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애프터 타임 TIME AFTER TIME (TAT)
여긴 뭐지? 멀리서 볼 땐 카페가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아뿔싸. 가까이서 봐도 카페 같지가 않다.
카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커피나 음료, 술 또는 가벼운 서양 음식을 파는 집이다. 쉽게 말해 커피나 음료 (혹은 간단한 음식)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카페는 음료나 음식을 주문하는 카운터가 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또 아뿔싸. 이 곳은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카운터가 숨어있다. 심지어 어떻게 보면 가장 하찮은 공간인 계단 밑에 위치해있다. 두들리네 계단 밑 창고에서 살던 해리포터의 마음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걸까? '음료를 주문하는 것보다 카페에서 중요한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흩어져 있는 좌석들을 보면 점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아. 여긴 카페가 아니구나.
왜 카페가 아니라고 확신했냐고?
커피나 음료 (혹은 간단한 음식)가 초반부 주인공이었다면, 후반부 주인공은 좌석이다. 이용자가 가장 많은 행위를 하는 장소이자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장소인 좌석. 좌석은 공간의 느낌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이자, 재방문율을 높이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카페는 좌석의 형태와 배치에 신경 쓰며, 가장 큰 공간을 할당한다.
그런데 여기, 아무리 봐도 좌석이 주인공이 아닌 느낌이다. 더 많은 공간을 줄 수 있음에도 최소한의 공간만 주었다. 좌석보다는 그로 인해 생긴 양 옆의 길이 더 중요한 느낌이다.
안쪽 좌석은 더하다. 높이와 모양이 모두 같은 아크릴 큐브는 테이블과 좌석의 구분이 없다. 위치 또한 정해져 있지 않다. 내 맘대로 아무 데나 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위치가 자유롭다고 해도 주차장까지 진출할 줄은 몰랐는데. 바닥과 색을 깔맞춤 한 하늘색의 좌석들은 차 대신 주차장들을 점령하고 있었다.
카페지만 카페 같지 않은 좌석. 그 이유는 2층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이 된 듯 전지적 시점에서 내려다볼 때 비로소 좌석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달까.
일관적인 모양과 통일된 색감. 자유롭되 주인공이 되지 않는 배치. 이 모든 것은 좌석과 이용자 또한 전시의 일부분으로 만들려는 TAT의 큰 그림이었다. 확실히 좌석 자체로서 기능은 마이너스였지만, 하나의 조형물로써 그들은 자신의 역할을 대신했다.
좌석은 공간의 오브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었지만, 그 역시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주인공은 몰라도 주인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로 R&B 하는 뮤지션 콜드(Colde)이다.
형이라 부르고 싶다. 원래 잘생기면 형이다. 잘생긴 외모답게 노래도 꽤나 잘 생겼다. 근데 외모와 노래까지 잘생기면 됐지. 디자인 감각마저 잘생겼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 같으니.
공간에 남겨진 주인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간의 주인공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곳곳에 묻은 콜드(Colde)의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첫 번째는 바로 아이팟이었다. 그것도 무려 이제는 단종되어 볼 수 없는 아이팟 클래식.
이 곳은 TAT의 대표적인 포토 스팟이지만, 아이팟은 단순히 사진만 찍는 전시품은 아니다. 실제로 iTunes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헤드셋을 끼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잠시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들어보니. 아. 역시. 가수답게 노래 선곡도 예사롭지 않다. 아이팟에서 나오는 노래는 재즈 뮤지션 Chet Baker의 앨범 [Sings]의 수록곡이다. 이 카페의 이름 또한 Let's Get Lost: The Best Of Chet Baker Sings라는 Chet Baker 앨범의 수록곡 TIME AFTER TIME에서 따왔다고 하니. 역시 이 곳. 음악에 언제나 진심이다.
당신이 음악에 심취한 사이, 콜드의 흔적을 하나 더 찾고 말았다. 두 번째는 브랜드 굿즈다.
TAT의 로고가 들어간 에코백, 머그컵, 티셔츠부터 콜드의 취향이 들어간 다양한 아트북들까지. 안 사고는 못 배길 정도로 상품 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이다. 콜드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의 취향이 확고히 느껴진다.
그런데 굿즈를 전시해 놓은 위치를 보니. 어쩐지 뭔가 수상하다. 매력적인 굿즈들은 공간의 초입에 위치해 있다. 이용자들에게 공간을 경험하기에 앞서 이 곳이 어떤 곳인지 확실히 인지시켜주는 역할인 것이다. 일종의 공간 미리 보기. 예고편이다. 그러나 나가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공간의 마지막이다.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 들어오며 한 번. 나갈 때 한 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용자들은 최소 두 번은 이 곳을 지나쳐야 한다.
굿즈를 초반부에 배치함으로써 TAT가 브랜딩을 중요시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최소한 두 번을 지나치게 하는 마케팅 전략까지. 그렇다. 방향의 선택성이 없는 공간의 일방통행은 이것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이 공간의 주인공이 누군지.
주인공은 없다.
엥. 콜드가 주인공 아니냐고? 아니다. 콜드는 배우가 아닌 감독일 뿐. 그는 TAT에 녹아들었지만 절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커피 (혹은 음료), 좌석, 음악, 굿즈. 각각의 요소들은 특별하지만 어느 하나 앞서지 않는다. 그들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꽤나 중요한 작업이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TAT를 떠올리면 여러 가지가 생각나지만 규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주인공을 뽑는다면 TAT라는 브랜드 자신이라 할 수 있겠다. TAT는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용자들이 그들의 브랜드를 경험하길 원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더욱 가치와 의미를 더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는 TAT라는 브랜드를.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카페가 아니다. 카페보단 브랜딩 공간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카페를 생각하고 갔다면 땡. 비추한다. 그러나 브랜드를 경험하고 싶다면 딩동댕.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