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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Oct 24. 2024

엄마표 손김밥

울 엄마는 김밥달인


소풍의 계절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주섬주섬 패딩을 꺼내야 할 날씨지만, 코로나도 지나가고 작년부터 아이들도 가을소풍을 가기 시작했다. 이맘때가 되면 솜씨가 없어서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새로 밥도 안치고(물론 전기밥솥이 다 해주지만) 문어 비엔나도 만들고 메추리알을 카레물에 노랗게 물들이기도 하면서 큰아이 도시락을 싸준 기억이 난다. 카레물을 들여 노랗게 된 병아리를 손에 쥐고 당근 조각으로 손을 달달 떨면서 부리랑 벼슬도 만들어주고 까만 깨로 눈알도 붙여줬다. 과일도 조금 더 예쁜 모양이 나게 요리조리 잘라본 경험도 떠오른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4살에는 친정 엄마가 김밥 도시락을 만들어줘서 걱정이 없었는데 유치원을 다니는 5살 때 처음으로 소풍 도시락을 쌌다. 아침잠도 많은데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부엌이 엉망진창이 된 것도 모른 채 낑낑거리며 작은 도시락 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내가 기대하고 구상한 캐릭터 도시락이 완벽하게 나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첫 '도시락' 첫 '김밥'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뿌듯하고 좋았는지 모른다.


고맙게도 이번에 큰 아이 가을 소풍은 치즈를 만드는 곳으로 가서 직접 만든 모차렐라 치즈로 피자도 만들어 먹고 스파게티까지 함께 점심으로 먹는 코스가 나온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오예~!!! 휴우, 김밥을 안 싸도 되는구나.


지금도 김밥을 제대로 못 말기에, 자신이 없다.

김밥. 이것저것 재료 준비를 하는데 손이 느려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부터 뭔가 지치게 하는 요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이 '김밥'이다. 엄마가 김밥을 자주 말아줘서 다양한 종류로 먹기도 했고 요즘은 파는 김밥들도 얼마나 잘 나오는지, 척척, 금방이면 말아서 나오는 김밥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집에서 싸 먹는 손김밥과는 비교가 안되는데 몇 번 시도를 해봐도 내가 싼 김밥은 어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군데로 쏠려있거나 옆구리가 삐져나오는 뱃살처럼 거슬리게 살짝 튀어나왔다거나, 김이 마치 윤기하나 없는 타이어 바퀴처럼 보였다. 참기름 소생술로 살려도 도무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내 김밥.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버린 김밥 (파는 김밥)




내일은 작은 아이의 소풍이라 김밥을 싸줘야 하는데, 또 다행인 건 둘째는 김밥을 먹지 않고 주먹밥을 싸달라고 요구했단 점이다. 김밥을 먹을 때도 안에 들어있는 재료들을 다 빼서 먹는 아이라 동글동글 주먹밥은 훨씬 만들기 수월하고 실패할 확률도 낮다. 그래도 소풍엔 김밥이 빠질 순 없지. 일단 미니 김밥을 만들 재료와 문어비엔나를 만들 비엔나, 아이가 잘 먹는 과일(요즘 엄청 가격이 다운돼서 거봉보다 싸다는) 샤인 머스캣도 사 왔다. 치킨 너겟과 미니 핫도그도 넣어주고 싶었는데 둘 다 냉동식품이라 패스했다. 떡꼬치 하나 정도는 넣어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살짝 귀찮아져서 집에 있는 재료와 장 본 재료들을 열심히 도시락을 만들어줄 생각이다.


부족한 솜씨지만 열심히 만든 엄마손 도시락 (내일은 또 어쩌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 가 아니라 우리 엄마 하면 나는 짜장면이 아니라

 "김밥"이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워낙 손도 크고 뚝딱 빠르게 요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소풍 가는 날이면 우리 단지 외에도 옆 단지, 그 옆옆 단지 도시락통까지 전부 우리 집으로 쌓여있었다. 소풍날 아침 김밥 싸는 건 엄마의 몫, 엄마는 당연한 듯 마치 김밥 장사 하는 사람처럼 재료를 사서 미리 준비했다. 시금치를 다듬고 게맛살을 자르고 달걀은 한판도 넘게 들어갔다. 요리를 잘하는 걸로 소문이 나서인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건지 그건 모르지만 매번 소풍 때마다 늘 엄마가 김밥 담당이었다. 나는 그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아침, 새벽부터 고생하는 엄마가 잠도 못 자고 다른 집 아이들 김밥까지 정성스럽게 싸줘야 한다는 게 왠지 질투가 나기도 했고 엄마가 좀 답답해 보였다. 아빠에게는 늘 김밥 재료비며 수고비까지 받았다고 했지만 사실 엄마가 그런 돈을 받고 싸주는 성격이 절대 아니란 걸 나는 잘 안다.


