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하브루타 수업
메마른 사막에 한 부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은 하나 같이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와 다름없는 벌거숭이 모습으로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막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들을 보고 소리쳤다.
"내일 예언자 모세님이 이곳을 지나가신다오. 당신들이 그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하면, 당신들의 생활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오."
이튿날 예언자 모세가 찾아왔다. 그들 세 사람은 그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간청했다.
"너희들은 나쁜 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운명은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애원하자, 모세는 그들의 가난함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샘이 한 군데 있다. 마침 일찍 해뜨기 전에 그곳에 가서 목욕하는 거다. 단, 너희 세 사람은 한 사람씩 다른 날에 목욕을 해야 한다. 목욕을 하는 동안 너희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모세는 자기 갈 길을 갔다. 이튿날 아침 그들 세 사람은 샘으로 갔다. 누가 먼저 목욕을 하는가를 두고 서로 다툰 끝에 어머니가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녀는 목욕을 하면서 아름다워지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그녀가 샘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 명의 고관이 마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갔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남편을 무시하고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여자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튿날, 아버지와 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샘으로 갔다.
아버지가 목욕을 할 차례였다. 그는 아내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아내가 긴 꼬리를 가진 원숭이로 벼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날 아침 눈을 뜬 고관은 자신의 옆에 긴 꼬리원숭이가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기겁을 하고 놀라 원숭이를 밖으로 내쫓았다.
여자는 달리고 달려서 사막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세 식구는 모래 언덕 위에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사흘째 날 아침 아들은 혼자 샘에 갔다. 그는 목욕을 하면서 어머니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결국 세 사람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큰 아이 초등학교에서 부모 참여 수업으로 진행한 남숙경 원장님의 하브루타 독서토론 수업을 들었다.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 독서토론 실습을 직접 옆자리 앉은 짝꿍과, 앞에 네 사람과, 총 여섯 명과 함께 모둠으로 진행해 봤다. 마지막엔 교실 안에 수업을 들은 약 서른 명으로 확장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하브루타는 정통 유대교 교리를 따르는 유대인의 전통적 학습방법이다. 문자적 의미는 함께, 우정, 동료 등을 뜻한다. 유대교 경전인 《탈무드》를 공부할 때 주로 사용된다. 짝을 이뤄 서로 질문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부한 것에 대해 논쟁하는 토론 교육 방법이다. 나이, 성별, 계급에 차이를 두지 않고 짝을 이루고 부모와 교사는 마음껏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유도해 준다.
질문을 떠올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넓혀주는 하브루타, 하지만 짧은 지문을 읽기조차 싫어한다면 천천히 읽고 지문을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 수반돼야 할 것 같다. 남숙경 원장님께선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코치하는 분이셔서 그런지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셨다. 먼저 작은 질문을 써보고 (문장마다 '왜'를 떠올리고 붙여보는 연습) 나에게 특히 와닿고 인상적인 부분에 대한 확장, 심층 질문을 쓰는 데까지도 집중력이 필요했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기에도 '하브루타'가 유행처럼 번져서 그때 다닌 유치원 이사님이 열을 올린 하브루타 수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번에 학교에서 진행한 수업이 더 인상적이고 좋았다. 5,6년 전이니 그때보다 내가 아주 조금은 더 성장한 걸까, 강사 선생님의 솔직하고 열정적인 기운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또 직접 현장에서 토론하고 실습하는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었기에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 됐다.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도 이렇게 수업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상상도 해봤다.
원숭이가 된 여자, 제목부터 인상적인 이 짧은 이야기에서도 무수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다양했는데 하브루타의 장점은 많겠지만 다양한 의견을 들어 볼 수 있고 하나의 사건을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기를 수 있는 점인 것 같다.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해 줄 수 있는 태도도 배울 수 있는 토론이라니, 이마저도 훌륭하다. 대학교 때 합평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일단은 합평을 할 만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질 않았고 존중보다는 '공격적'인 말투에 과제를 가지고 말하는데도 내가 화살을 맞고 비난받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글썽글썽한 경험이 있다. 마음도 여리고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해서 사실 부족해도 칭찬을 더 받고 싶었는데 "합평"자체가 이제 좀 대놓고 비난해 봐라로 시작하는 장 같아서 나도 누군가의 작품을 볼 때 꼬투리 잡을 궁리를 먼저 했다. 부끄러웠다. 저마다의 처한 상황이 다르고 생각과 느낌도 제각각이라 '토론'을 할 때는 우선 귀를 열어 들어주고 존중해 주는 마음이 꼭 필요한 것 같다. 미숙한 20대 초반엔 그걸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학부모가 된 사람들과 하브루타를 배우고 의견을 나누니 풍성한 합평을 나눈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드디어!
