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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을 Apr 07. 2018

왜 작심삼일을 되풀이할까?

믿지 못할 그 나약한 믿음

[한끼합쇼 글밥...제 1호]


수적천석(水滴穿石)

   -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엔 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노력이라도 끊임없이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네이버 인용)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과학적 혹은 이성적으로 그 힘없이 떨어지는 약하디 약한 물방울이 강하디 강한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미없는 헛수고일뿐이다.


그렇다! 한방울의 물방울은 우리네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의 의지와 다짐이란게 얼마나 허약하고 부질없던가? 따지고보면 '작심삼일'은 동서고금의 사람살이 명언이고 정언일지도 모르겠다.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종교 여부를 떠나 인간 잠재력 측면에서 매우 유용하고 건강한 신념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존재가 그깟 작심삼일에 걸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급기야 좌절하고 심지어 좌절한지도 모른체 덤덤한 인생을 비관조차 못하고 살아간다.


인간의 의지를 조롱하는 작심삼일!

어쩌면 이 것은 장난끼섞인 '신의 한 수'는 아닐런지?

모든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면 신의 희소가치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인간의 마음 중심에 작심삼일 허들을 설치한 것이다. 누구나 도전하되 누구나 쉽게 실패하게 만든 것이다. 신이 신이 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과학에  근거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도 그의  성공담은 절대 믿지 않는다. 대개의 아니 모든 성공담은 '강인한 의지와 목표의식, 뜨거운 열정과 끈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요소들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다. 즉 인간의 정신력에 관한 부분은 과학이 아닌 이유로 심지어 터부시되기도 한다. 그러한 연유로 성공한 사람은 특별한 인간으로 간주하여 거리를 둔다. 그는 태생부터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특별함을 부여받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여기게 되고  그렇게 나의 성공은 스스로 점점 요원해져 가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작심삼일은 인간의 과학적 사고를 공고하게 지지하고 증명하는 일종의 자기 정당화내지는 합리화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수적 즉 하나의 물방울은 방법이나 과학이 아닌 인간의 신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강인한 의지와 목표의식, 뜨거운 열정과 끈기'를 품은 행동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행동 실천을 가로 막는 첫번째 허들이 바로 작심삼일 과학이다. 결론적으로  문제는 과학과 비과학의 괴리로 인해 생기는 충돌이 바로 우리가 쳇바퀴돌듯 헤어나오지 못하는 작심삼일 현상이다. 이 뻔한 이야기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우리의 어떤 행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과학적 사고범위를 신념이라는 비과학적 정신 영역까지 획기적으로 확장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목표 그것이 아무리 구체적으로 수치화되더라도 상징적인 수준에만 그치는 수준에 머물고  반드시 달성되거나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과학적 사고 범위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념이라는 정신영역까지 과학적 사고 범위를 넓힐것인가?


그렇지만 이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작심삼일의 허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불안과 두려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이제 다시 작심삼일에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다.

사진 출처  [지구별 김가장님의 Today Letter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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