그래도 좋았던 건 새벽부터 압력밥솥에서 치익치익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도마 소리가 들리면 얼른 뛰어가서 엄마 옆에서 이것저것 잔 신부름을 하며 김밥 꼬다리라도 하나 내 입으로 쏙쏙 넣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엄마는 제일 처음 말은 김밥은 무조건 칼로 썰어서 꼭 맛을 봤는데 그렇게 썬 김밥도 가장 예쁜 접시에 담아서 나에게 내밀어서 먹어보라고 했다. 그냥 도마에 있는 채로 막 집어먹어도 됐을 것을 이왕이면 다홍치마, 접시에 담아서 플레이팅까지 예쁘게 완성된 '요리'로 내밀었다.



꼬다리 먹지 말고, 예쁜 거 먹어.




쪼그리고 앉은 채 꽁지만 먹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꼭 한 줄씩 썰어주고 체할까 봐 계란국이나 소고기 뭇국 같은 걸 끓여서 함께 내주셨다.





나경아, 김밥은 단단해서 자주 체하는
음식이야.
꼭 꼭꼭 씹어먹고 이렇게 국물이랑
같이 먹어야 돼.
국물이 없을 땐 따뜻한 보리차라도
같이 먹는 거야.



김밥을 100줄도 넘게 말아야 하는 그 아침에, 언제나 언니랑 내가 체할까 봐 계란국을 끓여 놓았던 우리 엄마, 싸늘한 새벽 공기에 바닥은 차가운데 김밥을 열심히 둘둘 마는 엄마 옆 자리만큼은 언제나 온기가 넘쳤다.


잠옷도 벗지 않은 채, 눈곱도 떼지 않은 채 그렇게 엄마가 가장 먼저 완성한 김밥을 맛보는 건 언제나 나만의 특권이었다. 그때가 얼마나 행복하고 맛있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엄마 옆에서 김밥 마는 그 자리의 온기를 못 잊어 지금도 김밥을 이토록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각각 아이들 도시락통에 가지런하게 김밥을 넣어주고 그 집에도 몇 줄씩 맛보라고 엄마는 기다란 김밥도 은박지에 담아줬다. 심부름은 언제나 언니와 내 몫이었고 아침에 과자나 음료수를 들고 도시락통을 찾으러 오는 엄마들도 있었다. 우리 엄마 솜씨에 괜히 내 어깨가 펴지고 뿌듯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00 엄마보다 우리 엄마가 요리를 더 잘해~ 00이 엄마는 요리를 못해서 우리 엄마가 맨날 김밥을 싸주는 거구나,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당시에 동네에서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옥상으로도 단지가 연결돼서 쉽게 왔다 갔다 이동할 수 있어서 단지 안에서 함께 어울리며 노는 아이들이 아주 많았던 것 같다.


엄마는 음식 하나를 하더라도 언제나 나눠먹고 귀찮아 보이는 요리도 쓱쓱 순식간에 완성해서 사람들을 초대했다. 엄마가 해준 골뱅이 소면이나 김치볶음밥은 여럿이 먹었을 때 더 맛있고 빛나는 요리였다. 늘 정성이 가득했다. 한 줄이라도 놓치지 않고 아낌없이 참기름을 듬뿍 발랐고 깨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옆에서 나에게 깨를 톡톡 뿌리거나 밥을 다시 양념할 때 소금과 참기름 넣는 걸 거들게 하셨는데 그 별것도 아닌 일이 나는 요리하는 과정 같아서 재밌고 막 신나기도 했다. 엄마 김밥은 정성이 대단했다. 나는 그래서 분식점이나 식당에서 김밥 가격이 천 원에 팔렸을 때도 너무 싸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정성스러운 음식을 이렇게 싸게 팔아도 되나, 먹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김밥을 자주 말아서 먹은 경험이 있었기에, 아침마다 재료 준비를 했던 엄마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일산으로 이사 와서 엄마가 함께 일주일쯤 같이 우리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도 봐주고 밥도 해주면서 청소나 손 볼 곳도 봐주고 함께 장도 보러 다녔다. 나에게 뭐 먹고 싶냐고 했을 때,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나는 주저 없이 "김밥"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엄마가 열심히 김밥을 만드는 영상을 찍어서 기억한다고 하면서 엄마 얼굴을 찍었다. 엄마 목소리를 담았다. 내 핸드폰에 엄마의 동영상이 하나도 없다는 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그냥 엄마를 짧게나마 여기에 저장해두고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밥에서 제일 중요한 건 말이야,

당근이야! 당근은 무조건 소금 간을 잘해서 맛있게 잘 볶아야 해. 다른 재료는 빠뜨리더라도 이 당근은 빠지면 안 된다.

두 번째는 새로 지은 밥이야. 김밥을 할 때는 귀찮아도 무조건 밥 솥에 있는 밥은 덜어서 볶음밥을 해 먹든지 하고 새 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밥에 다시마 하나라도 꽂아서 지으면 더 맛있고.

