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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띵워킹 Mar 27. 2024

가수 임재범 님의 멋진 사과

심사평이라기보단 ‘멋진 어른의 칭찬’

”우선 68호님께 사과부터 할게요. “

가수 임재범 님이 특유의 중저음으로 이 말을 내뱉는데 ‘와 진짜 멋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혹시, 후배들에게 내가 해줬던 피드백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는가? 이건 꽤 민망하지만 누구에게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사과를 잘하는가? 스스로의 행동을 한 번 떠올려보자.


내가 어떤 일을 잘못 처리했을 때, 아니면 정말 어떤 잘못을 실수로 저질렀을 때 그에 대해 사과가 필요하다는 건 모두 쉽게 인지한다. 그런데 내가 한 피드백이 잘못됐던 것 같다고 인정하는 사과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 피드백, 내가 후배 잘못되라고 나쁜 마음먹고 했던 것도 아니고... 정말 용서 못 받을 잘못도 아니라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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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싱어게인3에서 마주친 임재범 님의 담백한 사과는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10대 소녀 가수에게 지난 라운드 무대가 끝나자마자 ‘우려’를 표하며 고쳐야 할 노래 습관에 대해 피드백을 했었던 것이다. 당연히 오디션에 나온 어린 가수가 잘 되기를 바라는 관심에서 출발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라운드를 통해 다시 들으니, 본인이 우려했던 노래 습관이 엄청난 매력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쳤다면 어땠을까?


바로 떠오르는 옵션은 두 가지 정도다.

1) 내가 내린 지난 판단을 믿으며 오늘의 느낌을 부정한다

2) 이번 라운드는 색달랐다, 잘했다 칭찬하며 마무리한다


사실 그냥 지나쳤어도 된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에서도 가장 고참이고 레전드 가수라 칭해지는 임재범 님은 ‘사과부터’ 했다. 심사 말미에 조심스럽게 건네지도 않고, 심사 초입에 그냥 냅다 사과부터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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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님은 어렴풋이나마 가늠했을 것이다. 본인의 말이 가지는 무게를. 본인이 가진 명성, 경력, 실력을 생각했을 때 본인 같은 대가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무명 가수에게 한 말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없다는 걸 생각하지 않았을까.


알았다 한들 꼭 사과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 판단이 틀렸었다고만 이야기해도 됐을 텐데 아주 담백하게 사과했다. 그 모습이 좋은 어른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분이 뭉클해졌다. 저 어린 소녀에게도 인생의 크나큰 영광으로 남았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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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조직에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면 후배들에게 하는 피드백도 정성 들여 단어를 골라야 한다. 내가 인정받은 만큼 내 말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으니 말이다. 내가 좋은 의도로 한 피드백이 혹여나 잘못된 방향이었던 것 같다면? 임재범 님처럼 진심 어린 사과를 보여줘야 한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조금 수월할 것이다. 주저 없이 담백하게 사과하는 임재범 님의 모습은 그가 사과가 어렵지 않은 어른임을 보여준다.


싱어게인은 심사평 보는 재미가 무대 보는 것만큼이나 큰 프로그램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후배들에게 하는 좋은 의도의 피드백이 어떤 건지 알 수 있게 해 줬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모든 선배들이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단 담백하게 사과도 툭툭 쉽게 할 수 있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후배들의 가능성을 잘 키워 주기를. 내 말을 받고 키운 그릇으로 언젠가 나에게 더 큰 도움을 줄 후배들에게, 좋은 피드백과 더 좋은 사과를 건네는 선배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굿띵워킹(goodthings of working)
제가 생각하는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의 좋은 점'은 단연 '좋은 동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회의를 끝냈는데 회의가 그 자체로 너무 즐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고 일도 재밌게 하고 서로를 위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서였더라고요. 회사에서 의미도, 재미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서로의 나아감을 돕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안색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가 돈벌이 수단에 그치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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