니, 소풍 때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아이 김밥을 열심히 돌돌돌 말아준 우리네 엄마들 이야기가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르더라고요. 참, 우리 아빤 아부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읽고 거기에도 답을 하셨는데 (본인 이야기를 찾아서 답글도 남기심!) 

제 친구 소팔이가 어무니가T고 아버님이 F네! 솔트는 앤나우가 아빠 닮았네 해서 한참을 기분좋게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제가 얼굴이 좀 아빠 닮긴 했죠. ㅋㅋㅋ





브런치에 글을 쓰려면 김밥을 말고, 라면을 끓이라는 말이 있어요.





전 몰랐는데, 몹글의 리더님이신 알레작가님의 말에,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조회수가 터진 대부분 이야기가 신랑 코로나 시절 밥을 해준 이야기, 설거지 한 이야기, 묘하게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였거든요. 하지만 대단한 레시피나 특별한 뭔가가 첨가된 것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공감해주기도 했어요.


물론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저는 전에도 말했지만 많이 읽은 조회수도 좋지만(아앗, 사실 조회수 20, 30만 분들이 본다면 제 글의 조회수가 귀여울 수도 있지만 제게 1만 5천이 넘는 기록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예요!!) 저는 언제나 '라이킷'이 더 중요했어요.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줄 단 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을 위해 달려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글을 쓸 때가 많아요.



예전에 오로시님이 제 글을 읽고, 피노키오란 영화에 대한 감상이었는데 '이런 글은 처음 읽어봤어요!' 글 쓰는 방식도 내용도 신기하다는 평을 해주면서 이야기를 해줬는데, 착한 이너조이님은 가독성도 좋고 잘 쓴 글인데 형식을 좀 달리하면~ 하고 이야기했지만, 전 오로시님 말에 기분이 나쁘긴커녕, 오히려 그 말이 정말로 좋았어요. ㅎㅎㅎ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이상해 보여도, 늘 정신없이 흘러가 보여도, 저는 제 글이 좋거든요. 저한테는. 그래서 누군가에겐 처음 낯설게 느껴져도 그거 역시 당연한 반응이고 신선하게 톡 씹히는, 껍질이 있을랑말랑한 샤인머스캣을 만난 느낌처럼 먹다 보면 읽는 즐거움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칭찬으로 가뿐하게 받았어요. 차분하게 따뜻하게 이야기해주셨기에 물론 기분이 상할일도 전혀 없었지만요. (아앗, 너무 정신 승리인가요. ㅎㅎㅎ) 



맛이 없어지고 흔해진 과일이라고 해도 샤인머스캣을 먹는 사람들은,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가격이 올라가도 먹습니다.



흔해진 것 중 싼 걸 먹는 게 아니라, 그것도 비싸더라도 맛있는 걸 찾아 먹기도 해요.


가격이 떨어져서 사는 게 아니라 더 맛있는 과일을 사려는 우리 가족들처럼 말이죠. 


그리고 더 중요한건, 나뭇가지처럼 꼬챙이처럼 말라버린 가지, 맛없어진 흐물해진 샤인머스캣이라도 다르게 요리해 먹을 수도 있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아요! 샤인머스캣이 샤인머스캣인건 변함이 없잖아요.  진심을 담은 글 한 편은 인기가 없고 외면 당해도 또 그걸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작가 자신)한 명만 있어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먹고 설거지하고 평범하게 사는 하루의 이야기가 널리고 널렸지만 이건 또 나만이 할 수 있는 내 이야기가 있잖아요. 내 유년과 나를 길러준 우리 부모님과, 내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신랑과 우당탕당 우리 두 아이들, 브런치로 만나서 제 글을 읽고 댓글도 달아주시는 분들, 매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고마운 분들,

또 몹글로 만난 분들의 넘치는 따뜻한 응원과 댓글까지! 이건  세상과 바꿀 수 없는 보물 같은 이야기고 내 경험, 온전한 나만의 샤인머스캣입니다. 철이 지나도 찾게 되는 맛이랄까요. 


모두 자기만의 샤인머스캣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마음으로 이런 글을 남겨봅니다.



*철학적인 생각을 품게 해 주고 한 글자, 한 글자 단어 하나도 오랫동안 고르고 생각하고 쓰는 느낌을 알게 해 주신 호연 작가님, 글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눈물이 참 많이 났는데 그게 오랫동안 생각나고 그래서 더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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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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