새로 갓 지은 밥하고 당근이 있으면 다른 재료는 중요하지 않아, 이제 넣고 싶은 대로 넣어서 말면 돼.

엄마의 비법은 김을 반장 더 잘라서 덧대는 거야. 그럼 눅눅해지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고 맛있어. 김도 비싼 걸 사야 된다.

마는 건 뭐, 쉬워, 일도 아니야. 그냥 말아. 김말이도 필요 없어.




우리엄마 손/ 엄마 비법대로 내가 싼 김밥/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




명료하고 간결한 엄마의 노하우, 단무지보다 강조한 당근과 새롭게 지은 밥, 비싼 김! 이 세 개를 머릿속에 잘 저장했다. 영국에 사는 우리 언니도 엄마처럼 김밥을 잘 말았다. 영국에서도 내가 김밥을 먹고 싶어 하자 재료가 마침 다 있다면서 한 줄 뚝딱 김밥을 말아준 우리 언니, 모전여전인 건가, 그럼 나는? 내 김밥은 언제쯤 완성되는 거지.


엄마는 결혼한 뒤에도 혼자 남동생 세명을 전부 다 데리고 서울로 데리고 와서 데리고 살고 취업도 도와주고 장가까지 보내줬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통리에 사셔서 시골보단 서울이 낫다는 생각에 외삼촌을 전부 다 서울로 로 올려 보낸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삼촌들을 전부 다 데리고 산 우리 아빠도 대단하고 그런 와중에 딸 둘까지 키우고 우리 공간을 만들어주고 삼촌들 장가까지 전부 보낸 엄마가 새삼 대단하고 여장군 같다.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는 우리 엄마, 늘 부업을 하거나 가게라도 나가서 돈을 벌고 모으고 그걸 모아서 우리들을 위해 전부 썼다. 그게 엄마의 낙이고 기쁨이라고 하면서. 가난하고 딱하고 안쓰러운 내 친구에겐 나에게 말도 안 하고 내 신발을 줘서(아, 나이키 신발 새 거였는데 ㅜㅜ) 엄마에게 난리치고 싸운 적도 있지만 사실 돌아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이유는 엄마, 우리 엄마 때문인 것 같다. 뭔가를 기대하지 않아도 늘 조건 없이 삼촌들이며, 딸, 남편을 챙기기에도 바빴을 텐데 이웃사람들 주변까지 오지랖 넓게 다 챙기고 퍼주는 엄마의 습성이 나에게도 알게 모르게 있고 그런 잔정들이 나에겐 자연스럽게 각인된 것 같다. 뭔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기쁨, 김밥은 못 말지만 내가 할 수 있고 챙겨줄 수 있는 작은 걸 베푸는 마음, 나는 그런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사랑을 받는다. 내가 베푼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삼촌들과 복작복작 살 때도 우리 언니랑 늘 싸우고 내가 감춘 시험지를 삼촌이 찾아 엄마에게 이를 때도 진짜 싫었지만 그런 삼촌들이 있기에 또 든든했다. 용돈을 풍족하게 주거나 미미인형을 사주진 않았지만 늘 어쩌다 삼촌이 술에 취한 날이면, 제과점에서 비싼 빵을 한가득 사 오거나 직장에서 나온 사은품을 가득가득 챙겨다 줬다. 알게 모르게, 가족들 안에서 이웃들에게 사랑을 받아오고 자라왔구나, 끄덕이게 되는 요즘이다.


어렸을 적엔 엄마가 늘 말로 사랑한다, 고마워, 미안해,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나는 그게 참 싫었는데 이미 엄마의 김밥하나만 봐도 사랑을 차고 넘치게 받아왔던 것 같다. 뜨겁지 않게 늘 알맞게 끓여놓은 계란국, 김밥 꽁지 부분도 맛있지만 따로 접시에 담아서 예쁜 걸 먹으라는 엄마의 마음이 사실은 전부 사랑이었으니까.


우리 신랑은 김밥을 안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나랑 결혼하고 엄마가 하도 많이 싸주는 바람에 김밥을 태어나서 가장 많이 먹게 됐다고 했다. 이번에 열리는 김밥 축제도 같이 가자고 하고, 엄마가 언제나 매 주말마다 지금도 반찬을 해주시는데 거기에 해주는 반찬 대부분이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이란 사실은 언제나 뚜껑을 열 때마다 뭉클하다.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


세상이 우릴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할 거야

끝까지 붙어 있을래



더 자두의 『김밥』 중에서 2003.05.15


*엄마 곁에 더더 붙어있고 싶은 마음을 담아, 자두의 《김밥》을 듣는데 갑자기 뭉클한 마음이 든다.












내가 싸준 것보다 할머니표 김밥을 더 많이 먹은 우리 아이들 *아이들 김밥은 꼭 더 작게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만 넣어서 싸주신다/ 단무지 대신 들어간 묵은지 (진짜 맛있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차려준 귀한 밥상과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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