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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띵워킹 Jan 30. 2024

회사는 고쳐 쓰는 게 아닐까

힘들겠지만 고쳐보고 싶다면 뭘 해봐야 할까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이 말을 꽤 자주 듣는다.

연애 상담, 인간관계에서 오는 애로가 대화의 주제에 오를 때 꼭 한 번은 언급되는 일종의 통념.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정말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모르겠다.

세계관 대충돌이라는 제목의 재밌는 짤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라는 주제로 100분 토론에 출연한 오은영 박사님과 이수정 교수님의 가치관 대충돌이었다. 사람을 고쳐쓸 수 있다는 자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자의 막강한 대립.


두 분의 말씀 모두 지당하게 맞아서 둘 다에 동의하게 된다.

금쪽이 가족에 내리는 오은영 박사님의 처방과 그를 통해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감탄하게 되다가도

이수정 교수님의 '그것이 알고싶다' 인터뷰를 보면 인류애 상실로 이내 좌절하게 되는 무한 굴레에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논의에 대해 폴앤마크 최재웅 대표님께서 세바시 강의 중 재밌게 언급하신 게 있다. (보러가기)

차례차례 질문을 던지며 관중들의 반응을 유도하시는데, 그 질문에 따라 답하다 보면 나의 인간관을 알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바뀝니까?
나는 바뀝니까?
변한다는 게 '배우는 것, 나아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변합니까?
그럼 정리하자면 '너는 안 변하지만 나는 변한다' 인가요?

최재웅 대표님의 강연에서는 '사람은 고쳐쓸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가 주요 메시지였다.


이 논의에 맞다, 아니다 답을 내리기 전에 '나'는 어떤가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 '나'를 포함한다면 전개가 달라진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고쳐쓸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최대한 나쁜 구석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며 살지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 생각하면 재앙이 열린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답정너'형 인간이 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찬 회사라면? 생각도... 하기 싫다..!


회사는 바뀝니까?

문장의 주인공 자리에 '사람' 대신에 '회사'를 넣어본다.

- 회사는 나아진다
- 회사는 바뀐다
- 회사는 고쳐쓸 수 있다

'사람'이 주인공일 때보다 어떤 의미에선 쉬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선 더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제도와 시스템의 힘을 빌릴 수 있으니 특정 개인을 바꾸는 것보단 쉽다는 의견. 한 개체로도 복잡한데 그런 개체가 수십 명(혹은 수백 명, 수천 명) 넘게 모였으니 n제곱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 둘 다 가능해 보인다.


회사의 문화를 나아지게 하는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겪은 바로는 회사를 바꾼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쉽고 어떤 의미에선 어렵다. ‘바꾼다’는 것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둘 것이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회사를 바꾼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회사의 좌석배치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자율좌석제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에 갓 입사했다 쳐보자. 자율좌석제라더니 묘하게 팀장님 주변은 자율적 이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누군가 겪는 데이터와 이를 통해 쌓이는 생각은 아래처럼 흘러갈 수도 있다.

자율좌석제를 채택하지만 모두가 폐쇄적이어지는 현실

이런 비슷한 경험 모두 다 있지 않은가? (없다면 최고의 회사에 몸담고 계시군요...!)

이 상황에서 결국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쌓여 가장 오래가는 건, ‘자율좌석제는 다 필요 없고 눈치껏 잘 행동해서 팀장님 옆자리에 안 앉아야 한다 ‘는 암묵지이다.


이때,
1)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것' 자체로 회사를 바꿨다 생각하면 회사 바꾸기는 쉬운 범주에 드는 것 같다.

- 변화를 위해 필요한 건 책상, 노트북, 캐비닛, 경영진의 최종 승인!


2) '자율좌석제 도입과 함께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선언하는 것'으로 회사를 바꿨다 생각하면 여전히  막 어렵진 않다

- 자율좌석제의 도입이 필요하고

- 무엇을 위한 자율좌석제 도입인지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장면이 필요하다. 공유하기 위해서는 회사 차원의 변화 필요, 목표하는 바 등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3) '자율좌석제 도입을 통해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한 의견 발언권을 가지고, 가장 윗사람의 의견이 아닌 가장 중요한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유연한 협업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이전과 다른 성과를 만들게 된 것'을 변화의 끝그림이라 생각하면 이건 어려운 일이 된다.

- 자율좌석제의 도입이 필요하고

- 이에 따라 일하는 방식, 본인들의 마인드셋을 기꺼이 바꾸자 하는 구성원들,

- 이 모든 변화에 솔선수범하는 리더들,

- 가끔씩 과거로 돌아가려는 관성을 누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조직문화라는 건 여러 겹으로 구성되어 있군요?!

정말 그렇다. 사실 이보다 더 복잡하겠지만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을 구조화해서 이름 붙인 이론이 있기에 그나마 심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애드거 샤인의 조직문화 구조 이론을 참고했다.

