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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Nov 29. 2023

아파트를 샀습니다

입주예정자 단톡방에서 나왔다


단톡방은 이상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쉴 새 없이 대출상담이 올라오고, 가구나 붙박이 장을 맞추기 위한 질문들. 이삿짐센터에 대한 정보문의...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글을 따라가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흥분된 분위기를 못 따라가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이젠 노안이 와서 빠르게 흘러가는 작은 글자를 잘 못 읽는다.


그 와중에도 가끔 어느 누군가가 혼잣말을 하듯 "하자는 잘 처리될까요?  과연 30일 만에 이 모든 걸 해결할까요?"라는 질문이 있었지만.... 다시 대출상담 문의글 뒤로 사라져 버렸다.


누수가 나고, 금이 가고 그런 공동주택이 우리 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스러운 얘기는, 엊그제 사전점검에서 건물을 보고 온, 나만... 아니 애초에 이런 플랫폼-단톡방 채팅-으로 민의를 파악해야 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나 같은... 몇몇 사람만이 하는 것 같다.


... 분위기를 깨고 덤벼든 것이 잘못이지만. 어차피 따라가지도 못할 거...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 그러니까, 지금 우리끼리 건설사 사정 봐주고 할 것 없이. 그냥 터뜨리면 쉬울 텐데요. 사진 카메라 기자 몇 명만 와서 상황을 찍어갔더라도... 아니 우리가 가진 사진 몇 장만 보내도..."


채팅방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길게 적어 내려간 내 글 때문에, 수많은 글자들이 뚝. 하고 멈춰 섰다. 2초, 3초? 이때다 싶어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더 하려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노트북의 파워버튼을 누르고 앉았다.


....


".... 저기요. 님. 우리라고 바보라서 언론에 안 터뜨리는 줄 알아요? 그러고 나면요?... 솔직히 기자가 책임져요? 방송국이 책임지는 거 봤어요? 놀림감이 될 거예요. 조롱하겠죠. 하자 아파트 찍여서, 나중에 제값도 못 받을 거고. 여기 입예협 일하시는 분들 중에 임산부도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무슨 일 나면 책임질 거예요? "


요지는 그렇다. <언론 접근 금지>. 단 한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몇 개의 문장들이, 바닥을 손으로 내리치고,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카카오톡 채팅방의 화면을 보면서도... 두들겨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굴이, 전두엽이 화끈거렸다.


...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사과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보금자리론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실행방법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휴대폰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멍한 눈빛을 알아챈 남편이  자꾸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 거실의 티브이에서는 <나는 솔로>가 방영 중이었다.


인기 없는 영철이가 자신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는 여자 출연자에게 나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라고 거절의 말을 거듭하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UT1fQnkKpA

첫눈이 내렸다. 보이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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