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배신, 300명 앞에서 발표하고 깨달은 학교를 떠나고 싶은 이유
퓨처비 챌린지는 2021년부터 퓨처랩(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의 교육 재단)에서 지원해 온 미래 교육 지원 프로그램이다. 일상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작품을 만들어서 내면 된다.
2024년 작년에는, 864개 작품 11,0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우리는 그 퓨처비 챌린지에서 당당히 수상했다. 교육 컨퍼런스 발표 연사로 초청 받아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에 더해 나는 운좋게도, 송길영 작가님, 권혁빈 이사장님, 미첼 레스닉 교수님의 쟁쟁한 연사들처럼, 오롯이 혼자 무대에 오를 기회도 주어졌다. '교사'의 이야기를 전하는 전국 단 한 명의 사람이 바로 내가 된 것이다.
‘이게 된다고?’ 아이들도 나도 놀랐고 의외였다. 과정도 결과도, 특별할 것이 없었으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설정하고 최선을 다해 해결하는 일' 이건 원래 우리가 늘상 해오던 일이었다.
우리는 퓨처비 말고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경제금융교실을 하며 매주 주급을 받고 세금을 내야 했으며, 10년 뒤 떠날 세계 여행을 위해 가이드북을 만들어야 했고, 졸업식을 위해 무대를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항상 문제가 있었고, 해결하는 것이 수업 시간의 전부였다.
우리가 퓨처비 챌린지에서 특이했던 점은, 다른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평화, 정의’ 주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지구촌 문제를 겪고 있는 타인의 일상을 나의 문제로 연결 지어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끝나고 보니 왜 우리가 뽑혔는지 알겠고, 무엇이 달랐고 특이했는지 알았다. 우리는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의도하지 않았고, 우리가 해오던 대로 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앞을 보고 있을 때는 점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뒤돌아 봤을 때만 점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앞을 보고 달릴 때, 우리는 몰랐다. 그저 그 문제와 당면한 현실에 몰입해야 했다.
심지어 앞서 말했듯 이게 전부도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많은 프로젝트가 있었고, 우리는 원래 해오던 대로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많은 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퓨처비 챌린지만이 뛰어가는 우리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이거 너네가 한 거야? 훌륭한데! 정말 멋있어. 너네 얘기 좀 들려줄래?”
“후읍! 진짜? 진짜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볼에 홍조가 올라오고 눈이 커진다.
푸다다다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신나서 떠들었다.
“무선 통신기 기능을 넣으려고 코딩할 때는 진짜 힘들었는데 있지…”
“모둠원들이 안 하고 놀고 있는 거야. 그래서 좀 싸웠는데 …”
“근데 끝까지 하니까 되는 거야. 맞아 그때 뿌듯했어…”
퓨처비가 부르는 그곳으로 걸어가면서, 빛나는 이야기들을 발견했다. 놓쳤던 우리의 감정도 주워 담았다. 마침내 바구니에 예쁘게 넣어서, ‘이건 사과고, 이건 바나나야 …' 근사한 과일 바구니 만들듯 정리했다.
이런 정리를 하면서 '마무리, 랩업,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배웠다. 퓨처랩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가 했던 활동 중 무엇이 좋았고 인상 깊었는지 다시금 뭉쳐서 정리해야 했다.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했기에 어느 정도 가공하고 편집해야 했다.
여러 번 이야기해야 했기에 이야기는 정리되어 하나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포장하고 싸두니 언어로 전달할 수 있었고, 내 머리에도 고스란히 뭉쳐서 남게 되었다. 이름 붙이지 않고 포장해두지 않은 경험은 사라졌다. 정리해두는 것이 남았다. 그것만 강렬하게 남았다.
강렬하게 빨간 예쁜 사과를 담아낸 바구니를 가져가 퓨처비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퓨처비는 우리와 눈을 맞추고 가만히 앉아 차분히 우리가 뭉쳐낸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 외에 퓨처비가 우리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잘했다고 호들갑 떨며 칭찬하지도 않았다. 그냥 앞에 앉아서 온 관심을 우리에게 집중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침묵의 사진만을 요구 받아왔다.