인공물 - (자율좌석제, no파티션) 조직이 표출하는 모든 현상과 물건
표방하는 가치 - (창의적 환경 중시, 모두의 의견은 동등해!) 중요하다 주장하는 가치
기본적 가정 - (그래도 아직까진 직급 순이지...) 실제로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믿는 것

이 세 가지를 잘 기억하면 조직문화라는 게 왜 실체가 있는 듯하면서 없기도 한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조직문화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한 큐에 설명하기가 어려운,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알겠지?'의 영역.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수록 바꾸기가 어렵다.


왜 우리 회사는 안 바뀔까?

이런 고민 한 번쯤은 해봤을 거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 고민을 술자리 회사 험담으로 승화시킨다. 대화의 종결은 대부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이다.


우리 회사는 ‘글렀다’고 마음먹게 되는 이유를 조직 구조로 설명해 보면 심플하다. [인공물과 표방하는 가치]와 [기본적 가정] 간의 괴리가 너무 커서이다. 겉과 속이 달라서. 그리고 그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아무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좌절은 커진다. 특히 '중요하다고 말해지는 것, 표방하는 가치'를 어딘가에서 들은 좋은 말을 그냥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기본적 가정'과의 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홈페이지에 걸려있을 뿐이고 직원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핵심가치와 일하는 방식이 탄생하게 된다.

겉과 속이 달라질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믿지 않게 된다.


사람은 고쳐쓰기 어렵다. 나는 적어도 불가능하다 생각하진 않지만 정말 쉽지 않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건, 일종의 관성 때문이다. 편한 것만 찾는 관성.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조직에 관성이 남는 건 당연하다. 거기에 각종 이해관계까지 버무려지면 회사를 바꾸는 건 요원한 일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조직문화를 처음부터 세팅하는 것이 고돼도 완결 가능한 일로 보이고, 다 만들어진 문화를 트는 것이 처음에 쉬운 것 같아 보여도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오죽하면 이런 책이 있을까.

복잡다단한 회사, 나아지게 만들지 못했더니 끝 모르고 몰락하는 기업들의 이야기


그럼 회사를 고쳐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눈에 보이는 인공물, 중요하다고 외치는 가치를 정하는 모든 과정이 무의미한 걸까?

그렇지 않다.


기본적 가정부터 바꾸는 것이 힘드니 핵심가치나 일하는 방식을 먼저 정해볼 수 있다. 새로운 근무제도나 인사제도를 도입해 볼 수도 있고. 성과/보상 체계를 바꾸는 것, 조직을 개편하는 것, 로고를 바꾸는 변화, 조직의 슬로건을 바꾸는 것. 이 모든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표층을 건드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게 세 개의 층위를 모두 일관성 있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  문화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핵심가치를 정립했는데 오히려 구성원들은 더 냉소적으로 변하는 사례들이 꽤 있다.  


결국엔 [기본적 가정]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매우 길고 험난한 여정..! 

이 기본적 가정의 부정적 아우라가 짙을수록 모두가 쉽게 전염된다. 아무리 신규입사자들을 채워 넣어도 이들이 재빠르게 잠식된다. 긍정적 기운은 빛을 발할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본인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려는 견고한 경영진이 있다면 변화는 한층 더 어려워진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기억하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지는 길을 찾고 싶다면 우리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 가정'이 무엇인지 캐치하고 꾸준히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 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다. 물론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면 그 부서원들이 가장 열심히 이 대화를 이끌어야 할 것이고, 그보다는 경영진이 이 대화에 가장 기민하게 동참해야 한다. 김성준 교수님의 <조직문화 통찰> 책에 따르면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를 보는 눈을 키우려면 '기본적 가정'을 계속해서 탐구해야 한다고 한다. 이 탐구를 위해 우리가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것들. 어려운 단어들은 거둬내고 기업의 실무자로 일한 10년의 경험을 녹여 중요한 질문들을 선별해 보면 아래 정도이다.


이 모든 건 결국, 우리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 세계관을 직시하는 건 마치 민낯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 정말 본디 속에는 무엇이 자리 잡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 용기가 필요하다.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희망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 공룡도 문화를 바꾼 '레전드'가 탄생했다.
(이 과정 전체를 아주 소소히 밝혀준 책이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히트 리프레시>)


회사를 고쳐 쓰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손 놓을 수는 없다. 물론 일개 구성원이라면 떠나면 그만이지만 떠난 곳에 천국이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회사 전체를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내가 속한 가장 작은 단위의 조직부터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조금 더 키워서 내가 속한 조직을 품고 있는 조직 정도까지라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기본적 가정에 끊임없이 '왜'를 던져 보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자주 나눠서 바꿀 부분을 찾아보면 좋겠다.

위의 질문들과 함께 말이다.


프로구단으로 떠나는 제자에게 김성근 감독님이 선물해 준 사인볼 속의 문구처럼!

항상 ‘?’ 속에 전진할 수 있기를.


굿띵워킹(goodthings of working)
제가 생각하는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의 좋은 점'은 단연 '좋은 동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회의를 끝냈는데 회의가 그 자체로 너무 즐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고 일도 재밌게 하고 서로를 위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서였더라고요. 회사에서 의미도, 재미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서로의 나아감을 돕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안색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가 돈벌이 수단에 그치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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