적용
메마른 사막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소원을 각자 따로 빌게 했을까?
왜 소원을 이루고 싶어 했을까?
왜 바로 부자가 되는 걸 빌지 않았을까?
-벌거숭이나 다름없는 가난 속에 허덕이면서도 어머니는 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왜 바로 부자가 되는 걸 빌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왜 자기 소원이 아닌, '아내'에 대한 소원을 빌었을까?
아들은 왜 마지막 소원을 '어머니'한테 썼을까?
메타
메마른 사막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들은 왜 헐벗고 가난하게 살았을까?
노인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들을 보고 소리치고 도와줬을까?
모세의 나쁜 운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모세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가족들의 운명은 진짜 바뀐 게 없는 걸까?
날마다 근처에 있는 샘이었는데 그들은 왜 그동안 샘 곁에 가지 않았던 걸까?
목욕하러 가기까지 어떤 결단과 결심이 필요했을까? 행동하는 실천력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 중 무엇이 더 소중할까?
인상적이었던 토론을 몇 개 정리해 보자면
엄마의 소원은 왜 아름다움이었을까요?
엄마가 뜬금없는 소원을 빈 것 같지만 사실 일과 육아의 균형 속에서
'나'를 점점 더 잃어간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요.
육아는 끝이 아니고 계속되는 삶인데
한 번쯤 나만이 추구하는 진짜 '아름다움'을 찾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 감정이 이입돼서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어요.
결국 다시 원숭이가 되긴 했지만요.
엄마의 이기심에 모든 게 다 어그러졌다고 생각한 내 뒤통수를 치는 의견이었다. 원숭이가 된 여자를 희화화해서 어리석게도 바라볼 수 있지만 이런 시각으로 또 다르게 살펴볼 수도 있구나, 모두 엄마들이기에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제야 분노가 부글부글 배신감에 허덕여서 자기가 스스로 '부자 고관'이 되길 바라는 소원이 아닌(이런 소원을 빌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내를 '원숭이'로 만들어버린 남편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문맥을 살펴보니 아내가 먼저 배신한게 아니라 고관이 남편을 무시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고 나왔다. 반전은 납치당한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자신의 변한 미모와 호화로운 생활에 그저 기뻐했다는 사실이고;;; ㅎㅎㅎ
이 가족은 처음부터 화합하질 못했어요.
각자 다른 날 소원 세 개를 빌 수 있다는 건 저마다 의견을 나누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서로 먼저 목욕하려고 '다툰'끝에 라는 말이 나와요.
각자가 더 좋은 방향으로 부자도 되고 좋은 집도 얻고
행복을 찾을 수 있었는데 싸우기만 하니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 것 같아요.
벌거숭이 모습 자체가 '무지' 그 자체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한 사람씩 다른 날, 의견을 조율하고 나눌 시간은 충분했다. 소원이 한 개에서 세 개가 된 거나 다름없었는데도, 이 벌거숭이 가족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던 것 같다. 아들 역시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했기에, 자기에게 필요한 게 오로지 이 가족뿐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려났다. 이 가족은 과연 원상태, 원점이 됐다고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이미 신뢰가 산산조각 나고 서로를 탓하며 더 헐뜯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과오와 어리석음을 돌아보고 반성했을까? 아들은 모르겠지만 부부사이가 이전보다 헐뜯고 소원해졌을 것 같다. "소통"이 왜 중요한지,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말하는 것이 왜 필요한 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운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 같아요.
우리는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요?
노인을 통해 모세를 만났고 이어진 만남으로 달라지고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그 기회를 사용하는 건 결국 다시 우리 몫이지만
살면서 이런 중요한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올 때가 참 많아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이였지만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노인은 새로운 기회를 알려줬고 이 가족들도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또 예언자 모세 앞에 나가서 간청하기까지 했다. 살면서 가깝게 있는 주변 사람에게 작은 일에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운'이 시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선생님의 메타인지 질문들은 놀라웠다. 이 글을 처음 봤을 때 자신의 어려웠던 상황이나 마음 상태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도 와닿았고 '메마른 사막' 한 단어에서도 깊은 생각을 끌어내 볼 수 있는 글이었구나, 감탄했다. 탈무드를 어린 시절에 읽었는데 아이랑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과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 인물들의 실행력과 다툼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하고 그게 결국 나에겐 어떤 삶을 살게 하는지에 대한 철학으로 연결되는 확장 부분이, 나에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구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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