우리가 화재 대피를 하는 모습, 명화 작품을 만들고 있는 모습, 레고 코딩을 하는 모습 …
학교에서는 그런 거면 됐다. 그 모습들이 하는 척인지, 진짜 한 건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원하는 게 있었다. 안전 교육의 실시, 연간 2시간 이상 교육, 학교 특색 사업의 진행…
학교에서 우리의 이야기 그 자체를 듣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복도에 붙여 항상 자랑했다.
“우리 이런 거 했어요!” “지금 이런 거 하고 있어요!”
이상하게 학교는 냉하니 항상 추웠다.
불 꺼진 복도, 사람 하나 없이 앞으로 쭉 뻗은 길 위에는 바닥의 냉기만이 복도를 채울 뿐이었다.
가끔 학교는 그들이 바라는 이야기가 있을 때 우리를 찾아온다.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우리로 하여금 만든다.
“졸업식 때는 우리가 잘 갖춰진 모습을 보여야 해. 무대에서는 씩씩하게 걸어.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편지를 써서 읽는 거야. 너무 길지 않게 시간에 맞게 읽어야 돼…”
학교는 다른 모든 것들의 눈치를 보느라 우리와 마주칠 눈은 없다.
아예 구조 상으로 우리를 보는 눈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눈이 없는 얼굴 같다.
얼굴은 우리를 마주하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학교의 눈은 뒷통수에 알알이 박혀있다. 수십개의 눈은 다른 모든 것들의 눈치를 보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징그러운 괴물이다.
괴물도 괴물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학교가 괴물이 된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힘이다. 학교는 힘이 없다. 괴물이 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얼굴엔 눈이 없고 뒷통수에 수십개의 눈이 알알이 박힌 학교는 바쁘게 사회를 따라가는 중이다. 목줄은 교육부에 걸려 있어서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불안에 서성인다. 이번엔 뭐라 명령 할까 항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은 4년마다 한번씩 바뀌고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서, 여기에 똥 싸랬다, 저기에 똥 싸랬다, 밥은 또 사료 줬다가 생고기 줬다가 하기 때문에 눈을 얼굴에 달고 있는 것은 별 도움이 못 되었던 것이다.
내가 학교를 떠나고 싶은 이유는 이 눈 없는 괴물 앞에서 생쇼를 떨어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생쇼를 떨어도, 행인의 비웃음은 받을 것인데 말이다.
코 앞의 괴물이나 목줄의 주인은커녕, 오히려 지나던 꿀벌이 날아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괴물이 이젠 죽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젠 눈을 넘어 귀도 사라졌는지 없어졌다. 또 뒷통수에 있을라나, 어쨌을라나. 이제 얼굴엔 입만 남아 우리에게 뭐라 뻥긋하는데, 거참, 성가시다.
‘가르침’에 흥미가 있는 자는 교사가 되어야 하고, ‘교육’에 뜻이 있는 자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는 이제 흥미 있는 교사를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괴물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학교에는 성직자와 노동자만이 남을 것이다.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오로지 가르치는 일에 맡기고 속세를 초월해 귀의하는 성직자 교사와, 자신의 안위와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노동자 교사만이 자리할 것이다.
나는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가르치는 것에 어느 정도 흥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배우는 일이 좋다.
‘가르침’은 모르는 것을 알게 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이고, ‘배움’은 경험을 통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과정이다. 물론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지만, 나는 ‘배움’면에 대한 흥미가 더 크다. 나는 누구를 깨우치게 하는 일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나마 교사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가르치는 것’이 재밌게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잘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하며 가르치는 일 자체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학생들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며 교사 일을 해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학교라는 괴물, 무관심의 성벽 앞에서 위태로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뜻 있는 교육자들은 진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함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 남는다면 그 이유는, 깨우쳤거나 깨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